환경을 살리는 일-보틀팩토리 정다운, 생태전환마을 내일 이혜림
기후위기와 환경오염이 피부로 느껴지는 시대에
'환경'을 주제로 하는 분들은 어떻게 일하는지
들어보는 시간을 준비했습니다.
하지만 연사님들의 이야기를 들어보니 오히려 '환경'이라는 키워드를 넘어
개인이 일상에서 느꼈던 것들을 어떻게 일로 만들어갈 수 있는지
과정을 들어보는 시간이 됐는데요.
아래는, 현장에서 나눴던 이야기의 일부입니다.
고운Q.
오늘 뉴스를 보신 분들은 아시겠지만 오늘부터 일회용품 사용에 제한이 있다고 합니다. 편의점이나 제과점 등에서는 비닐봉지 무상 제공 불가는 물론 판매도 금지가 됐고요. 식당과 카페에서도 종이컵이나 플라스틱 빨대도 사용할 수가 없고, 백화점과 마트 그리고 대규모 점포에서 비닐우산 사용이 금지가 되고 경기장에서는 플라스틱 응원 용품을 사용할 수가 없습니다. 저는 사실 비가 올 때마다 쌓이는 수많은 비닐우산을 볼 때마다 불편한 마음이 들었었는데 뉴스를 보면서 참 반가운 변화구나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하지만 테이크아웃이나 포장 배달 등은 규제에서 제외가 된다고 합니다. 앞으로 더 많은 변화를 위해서 어떤 시도들이 필요할지 고민이 깊어지기도 하는 것 같아요. 그런 지점에서 '환경을 살리는 일'이라는 주제로 활동을 해오신 두 분과 콘서트 시작해 보겠습니다.
우선 두 분 소개 부탁드려요.
다운.
보틀팩토리 운영하고 있는 정다운입니다. 저는 일상의 환경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 다회용 컵 대여 서비스와 공간 운영을 하고 있고, 장터나 페스티벌 같은 것도 기획하고 있고요. 지역을 기반으로 다양한 일들을 하고 있습니다.
혜림.
강원도 강릉에서 활동하고 있는 이혜림이라고 합니다. 강릉에서 ‘생태전환 마을 내일’이라는 협동조합을 운영하고 있고요. ‘내일 상회’라는 제로웨이스트 공간을 운영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지역에서 지속 가능하게 살아갈 수 있는 방법이 무엇일까 고민하며 작게 농사도 하고 있는 작은 농부입니다.
*내일상회 인스타그램
https://www.instagram.com/tomorrow.market/
고운Q.
두 분이 지금의 일을 하기까지의 서사도 너무 궁금해요. 다운님은 일반 기업에서 그래픽 디자이너로 활동하신 걸로 알고 있는데요. 어떤 일을 해오셨나요?
다운.
저는 그래픽 디자인을 전공했고, 기업에서 브랜딩과 패키지 디자인을 7년 정도 했었어요. 회사를 나와서는 스튜디오를 다니기도 했고, 작업실로 저의 공간을 운영하기도 했고요. 그전에 회사를 나오며 '뭔가를 해야지'라고 딱 마음먹었던 건 아니었는데요. 회사 다녔을 때 제가 찾아보던 것들이 유럽의 작은 스튜디오였어요. 레터 클래스를 열고, 실크 스크린을 하고, 청첩장을 만들고. 그런 걸 계속 보며 사진을 저장했었더라고요. ‘나는 이런 걸 좋아하나 보다’라는 생각에 작은 작업실을 차리고 친구들 청첩장을 만들어 주며 ‘친환경 청첩장 스튜디오’ 같은 걸 하게 됐어요. 그렇게 제 사업자를 내고 일을 하는데 막상 엄청 즐겁지만은 않더라고요. 나는 회사와 맞지 않는다고 생각했는데 혼자 있는 것도 너무 외로운 거예요. 그때 마침 주변에 공간이 필요한 아티스트 친구들이 있었어요. 사실 자기 공간을 막 차리는 게 쉬운 건 아니잖아요. 주변을 살펴보니 낮에는 비어있는 술집들이 많더라고요. 제 작업실 역시 평일 밤과 주말은 비어있었고요. 그래서 공간을 공유하게 됐어요.
그리고 그때쯤 제가 일회용 컵에 대한 문제의식을 가지게 돼서 '일회용 컵 없는 카페'를 해보고 싶다는 생각을 했고요. '일회용 컵 없는 카페가 불가능한가?' 이런 질문을 했고, 저희 공유 공간은 새로운 걸 시도해 볼 수 있는 실험의 공간이었기 때문에 하나의 작은 실험을 해보게 된 거죠. 낮에는 청첩장 디자인을 하고 아침에는 팝업으로 일회용품 없는 카페를 실험했어요. 그게 점점 확장이 돼서 '보틀팩토리'라는 일회용품 없는 카페가 됐습니다. 돌이켜보니 자연스럽게 디자인에서 지금 하는 일로 넘어오게 된 것 같아요.
