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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성을 위한 섹슈얼웰니스 브랜드 세이브앤코 박지원 대표

by SpaceSallim

스페이스 살림이 지난 2020 인터뷰 프로젝트에 이어

인터뷰 프로젝트를 다시 시작합니다.

인터뷰를 통해 스페이스 살림의 입주기업들을 만나고

이를 통해 스페이스 살림이 주는 공간의 의미에 대한

새로운 인사이트를 얻고자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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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여성을 위한 콘돔은 없을까?”


남성 중심적인 콘돔 시장에 물음표를 던진 사람이 있습니다.

미국에서 디자인 대학 부교수로 재직했던 세이브앤코 박지원 대표는

성(性)을 건강의 관점에서 접근하는 ‘섹슈얼 웰니스(Sexual Wellness)’를 알게 된 후

한국의 성 문화를 다시 생각해보게 됐다는데요.


교수직을 내려놓고 한국에 돌아온 박 대표는

불필요한 유해 물질을 배제한 ‘안전한 콘돔’을 만들기 위해 노력해왔습니다.

세이브앤코를 통해 여성 친화적인 다양한 성 생활용품은 물론 사회적 편견까지 개선하고 싶다는

박지원 대표를 만나 이야기 나눠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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Q. 세이브앤코에 대해 소개해주세요.


세이브앤코는 여성의 건강한 성 생활을 위해 콘돔을 비롯한 다양한 성 관련 용품을 만드는 ‘섹슈얼 웰니스(Sexual Wellness)’ 브랜드입니다. 브랜드명 세이브 ‘SAIB’는 편견을 뜻하는 영어단어 ‘BAIS’를 뒤집은 것으로, 성에 대한 가부장적이고 보수적인 편견을 뒤집겠다는 의미를 담고 있어요.

성은 보편적인 삶의 일부분임에도 불구하고 우리 사회는 숨기는 데 급급했잖아요. 그래서 세이브는 누구나 성 생활용품을 자연스럽고, 당당하게 사용할 수 있는 문화를 만들기 위해 힘쓰고 있습니다.



Q. 콘돔에 관심을 두게 된 계기는 무엇이었나요?


한국에서 태어나 줄곧 소위 말하는 ‘유교걸’로 자랐어요. 보수적이고 폐쇄적인 문화 속에서 여성이 성에 대해 무지한 것이 미덕이라고 배웠죠. 당연히 학교나 가정에서도 제대로 된 성교육을 받지 못했고요.

그런데 미국에서 디자인 유학을 거쳐 대학 부교수 생활을 하면서 큰 충격을 받았어요. 미국에선 성에 대해 무지한 성인 여성을 스스로를 제대로 돌보지 않는 무책임하고, 부끄러운 사람이라고 간주하더라고요. 이를 계기로 성에 대해 다시 생각하게 됐고, 콘돔을 비롯한 성 관련 용품도 유심히 살펴보기 시작했어요.


image.png?type=w966 ⓒ세이브앤코


Q. 콘돔에 대해 알아보다 충격적인 사실을 알게 되셨다고요.


평소 화장품, 먹거리 등을 구매할 때 까다롭게 성분을 따지는 편인데요. 정작 몸에서 가장 민감한 곳에 사용하는 콘돔 성분에 대해선 살펴볼 생각조차 안 했더라고요. 근데 막상 알아보니 공개된 정보도 굉장히 한정적이고, 유해 성분이 첨가된 제품이 판매되고 있다는 사실에 깜짝 놀랐어요.

특히 80% 이상의 콘돔에서 발암 물질인 니트로사민이 검출되었다는 보고서를 보고 충격받았죠. 니트로사민은 세척 공정을 거치면 불검출 수준으로 만들 수 있는데도 규제가 없다보니 그대로 유통되고 있어요. 이 외에 불필요한 유해 화학 물질이 첨가된 제품도 있어요. 야광이나 딸기향 콘돔엔 합성향료·색소가, 사정 지연 콘돔에는 벤조카인(마취제)·파라벤(방부제)이 들어 있죠.


