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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써니B Nov 16. 2019

다낭에서 맛본 최고의 휴식

[가족 베트남 여행기]

출발부터 삐그덕 대는 여행이었다. 남편과 두 딸, 그리고 나 이렇게 가족 4명이 처음으로 기획한 자유여행. 여행 하루 전까지만 해도 서툰 준비로 갈까 말까를 고민해야 했지만, 결국 우리 가족 최초 베트남 다낭 자유여행은 진한 추억과 스토리와 사진을 남긴 채 끝이 났다.


딸아이 여권을 갱신하고 나서 저가항공 사이트로 비행기표 예약을 했다. 그런데 아뿔싸! 남편이 서둘러 비행기표를 예약하다, ‘환불 거부 상품’ 딱지가 붙은 저가 비행기표에 돌아오는 날짜를 잘못 입력하는 실수를 했다. 태어나서 처음으로 직접 비행기표를 예약했는데, 클릭 한번 잘못해서 4명 왕복 비행기표 2백만 원을 다 날릴 지경이 되었다.


여행 출발부터 큰 실수를 한 남편을 대신해서 비행기표 환불 소비자 피해구제 신청을 했다. 그 와중에 숙소 예약과 여행 짐을 챙기느라 정신이 없었다. 남편에게 비행기 예약을 서둘렀던 나 자신을 탓하기도 했고 여행대행사의 횡포에도 너무나도 화가 났다. 비행기 값을 날릴까 봐 조마조마하며 기죽어 있는 남편을 바라보는 것도 힘들고 속상했다. 여행 대행사 ‘트립 닷컴’은 지연작전을 쓰며 여행 출발 8일 전에야 겨우 취소 환불 수수료를 뺀 나머지 비행기 값을 돌려주었다. 불행 중 다행이었다.

 

기죽어 있는 남편을 대신해서  분위기를 띄울 묘책을 생각해냈다. 그러다 느닷없이 예전부터 찜해두었던 예쁜 숙소를 떠올렸다. 집 떠나면 개고생이라고 했는데, 여행은 사서 고생도 하는 거라고, 잠자리는 두 다리 뻗을 만하면 다 된다고 생각하던 나였다. 그런데, 일상을 벗어나는 여행에서 잠자리가 중요한 딸아이들을 위해서라도, 기죽어있는 남편을 위해서라도 멋있는 풍경의 숙소만큼 분위기를 바꿔줄 만한 것은 없는 듯했다.


나는 예상치를 훨씬 뛰어넘는 비용을 지불하고, 베트남 다낭 시내 미케 비치 해변 근처에 자리 잡은 지중해 그리스 산토리니를 연상케 하는 별 다섯 개 리조트 호텔에 3박을 예약해버렸다. 여름 8월 성수기에 베트남에 있는 그리스 산토리니풍의 호텔이라니, 상상만 해도 멋진 일이었다. 숙소에 들어선 가족들은 다행히도 "원더풀, 뷰티풀"을 외쳤다. 그것만으로도 여행의 절반은 성공한 셈이다.


베트남의 8월은 가만히 서 있어도 땀이 줄줄 흐르는 덥고 후덥지근한 더위가 한창이라 걱정이 이만저만 아니었다. 하지만 베트남의 첫인상은 걱정했던 것보다 날씨가 견딜만하다는 거였다. 8월 제일 더울 때 우리나라보다 더운 나라를 가면서 제일 걱정했던 게 날씨였다. 그런데 날씨만 견딜만하다면 어떤 어려움이 와도 잘 헤쳐 나갈 수 있다는 자신감이 불끈 생겨났다.


다낭 시내 도로에 들어서면 어김없이 함께 달리는 가족단위의 오토바이들을 만날 수 있다. 오토바이에 같이 타고 가면서 조는 사람, 아이 두 명에 엄마, 아빠까지 총 4명의 가족이 한 오토바이에 타고 가는 것도 보았다. 차량과 섞여가는 도로를 달리며 여유롭게 대화를 나누며 가는 오토바이도 보았다. 헬멧을 쓰고 장을 보러 가는 아줌마, 치마를 입고 다리를 한쪽으로 모으고 아슬아슬 오토바이 뒤에 타고 가는 아가씨도 보인다.