고운Q.
사실 제가 두괄식형 사람이 아니어서 이런 미괄식형 얘기를 들으면 너무 공감되거든요. 어쩌다 보니 저도 지금 대표를 하고 있는데요. 정말 어쩌다 보니거든요. 근데 다운님 말씀을 들어보니 친환경 청첩장으로 시작을 해서 보틀팩토리라는 의미 있는 또 공간을 만드셨다는 생각이 들어서 참 신기하다고 생각이 드네요.
혜림님도 일의 서사에 대해서 얘기를 해 주시면 좋을 것 같은데요. 그동안 비영리 활동가로 꾸준히 일을 해오시다가 지금은 독립 활동가로 일을 하고 계시죠?
혜림.
저는 자신을 '활동가'라고 잘 소개하는 편이에요. 주변 동료를 보면 본인을 '활동가'로 소개하는 걸 부담스러워하더라고요. 그 이유는 뭔가 활동가스러움을 강요받을 때 활동가라고 호명을 한다고 하더라고요. 어쨌든 저희가 내린 결론은 '무언가 바꾸고 싶은 것이 있어서 스스로 무언가 찾고, 사람을 연결하는 일'을 하면 활동가가 아닐까?라고 정리했어요. 그래서 저는 시민단체에서 나온 뒤에도 저를 '독립 활동가'라고 소개하고 있습니다.
저는 산림과 관련된 비영리 단체에서 2년 정도 일을 했었는데요. 이 전에는 지역을 떠돌며 지냈어요. 저는 정말 고민을 많이 하며 20대를 보냈거든요. 교육을 전공했는데 교육과 관련된 일이 답답하더라고요. 제가 좋아하는 것 중 하나는 '영화' 였어요. 그래서 영화제 스태프로 계속 일을 했어요. 서울 독립 영화제, 부산 영화제 이런 곳에서요. 그런데 그런 일은 너무 자유롭고 자리를 못 잡는 느낌이 들어서 불안하더라고요. 그래서 다시 교육 관련된 일을 하기도 했고요. 그렇게 삶의 중심을 잡지 못하고 왔다 갔다 했어요.
그러다 6개월 정도 휴식할 수 있는 기회가 주어져서 강릉에서 시간을 보내게 됐는데 너무 좋았어요. 그때 만난 친구들이 많은 도움을 주기도 했고요. 그렇게 20대 후반에 '강릉에서 하고 싶은 일을 만들어가보자'라는 생각을 운 좋게 갖게 됐어요. 그러면서 산림 관련 단체에서 일을 했고요. 그곳에서는 산불 피해 지역을 복원하고, 청소년과 시민들에게 산림 교육을 하는 일들을 했어요. 저녁에는 친구들과 함께 청년 네트워크 활동을 했어요. 제가 시작한 건 아니었고 친구들을 도와서 했어요. 강릉에는 청년들 놀 곳도 많이 없고 또래 친구들도 만나기 어려우니 함께 공간을 마련해서 책도 읽고, 밥도 해먹고 그랬어요. 그 공간이 발전하다가 제로웨이스트 샵 '내일상회'가 된 거고요.
고운Q.
혜림님을 예전에 인터뷰한 적이 있었는데 그때 본인 스스로를 '구슬을 꿰는 사람'이라고 표현을 해 주셨어요. 아마 지역에 숨겨진 보석 같은 구슬을 잘 발견하고 연결하기 때문이 아닐까 싶어요. 이제부터는 두 분이 가진 세 가지 키워드인 환경, 지역, 일로 이야기를 해보려고 하는데요. 첫 번째로 환경에 대한 얘기를 나눠보고 싶어요. 두 분이 환경이라는 키워드로 일을 결심하셨을 때만 하더라도 꽤 오래전 이야기라서 조금 주변에서 유난한 거 아니냐 내지는 특별한 거 아니냐는 이야기를 들으셨을 것 같아요. 하지만 사소하고 일상적인 지점에서 계기가 시작이 되잖아요. 어떻게 두 분이 환경과 관련된 일을 나의 일로 만들어 가야 될까라고 고민하신 계기를 말씀해 주실 수 있을까요?
다운.