사실 이런 성분들은 남녀 모두에게 유해해요. 다만 생식기 구조상 여성이 남성보다 42배 더 위험해요. 남성은 피부에 닿는 정도지만, 여성은 장기 내부에 닿기 때문에 유해물질 흡수율이 훨씬 높거든요. 그래서 세이브는 불필요한 유해 물질을 배제해 여성 건강을 지키는 안전한 콘돔을 만들기 시작했죠.


image.png?type=w966 ⓒ세이브앤코


Q. 제품 성분뿐만 아니라 제품 디자인도 싹 바꿨다고 들었어요.


편의점이나 드러그스토어에 가서 콘돔을 고르는데 선뜻 집기가 어려웠어요. 대부분 제품이 남성 고객을 자극하는 쾌락적 문구나 디자인을 과시하고 있었거든요. 예를 들어 남성성을 형상화한 황금빛 말이나 야한 여성의 이미지 같은 것들이요. 제품 디자인에서부터 이질감과 거부감이 들더라고요. 그때 남성 중심적 디자인이 여성 소비자를 밀어내는 역할을 하고 있다는 생각을 처음 하게 됐어요. 동시에 세이브는 디자인을 통해 경험과 인식을 바꿔봐야겠다고 결심했고요.

세이브는 여성들이 사용하기 편한 브랜드 디자인을 지향하고 있어요. 화장품처럼 심플하고 모던한 디자인을 제공해 타인의 시선에서 자유로울 수 있도록 돕고 있고요. 나아가 브랜드 충성도를 이끌 수 있는 매력적인 제품 디자인을 추구하고 있죠.



Q. 섹슈얼 웰니스 시장을 개척하면서 어떤 점이 어려웠나요?


사실 하나부터 열까지 다 어려웠던 것 같아요. 제조, 유통에 전문 지식이 없다 보니 하나하나 배워가면서 해나가야만 했죠. 하지만 제일 어려웠던 건 편견에 맞서는 일이었어요. 사업 아이템 때문에 투자 유치가 어려운 적이 많았고요. 동종 업계에서는 젊은 여자 CEO가 새로운 변화를 만들어가는 것 자체를 탐탁지 않게 보시는 분들도 많이 있었죠.



Q. 구체적으로 어떤 부정적인 반응이 있었나요?


이미 시장에 정착한 상당수 콘돔 회사들은 니트로사민 등 유해 성분을 포함한 제품을 판매하고 있잖아요. 근데 세이브가 성분에 대해 공론화시키고, 변해야 한다고 목소리를 내는 게 불편하신 거죠. 이해해요. 그런데 세상에 조용히 일어나는 변화는 없다고 생각해요. 그 과정에서 갈등을 겪는 건 당연한 일이죠.

이런 이야기를 할 때 화장품 시장을 빗대서 설명하곤 하는데요. 6~7년 전만 해도 화장품에 유해 물질이 함유되어도 논란이 되지 않았어요. 그런데 화장품 시장의 경쟁이 치열해지고, 회사들이 차별성을 고민하기 시작하면서 성분 개선이 시작됐죠. 이를 통해 고객들은 화장품 성분에 대해 알게 됐고, 소비 기준도 달라졌어요. 자연스레 회사들은 유해 성분을 배제한 제품을 다양하게 만들기 시작했고요. 저는 이게 자본주의에 의한 바람직한 시장의 변화라고 생각해요.


반면 콘돔을 비롯한 성 관련 용품 시장은 2~30년 전이나 지금이나 달라진 게 없어요. 사람들이 공개적으로 이야기하길 꺼리다 보니 제대로 논의된 적도 없었거든요. 이제부터라도 세이브 같은 브랜드가 많이 생겨나 소비자가 더 나은 선택을 할 수 있는 여건을 만들어가야 한다고 생각해요. 그러다 보면 콘돔 분야 역시 소비자에게 좋은 제품을 제공하기 위해 치열하게 고민하는 시장으로 변하게 될 거라 믿어요.



Q. 변화를 이끄는 선두주자로서 힘든 점이 많진 않나요?


맞아요. 하지만 조금씩 바뀌고 있다는 걸 분명히 느껴요. 처음 제조 공장에 찾아가 여성을 위한 콘돔을 만들 거라고 했을 때 다들 “여성 타깃 콘돔이요? 100% 망해요”라는 반응이었거든요. 그런데 회사 연차가 쌓이고, 발주도 점점 늘어나니 ‘여성도 소비자가 되는구나’, ‘여성도 생각해야 하는구나’라는 인식이 제조사도 서서히 생겨나는 것 같아요. 이런 변화를 볼 때마다 지금 하는 일이 의미가 있고 계속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어요.


image.png?type=w966 ⓒ세이브앤코


Q. 여성 건강, 젠더 이슈를 주제로 한 콘텐츠 ‘세이브 세이드(SAIB SAID)’를 만들고 있다고요.


한국 여성들이 제대로 된 성교육을 받지 못하다 보니 성 생활에 수동적인 태도와 생각을 가지고 있는 경우가 많아요. 또 성 지식이 부족해 건강에 문제가 생기는 경우도 많고요.

세이브가 아무리 좋은 제품을 만들어도 문화가 바뀌지 않으면 변화가 더딜 수밖에 없다고 생각했어요. 그래서 초창기 사업 목표를 세울 때부터 제품 개발과 동시에 성 인식 개선 캠페인을 펼치겠다고 다짐했죠.

그 일환으로 ‘세이브 세이드’라는 콘텐츠를 제작해 홈페이지에 소개하고 있어요. 세이브 세이드는 섹슈얼 웰니스, 여성 건강, 젠더 이슈 등을 다루며 여성에게 필요한 성 관련 정보를 전달하는 역할을 하고 있어요.



Q. 여성을 위한 다양한 기부 캠페인을 진행해오고 있다고 들었어요.


3월 8일 ‘세계 여성의 날’은 여성 지위 향상과 성 평등을 위해 지정된 기념일이에요. 세이브도 이런 의미를 전하고자 미혼모, 조손가정 등을 위해 기부 캠페인을 진행해왔어요.

더불어 ‘성년의 날’을 맞아 보호종료아동을 위한 캠페인을 펼치고 있기도 해요. 보호종료아동은 만 18세가 되면 아동복지시설 등을 떠나 홀로서기를 해야만 하는데요. 경제적 어려움 때문에 동거하는 경우가 많아요. 한데 가정이나 학교에서 성교육을 제대로 받지 못한 상태다 보니 어린 나이에 미혼모가 되는 아이들이 많다고 하더라고요. 그래서 아이들이 성에 대해 주체적인 태도를 갖고, 건강한 인식을 가질 수 있도록 성교육 콘텐츠와 성 생활용품을 선물하고 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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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페이스살림


Q. 대표님이 스스로 느끼는 나는 어떤 사람인가요?


저는 도전적인 사람이에요. 어려운 일을 해결해 나가는 걸 좋아해요. 뭐든 익숙해지고 편안해지면 새로운 일을 찾죠. 한국에서 섹슈얼 웰니스 사업한다고 했을 때 주변에서 ‘차라리 미국에서 하는 게 어떻냐’는 얘기를 많이 들었는데요. 한국은 OECD 국가 중 콘돔 사용률 최하위인 반면에 사후피임약 복용과 임신중절 비율은 상당히 높아요. 심각한 문제고 하루빨리 변화가 필요한 실정이죠. 그래서 어려울 걸 알지만 한국에서 사업을 시작하기로 마음먹었어요.



Q. 세이브앤코를 운영하며 보람을 느끼는 순간은 언제인가요?


고객들의 피드백을 받을 때죠. ‘세이브 덕분에 처음으로 직접 콘돔을 사봤다’는 여성 고객들의 후기가 올라오면 정말 뿌듯해요. 그리고 점점 늘고 있는 남성 고객들의 후기도 큰 힘이에요. 사실 세이브가 여성 타깃 브랜드다 보니 남성 고객을 어떻게 늘릴지 걱정이 많았는데요. 놀랍게도 현재 고객 성비가 50:50이에요. 많은 남성이 애인과 배우자를 생각하는 마음으로 세이브를 찾는다는 사실에 보람을 느끼죠.