환경에 대한 일을 하게 된 계기라고 하면 특별히는 없는 것 같아요. 방금 이야기했던 것처럼 '어쩌다 보니' 였는데요. 그럼에도 문제의식을 느끼게 된 계기가 있기는 해요. 일회용 플라스틱 컵 문제만큼은 해결하고 싶다는 게 있었어요. 사실 일회용 플라스틱 컵 문제가 환경 문제 중에서 제일 중요한 문제인 것도 아니고, 다른 큰 문제들도 많이 있는데 저에게는 일상에 확 닿는 부분이 있었어요.
회사를 다니며 저 역시 하루에 3~4잔씩 커피를 사 마셨어요. 그렇게 똑같은 하루 중 어느 날 그게 확 와닿았던 적이 있었거든요. 아침, 점심, 오후에 커피를 사 마시고 그걸 한 번에 버리려고 쓰레기통에 갔는데 컵이 꽉 차 있더라고요. 쓰레기통 주변과 바닥까지 컵이 깔려 있었어요. 저희 사무실이 엄청 컸거든요. 한 층에만 몇백 명이 있는 40층짜리 빌딩이었어요. 우리 층이 이러면 우리 아래층도, 위층도 이럴 것인데 너무 많더라고요. 그리고 테헤란로의 높은 빌딩들을 바라보는 순간 아찔하더라고요. 한 번도 그런 생각을 해본 적이 없는데 이 건물 하나하나에 한 달도 아니고 매일 이렇게 컵이 나온다니! 개수를 가늠하니까 너무 많더라고요. 그리고서는 '이게 정말 재활용이 될까?'라는 질문이 생겼어요. 저는 이 컵들을 재활용해서 만들었다는 물건을 본 적이 없거든요. 너무 궁금해서 친구들과 6개월 정도 쓰레기차를 따라가봤어요. 그런데 사실 재활용이 안 되는 거였더라고요. 그때 제가 느꼈던 것은 시스템이 잘못됐다는 거였어요. 이런 걸 사람들이 모른다고? 이런데도 재활용 마크가 붙는다고? 이런 생각이 들었고 분리수거를 더 열심히 하는 게 아니라 3개 쓸 거 2개 쓰는 방식으로 줄여야겠다는 생각을 했어요. 그때 당시는 매장 안에서도 일회용 컵을 쓰는 게 가능했던 때거든요.
그러면서 '일회용품을 하나도 안 쓰는 카페가 불가능한가?'라는 질문이 저에게 뾰족해졌어요. 그리고 실험을 하게 된 거죠. 아마 환경에 대한 일을 해야 된다고 생각했다면 시작을 못했을 거예요. 그냥 실험을 해봤고, 거기에 조금 더 하고, 더 하다 보니까 이쪽으로 조금씩 더 관심이 가는 거예요. 더 관심이 가고, 더 해결해보고 싶더라고요. 시간을 더 써서 규모도 키워보고, 돈이 되게 해보고 싶고. 그런 생각이 들어서 시간을 여기에 더 쓰다가 지금은 디자인보다 이쪽에 더 많은 시간을 쓰게 된 것 같아요. 요즘은 N잡러라는 말도 있고, 직업을 하나만 가져야 한다는 생각도 많이 안하잖아요. 이것저것 하다가 어쩌다 보면 그중에 비중이 더 커지는 게 있지 않을까? 또 시간이 지나면 바뀔 수도 있지 않을까? 그런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고운Q.
말씀을 듣다 보니까 다운님이 사진 디자이너로서의 문제 해결을 하는 방식이나 비주얼 라이트 하는 방식이 그 강점들이 그 여정 안에서 여실히 드러나는 것 같아요. 그럼 다운님이 하시는 보틀팩토리, 보틀라운지, 채우장. 이런 일들을 각각 설명을 해 주실 수 있을까요?
다운.
‘보틀팩토리’는 주로 서비스를 제공하는 소셜벤처로 회사의 형태를 하고 있어요. '보틀라운지'는 보틀팩토리가 운영하는 카페의 이름이에요. 연희동에 공간을 얻으면서는 하려고 했던 것은 다회용품 대여 서비스예요. 지금은 많이 달라졌지만 처음 시작을 했던 2016년만 해도 그런 상상 자체가 별로 없었거든요. 처음 운영했던 팝업 카페의 이름은 '보틀 카페' 였어요. 유리 병에 음료를 담아드렸거든요. 운영하며 이런 카페가 많아지면 좋겠다, 그러면 이걸 빌려주고 세척하고, 다시 반납해 주는 이런 서비스를 하면 어떨까? 보틀 카페가 많아지게 해보고자 해서 서비스를 생각한 것이었어요. 그런데 어떤 거점 공간을 마련해놓고 세척소 겸 일회용품 없는 카페로 운영을 하다 보니까 보틀팩토리가 그냥 카페로만 보이더라고요. 그래서 공간은 그냥 라운지, 거실 같은 공간이 됐으면 싶어서 보틀라운지로 이름을 따로 지었어요. 채우장과 유어보틀위크는 제가 기획해서 운영하는 행사고요. 채우장 같은 경우는 한 달에 한 번씩 운영하는 제로웨이스트 장터 이름입니다.