Q. 세이브앤코를 통해 추구하고 싶은 가치는 무엇인가요?


돌이켜보면 불과 10년 전만 해도 정신 건강을 금기시했는데, 요즘은 누구나 정신 건강의 중요성에 공감하고 관리하는 분위기잖아요. 마찬가지로 성도 건강의 개념에서 인식되는 문화가 생기길 바라요. 성에 대한 편견을 바로 잡고 건강한 성 문화를 만들어가는 과정에 세이브가 보탬이 되면 좋겠어요.




스페이스살림과 세이브앤코가

젠더 관점의 생태계를 조성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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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페이스살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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Q. 스페이스 살림에 입주하게 된 계기가 궁금해요.


솔직히 처음엔 위치 때문에 지원을 망설였어요. ‘스타트업은 강남에 있어야 인재도 잘 뽑을 수 있고, 회사가 잘 나간다는 인식도 심어줄 수 있다’라는 업계 이야기를 많이 들어왔거든요. 결정을 못 하고 망설이고 있던 찰나에 각기 다른 네 분에게 지원을 권유받았어요. 고민 끝에 여성을 위한 브랜드인 세이브가 젠더 관점의 생태계 조성을 지향하는 스페이스 살림과 함께한다는 것 자체가 큰 의미가 있다는 결론을 내렸죠.



Q. 스페이스 살림에 입주해보니 어떤 점이 좋았나요?


그간 창업 아이템이 콘돔이라는 이유로 차별을 많이 겪었어요. 특히 보수적인 마인드를 가진 중년 남자 심사관이 대부분인 정부 투자 기관에서는 외설스럽고 불편하다는 반응이 많았어요. 한 번은 심사를 통과했다가 갑자기 취소된 적도 있었고요. 한데 스페이스 살림 운영단에선 세이브를 정말 좋아해 주시더라고요. 편견 없이 환영해 주시는 모습을 보고 ‘우리가 있어야 할 곳은 여기구나’라고 느꼈어요.



Q. 스페이스 살림에 기대하는 부분이 있다면요?


스페이스 살림에 다양한 분야의 기업들이 많은 만큼 새로운 협업을 해보고 싶어요. 운영국에서 네트워킹 자리를 많이 마련해 주신다면, 분명 재밌는 일들이 많이 생길 거라 기대해요. 코로나 19로 인해 당장은 어렵지만, 조만간 여러 기업과 교류할 기회가 늘어나길 바라요.



Q. 앞으로의 계획이나 목표를 들려주세요.


여성 청결제, 영양제 등 제품군을 점차 늘려나갈 계획이에요. 나아가 여성 생애 주기별 맞춤형 성 건강 제품들을 꾸준히 개발할 예정이에요. 더불어 환경 문제 해결에도 더욱 적극적으로 나서려 합니다. 현재 고객들에게 다 쓴 플라스틱 용기를 보내주면 포인트로 돌려주는 ‘용기 회수 프로젝트’를 진행하고 있어요. 회수된 용기는 방범용 호루라기로 업사이클링하고 있고요. 무엇보다 애초에 플라스틱 쓰레기를 생산하지 않도록 노력하고 있어요. 세이브앤코의 고체형 여성 청결제도 그런 맥락에서 개발됐죠. 신제품은 물론 기존 제품들도 친환경, 제로 웨이스트로 바꾸는 게 목표입니다.




*본 인터뷰 프로젝트는 스페이스 살림 개관을 맞이하여 입주기업을 소개하고 스페이스 살림이 함께 나아가고자 하는 방향을 모색하는 프로젝트의 일환으로 진행되었습니다.
*인터뷰는 코로나 19 방역수칙을 준수하며 인터뷰이와의 사전 협의를 통해 진행되었습니다.
*ⓒ모든 저작권은 해당 콘텐츠 제공자 또는 해당 콘텐츠 제공자와 스페이스 살림이 공동으로 보유하고 있으며, 콘텐츠의 편집 및 전송권은 스페이스 살림이 가지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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