고운Q.
다음 키워드는 '지역'입니다. 지난 10월 토크 콘서트는 주제는 '지역과 상생하는 일'이었어요. 시골 언니 프로젝트의 생강 님의 얘기를 들으면서 지역이 단순히 지방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동네 자원으로 동네 주변에서 활동 한다면 서울 은평구도 로컬일 수가 있구나라는 생각이 들었었는데요. 그런 의미에서 두 분의 공통점도 그런 개념의 지역을 기반으로 활동을 하고 계신다는 부분인데요.
다운님은 서울 연희동에서, 혜림님은 강원도 강릉에서 거점 공간을 운영하며 지역과 연계된 일을 하고 계세요. 어떻게 지금 지역에 기반을 두게 되신건지 궁금합니다.
다운.
너무 쉬운데 제가 사는 곳이 거기였어요. 처음 독립해서 산 곳이 연희동이었거든요. 연희동에 살다가 연남동, 서촌을 거쳤어요. 연남동이 점점 핫해지며 시끄러워지더라고요. 그래서 서촌으로 이사를 갔어요. 그런데 지금 하는 일을 구상했을 때가 연남동에 살 때였어요. 그래서 자연스럽게 그 지역을 보게 됐어요. 그 안에서도 저는 조용한 곳을 원했어요. 골목길이 있고 사람들이 사는 곳을 원했죠. 그런데 연남동은 너무 변해서 살고 있는 사람보다 놀러 오는 사람이 많은 상업지역이 됐더라고요. 사실 그런 곳이 장사하기 좋은 곳인데 저는 그런 걸 너무 몰라서 상권이 없는 곳을 가고 싶어 했어요. 그런데 지금 자리 잡은 골목을 보게 됐는데 정말 아무것도 없더라고요. 골목을 조금 걷다 보면 오래된 방앗간이 있고, 문방구가 있고. 너무 마음에 들었어요. 나중에 조금 후회를 하기는 했어요. 상권이 정말 중요한 거구나... 그래서 몇 년을 버티듯 운영했고, 지금도 버티듯 하고 있지만 저는 이 골목이 너무 좋고 그냥 잘 했다는 생각을 해요. 지금은 다시 이곳으로 이사 와서 살고 있는데 그냥 자연스럽게 제가 살았고 좋아하는 동네에서 일터로 자리 잡게 된 것 같아요.
고운Q.
혜림님은 강릉이 고향도 아니시잖아요. 그럼에도 그곳을 거점으로 하게 된 이유가 있을까요?
혜림.
지금은 강릉에 살고 있다는 게 너무 좋고, 강릉에서 쭉 살고 싶어요. 그런데 처음에는 '강릉을 가야지!'라고 생각하고 움직였던 건 아니었어요. 어쩌다가 갔는데 마음이 맞는 친구, 동료를 만났기 때문이었어요. 얼마 전부터 지역으로 귀농 귀촌을 고민하는 분들을 많이 만나고 있어요. 어쩌다 강릉에 오게 됐냐, 어떻게 강릉 와서 이런 이런 것들을 할 생각을 했냐고 물어보시곤 하는데 질문을 받으니까 반대로 다시 생각을 해보게 되더라고요. '왜 내가 강릉에 와서 살게 됐을까?'를요. 과거의 저는 큰 도시에서는 못 살겠어라고만 생각했지 그럼 어떤 곳에서 살고 싶은지는 생각을 안 했더라고요. 서울이나 부산에서 지내면서 그냥 매일 '사람 없는 곳에서 살고 싶다, 대도시에서는 못 살겠다'고 생각을 했어요. 그런데 강릉에서 지내면서 바다도 있고 숲도 있고, 좋은 것들이 보이더라고요. 또 5분 걸어서 갈 수 있는 동네 예술 극장이 있고, 여름에 학교에서 영화제가 열리는 낭만이 있고. 좋은 것들이 많이 보여서 지역을 하나씩 공부하게 됐어요. 저와 맞는 규모의 도시에 내가 원하는 취향이 있고, 사람들과 커뮤니티가 있더라고요. 처음에는 마음에 맞는 친구들 때문에 발을 들였지만, 결과적으로 지역을 공부하며 나와 얼마나 맞는가를 확인하게 된 것 같아요. 제 자신이 어떤 환경에 살아야 편하고, 나답게 일하고 생활할 수 있을까를 고민했었고, 그게 지역에 대한 공부와 맞물려 지금의 강릉살이에 만족하고 있는 것 같아요.
고운Q.
두 분 다 말씀해 주셨듯이 지역에 거점 공간으로 운영을 하고 계시잖아요. 공간은 어떻게 운영하고 계시는지 궁금해요.
혜림.
사전 질문에도 그런 게 있었던 것 같아요. 이런 걸 시작하려면 자금은 어떻게 해야 되고, 어떤 것 부터 시작해야 하는지요. 저희가 처음에는 월세 40만 원의 상가 건물에 공간을 마련했었어요. 강릉에서 월세 40만 원이면 진짜 비싼 거거든요. 그런데 그 공간 안에서 대안 제품을 소개하고 교육도 하다 보니 정말 힘들더라고요. 그 과정에서 몇 번의 이사를 겪었어요. 농사짓던 땅도 개발로 쫓겨나고, 청년 공간도 쫓겨나고, 젠트리피케이션도 겪고요. 이런 순간들을 거치며 우리가 활동을 지속하려면 든든한 지지 기반이 있어야겠구나 하는 생각했던 것 같아요. 또 우리의 활동이 지속 가능하게 보이지 않으면 안 되겠다는 생각도 했고요. 그래서 작년에는 아예 건물을 매입하게 됐어요. 주택을 하나 샀어요. 그중 작은방 하나를 제로웨이스트샵으로 운영을 하고요. 사랑방 역할을 하는 건물은 저희 개별 돈으로 산 게 아니라 펀딩을 받았어요. 공동체의 기부금을 모아 커먼즈 건물의 형태로 매입했어요. 저희도 여기에 이용료를 월세처럼 내고요. 개념 자체를 개인의 사유지가 아닌 공유지를 만드는 방식으로 전환했어요. 그래서 오시는 분들에게 공유지의 개념을 소개하고, 여기서 소비된 돈이 어떻게 지역에 다시 기여되는지 보이는 일을 함께 하고 있어요.
고운Q.
단순히 환경이라는 문제뿐 아니라 정말 지역에 어떻게 자원들이 순환될 수 있는지까지도 보여주고 계신 것 같아요. 다운님은 채우장을 통해 지역 안에서 함께하고 있는 것을 설명해 주시면 좋을 것 같아요.
다운.
채우장은 정말 제 일상의 필요에 의해 만들어지게 된 장터에요. 제가 제로웨이스트 일상을 지향하고 있는데 서촌에 살 때는 옆에 전통 시장이 있었어요. 그래서 통이랑 주머니를 챙기는 저의 노력만 있으면 쌀도 사고 떡도 살 수 있었어요. 그런데 연희동으로 다시 오니 주변에 마트밖에 없어서 그렇게 살 수 없는 거예요. 저는 하나도 변한 게 없는데 이사를 왔다는 이유만으로 제로웨이스트를 지향하는 게 안되더라고요. 그래서 어느 날 혼자 '불편한 생활의 실험'이라는 모토를 가지고 일상에서 나오는 쓰레기를 펼쳐봤어요. 장 볼 때 제일 많이 나오더라고요. 이렇게 살아야 하나 싶었지만 제가 뚝딱 벌크 마트를 만들 수 없으니 고민했어요. 그래서 한 달에 한 번 팝업으로라도 장터의 형태로 동네 가게의 물건을 포장 없이 팔고, 사람들이 용기를 가져와서 채우는 '채우장'을 해봐야겠다고 생각했어요.
*채우장 인스타그램
https://www.instagram.com/chaewoojang/
2019년에 시작을 했는데요. 제가 찾는 레퍼런스가 없더라고요. 유럽의 파머스 마켓도 빵, 과일, 채소는 그렇게 팔지만 잼이나 액체류는 다 병에 패키징 되어있더라고요. 그래서 저도 정말 가능할지 걱정을 하며 시작을 했어요. 친구들도 요즘은 클릭 한 번이면 문 앞으로 모든 게 배송이 다 되는데 그런 걸 좋아하겠냐고 하더라고요. 그런데 그 말을 듣고 '어떻게 사람들을 좋아하게 만들지?'라고 고민하니 조금은 쉬워지더라고요. 사람들을 어떻게 '행동하게 하지'라고 하니 어려운데 '좋아하게 하지'하니까 제가 그렇게 할 때 좋은 것들이 생각나더라고요. 그렇게 하면 우선 일상이 예뻐지거든요. 천 주머니에 사면 스티로폼, 랩, 검은색 비닐봉지로 장 봐온 것보다 더 예쁘고요. 그대로 냉장고에, 찬장에 넣기만 하면 돼요. 나중에 뜯고, 씻고, 라벨 떼고, 분리배출하는 뒷 단계도 없어지죠. 그래서 제가 그렇게 했을 때 좋은 것을 계속 말하고, 올리고 그랬어요. 그렇게 하다 보니 점점 사람들이 많이 와주셔서 줄을 서고, 완판이 되는 장터가 됐어요. 우리 동네에서 해보고 싶다고 하시는 분들이 생겨났고요. 처음 기획할 때는 용기가 필요했었는데 지금은 하나의 레퍼런스를 만들지 않았나 하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고운Q.
사람들이 별로 좋아하지 않을 것 같다는 친구의 말에 꺾이지 않고 용기를 내서 첫 번째 레퍼런스가 되어주셨다는 것에 퍼스트 펭귄이 생각 나면서 다운님이 새삼 커 보인다는 느낌을 받았습니다. 마지막으로 일이라는 키워드로 이야기 해보고 싶은데요. 두 분이 비슷한 일을 하고 계신 것 같지만 또 다른 느낌도 들어요. 다운님의 일은 한 길로 깊이 와오셨다면 혜림님은 넓게 펼치며 오신 느낌이 드는데요. 그런 점에서 두 분은 어떻게 일을 만들어 가고 계신지 궁금해요.
혜림.
사실 제가 하는 모든 활동의 시작은 제 자신이었던 것 같아요. 오늘 주제가 '환경을 살리는 일'인데 어떻게 보면 좀 거창하잖아요. 제가 비영리 단체에 일하면서도 고민을 진짜 많이 했었어요. 매해 시민들을 만나며 다양한 일을 하는데 자신은 나아지는 느낌이 안 들더라고요. 그래서 지역의 선배님과 고민 상담을 한 적이 있어요. 그런데 그분이 그러시더라고요. 결국엔 자기 자신을 살리는 일을 해야 환경을 살리는 일이 된다고요. 자신을 살리는 일을 하지 않으면 지속 가능할 수 없고 그 환경에 내가 없으면 살리고자 하는 환경이 지속된다고 해도 얼마나 오래 버틸 수 있겠냐며, 계속 나 자신을 살리는 것을 고민해 보라는 하셨어요. 그때가 강릉으로 이주하고 단체에서 일을 하며 지역의 청년들, 여성 활동가들과 만나며 한참 활동할 때였거든요. 매년 나를 소진시켜가며 일하는 것 같은데 지속 가능할 수 있을까? 그런데 그분과 이야기를 나눈 후 많이 바뀐 것 같아요. 그 전에는 분야가 분야다 보니까 일단 '반응'하는 일을 많이 했어요. 환경 분야가 특히 시시각각 많은 일이 발생했고, 여러 단체와 공동으로 협력해야 하는 일들이 많았거든요. 그래서 불편한 점이 있어도 일단 넘어가고 일단 일을 했던 것 같아요.
그런데 나를 살려야 환경을 살린다는 생각이 든 이후 부터는
반응하는 것도 좋지만 나의 기준들을 만들게 됐어요. 아무리 좋은 일이어도요.
예전에는 이해되지 않는 일도 일단 했다면, 그 이후부터는 바꿀 수 있는 일은 바꾸며 일을 하게 됐어요.
고운Q.
혜림님의 이야기를 들으며 두 분이 비슷하다는 생각이 더 들었어요. 왜냐하면 나의 문제로부터 출발하는 지점들이 분명히 있고 그것들을 내버려 두는 것이 아니라 실질적인 무언가를 해보려고 항상 시도를 하시는구나라는 생각이 들었거든요. 마찬가지로 다운님도 어떻게 일을 만들고 계신 지가 궁금해요.
다운.
저는 항상 패턴이 비슷한데 '질문'에서 시작이 됐던 것 같아요. '일회용품 없는 카페가 정말로 가능할까?' 마음속에 정말 이대로 생각이 들었거든요. 항상 질문이 있었고 그랬을 때 작은 단위로 되게 빠르게 실행을 해보는 타입인 것 같아요. 만약에 질문이 꼬리에 꼬리를 물며, 많은 생각을 하며 일을 하는 타입이었다면 시작도 못했을 것 같아요. 그럴 때 저는 '작게라도 한번 해봐야지' 그래서 해본 거예요. 그렇게 작게 시작을 하면 어떤 실험은 뭔가로 이어지는 경우가 있더라고요. 그 실험에서 만난 누군가를 통해 지원 사업을 알게 되고, 다른 사람과 연결이 되고. 어떤 질문이 생기고, 그걸 실행해서 검증하고, 그게 계기가 되어 확장이 되고. 항상 그런 식으로의 이어짐이었던 것 같아요.
'보틀팩토리'에서 많은 일들을 했지만
'질문을 던지고, 실험하고, 검증한다' 이 문장이 저에게는 방식이었어요.
그리고 그걸 알아봐 주시는 분들도 계시더라고요. 저희 카페에 오셨던 분 중에 인스타그램에 '가능성을 검증하는 공간'이라고 올려주신 분이 계셨는데 너무 좋았거든요. 정말 가능해서 한 게 아니었고 질문을 실험하고, 검증을 하는 것들을 알아봐 주셨구나! 그래서 너무 좋았고 저는 이런 방식으로 계속 뭔가를 해 나아가지 않을까 싶어요.
고운Q.
마지막 질문을 드려야 될 것 같아요. 두 분이 하시는 일은 정말 내일을 기대하게 만든 일은 틀림 없는 것 같아요. 지금도 많은 일들을 해오신 것 같은데 앞으로 더 시도해 보고 싶은 것이 있는지 궁금합니다.
혜림.
일단 가까운 것과 먼 것을 생각해 봤을 때 가까이는 지금 저희가 6명이 같이 일을 하고 있어요. 그 동료들과 오래 일하고 싶어요. 같이 일하고 싶다는 생각으로 '협동조합'을 만들어서 함께 하고 있는데 사실은 다 조금씩 지쳐있거든요. 그래서 저희는 사회적 경제, 일자리 지원, 청년 지원 사업이 필요하기도 해요. 이 친구들과 오래 일할 수 있는 야무진 방법들을 찾는 게 가까운 목표일 것 같아요. 그리고 장기적으로는 지역 안에서 건강하게 잘 살기 위해 자립하는 구조를 만들고 싶습니다.
다운.
지금까지 닿지 않았던 사람들한테 닿고 싶다는 생각이 있어요.채우장도, 유어보틀위크도 다 잘 되기는 했어요. 그런데 이런 행사들을 직접 기획하고, 또 참여해 보면 항상 왔던 사람들이 와있는 거예요. 요즘은 제로웨이스트라는 키워드도 잘 알려지고 기업에서도 많이 지향하고 하지만 여전히 소수라는 걸 알고 있어요. 채식, 비건도 마찬가지고요. 어떻게 해도 변하지 않는 사람이 10%가 있고 아무도 안 시켰지만 변하는 사람이 10%가 있다면 중간지대에 80%가 있대요.
지금까지는 이 변화의 감수성이 높은 사람들을 계속 접했다면
이제는 이 중간지대의 사람들을 움직이고 싶다는 생각을 하고 있고,
그들에게 어떻게 닿아야 할까 고민하고 있어요.
그래서 지금의 일에서 비즈니스 모델을 만들어 보고 싶어요. 저도 결국은 혜림님과 똑같은 고민인 거예요. 저의 지속가능성 그리고 보틀팩토리를 계속하려면 수익이 되고 돈이 되어야 하는데 지금까지는 그것과 상관 없는 것들을 많이 해와서 조금 지치기도 하고 그랬어요. 그래서 지금은 어떻게 사업화를 할 수 있을까? 더 대중에게 닿게 할 수 있을까? 그런 고민을 계속 하고 있습니다.
질의응답
Q. 보틀팩토리를 사실 들어보기만 했어요. 그런데 오늘 연사님으로 나오신다고 해서 다시 찾아봤거든요. 너무 좋은 프로젝트를 하고 계신 것 같은데 확장에 대한 구체적인 계획이 있는지 궁금합니다.
다운.
주변에서 다른 지역에도 이런 공간이 있었으면 좋겠다고 이야기 해주세요. 하지만 공간을 운영한다는 게 정말 쉬운 일이 아니더라고요. 언젠가는 다른 곳에 마련할 수도 있겠지만 당장은 그런 생각을 가지고 있진 않아요. 하지만 다회용 컵을 대여하는 '보틀클럽'이라는 서비스나 애플리케이션 같은 것들로 확장을 하려고 하고 있어요. 컵 대여 서비스도 연희동에서 실험처럼 시작을 했지만 제주도나 강원도 양양에서 의지를 가진 공간들이 다회용 컵 서비스를 하고 싶어 하세요. 그런 곳과 함께 공유하며 서비스적인 확장을 하려고 노력하고 있습니다.
Q. 시골언니 프로젝트 강릉 편에 지원하고 싶었는데 못했어요. 시골언니프로젝트에서 강릉은 농사를 하는 프로젝트였는데, 강릉이라는 지역을 농사에 국한한 이유가 있는지 궁금합니다.
혜림.
시골언니 프로젝트는 8개 지역이 참여하고 있는데, 저희 강릉은 파머 컬처(permaculture)라고 해서 지속 가능한 방식으로 농사를 짓는 프로젝트를 하고 있어요. 5박 6일 동안 저희와 함께 지내면서 파머 컬처 방식으로 농사를 짓고, 내일상회라는 가게가 어떻게 운영되는지 보고, 바다와 숲에 가서 정화 활동과 플로깅 활동을 하는데요. 향후 지역으로 이주하게 된다면 이런 방식의 농사도 있다고 제안하고 싶었거든요. 저희가 이 프로젝트에 참여할 때 이런 이야기를 했어요. 기후 위기 시대에 청년 여성들에게 농사 지으라고 말 못하겠다고요. 솔직히 농사를 지으며 저는 한 해 한 해 이상 기후를 느껴요. 올해 6월까지는 가뭄이 심해서 봄 작물이 자라지 않았어요. 지금은 추워야 하는데 안 춥잖아요. 식물들이 다 봄인 줄 알고 깨어나고 있거든요. 실시간으로 기후 위기가 농업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 알기 때문에 농사 지으라고 말 못하겠더라고요. 그럼에도 지역으로 이주를 하고 싶다면, 귀농 귀촌을 하고 싶다면, 머리를 맞대서 지속 가능한 방식으로 농사를 해봤으면 하는 마음에 파머 컬처 농업으로 프로젝트를 진행하게 됐습니다.
Q.
모더레이터님의 진행에서 영감을 받아서 질문을 드리고 싶어요. 세분께 드리고 싶은데요. 한 해가 끝나고 있잖아요. 올해를 돌이켜봤을 때 본인 스스로에게 하고 싶었던 말들이 있다면 무엇인지 궁금합니다.
고운.
무엇보다 저에게 영감을 받아서 저 질문을 해주셨다고 해서 너무 기쁘고요. 저는 사실 굉장히 내향인이에요. 그래서 여러분들 앞에서 대화를 이렇게 나누는 것이 쉽지 않은 사람이에요. 그럼에도 무려 4회나 모더레이터라는 실험에 도전해 본 저에게 참 잘했다. 여러분들을 만나보길 잘했다. 여러분들과 이렇게 눈을 맞추고 대화를 나눠보기를 참 잘했다는 생각이 들어서 스스로에게 잘했다고 얘기해 주고 싶습니다.
다운.
올해 저에게 해주고 싶은 말은 조금 허무 할 수 있지만 '너무 애쓰고 살지 말자'에요. 저는 뭔가를 하면 자신을 엄청 갈아 넣고 열심히 하는 스타일이거든요. 제 일이든 남의 일이든 최선을 다한다는 느낌이 너무 좋고, 그런 사람들과 일하는 게 좋아요. 그런데 그런 것들과 애쓰는 것을 구별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어요. 제가 좋아서 한 일이지만 몇 해 동안 주 7일 일하며 자신을 갈아 넣다 보니 번아웃이 오고 몸이 안 좋아지기도 했거든요. 그래서 이제는 너무 무언가에 연연하지 말아야겠다는 생각과 열심히 하는 것과 애쓰는 마음을 구분할 줄 알아야겠다는 생각이 들어요. 올해 남는 시간 동안에는 내가 뭘 좋아하는지 발견하고, 나를 돌보는 것에 시간을 써야겠다는 생각도 가지고 있어요. 그래서 지금 저에게 하고 싶은 이야기는 '어떻게 하면 잘 쉴 수 있을까?'와 그것을 위한 노력들 같아요.
혜림.
저도 올해의 제 자신에게 수고했다고 이야기해 주고 싶어요. 지금의 일을 하다 보면 뭔가 계속 새로운 걸 해야 된다는 강박이 들어요. 하고 있는 일도 중요하고, 그것을 지속하는 것도 중요한데 그럼에도 새로운 걸 더 발견해야겠다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근데 아까 말씀드린 시골언니 프로젝트를 통해 전국의 다양한 분들을 만났거든요. 그분들에 강릉에 꼭 남아달라고 이야기를 계속해 주시는 거예요. 내가 언제까지 언니로 남을 수 있을까? 계속해서 남아야겠다는 생각이 많이 들어요. 계속하려면 지금 하는 소중한 것들을 잘 기억하고, 잘 알리고, 나도 잘 돼야겠다고 생각해요. 그래서 내년에도 수고해야하니까 그런 나에게 올해 수고했다고 이야기해주고 싶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