베트남 사람들에게 오토바이는 교통수단이자 이동수단, 삶의 중요한 매개가 되는 것 같다. 차와 한데 섞여 원형 교차로를 도는 오토바이들을 차 안에서 바라보자니, 아슬아슬 위험천만 손에 땀을 쥐는 곡예가 펼쳐지는 것 같다. 하지만, 이내 며칠 지나지 않아 이들이 주고받는 신호가 ‘배타’가 아닌 ‘배려’라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연신 클랙슨을 울려대는 차량 기사들은 오토바이를 향해 “내가 너 옆에 있으니까 조심하라고!”하며 배려를 하는 듯 보였다. 다수의 오토바이들도 차량과 한 데 어울려 가면서도 전혀 무서워하거나 떨지 않는 것처럼 보였다. 그도 그럴 것이 베트남은 차량보다 오토바이가 다수이며 강자인 것처럼 보인다. 아마 차량 기사들도 평소에는 오토바이를 타지 않을까 싶다.


하루 종일 신호등이 없는 날씬한 횡단보도를 건너는 것이 익숙해졌다. 다수의 오토바이를 피해 횡단보도를 건너는 것에도 요령이 생겼다. 그것은 다름 아닌 사람들을 믿는 것이다. 바쁘게 쌩하며 달리는 오토바이도 없고, 큰 굉음을 울리며 과시하는 오토바이족들도 없는 듯 보였다.


덥고 습한 베트남의 날씨는 조금만 걸어도 불쾌지수를 높여준다. 이럴 땐 어김없이 출발지와 목적지를 인터넷 위치 기반 서비스로 연결해주는 그랩 택시를 잡아 타고 시원한 에어컨 바람으로 불쾌감을 달랜다. 그랩 카 안에서 만난 베트남의 창밖 풍경은 창 하나 차이로 많은 경계를 만들어낸다. 달리는 오토바이들과 한데 섞여 울리는 경쾌한 크략숀 소리를 몇 차례 듣다 보면 목적지에 다다른다. 여행객들에겐 더없이 편안한 최적의 대중교통시스템을 만났다.


호텔에서 먹는 이국적인 조식은 여행의 재미를 더해주었다. 유럽 지중해식 회벽칠과 바다 빛깔로 포인트를 준 레스토랑의 인테리어가 크게 눈길을 끈다. 그다음으로 라탄 조명과 의자가 소소하게 눈길을 끈다. 커다란 나무 재질의 천장 선풍기가 돌고 돌아, 마치 헬리콥터를 탄 듯 시원한 바람을 퍼뜨려준다. 흡사 여기는 지중해에 떠 있는 배 안이라도 되는 것처럼 행복한 착시에 빠져본다.


각양각색의 음식들은 미각을 즐겁게 한다. 써니 사이드 업 계란 프라이에 라이스를 비비고, 숙주와 양파를 잔뜩 올린 쌀국수에 라임을 뿌리고 칠리소스를 얹어 나만의 아침 메뉴를 구성해본다. 베트남에서만 먹을 수 있는 열대 과일로 달콤한 마무리를 한다.


한국보다 훨씬 싼 물가와 인건비 덕분에 베트남 호텔에서 최고급 식사와 서비스를 받아도 돈 걱정을 잠시 접어 둘 수 있다. ‘탕진 잼 탕진 잼’ 노래를 흥얼거린다. 베트남의 행복한 물가는 마음마저 편안하게 만들어준다. 여행에 대한 만족도를 최고로 높여주었다.


대형 마트에서 싹쓸이 해 온 카트 안에 베트남 과자, 라면, 커피, 티들이 가득하다. 카트를 바라보며 흐뭇한 미소를 지을 수 있는 건 단돈 몇만 원의 행복함 때문이다. 그렇게 동네 마트 나들이하듯 익숙하고 친근해진 마트에서 기호품과 선물을 마련할 수 있었다. 쇼핑의 재미와 행복을 느끼게 해 줘 감사하다.


조금만 걸어도 땀방울이 송골송골 맺히는 베트남 다낭 해변가의 숙소 라이즈 마운트에 들어섰다. 하얀색과 푸른색의 조화로운 색상과 지중해 바다를 연상케 하는 각종 소품과 인테리어들이 마음까지 시원하게 해 준다. 1층과 루프탑에 위치한 수영장이 시원함을 달래주고, 루프탑에서 바라보는 썬 차 반도의 풍경도 푸르름을 더한다.


숙소는 크게 1층 주방과 화장실, 2층에는 킹 베드가 있는 두 개의 방과 두 개의 욕실로 이루어져 있다. 거실에서 화사한 시폰 소재 커튼 너머로 보이는 분홍꽃과 초록빛 잎들이 여인의 시스루를 연상하듯 아름다운 풍경을 보여준다.


방과 연결 공간 곳곳에는 커다란 전신 거울과 창문, 지중해와 바다를 연상케 하는 그림 액자들이 걸려있다. 거울 너머로 비추는 그림 액자들은 그대로 바다를 떠올리게 한다. 베트남의 라탄 대나무들로 꾸며진 소소한 소품들이 한껏 따뜻한 무드를 만들어준다.


608호 1층에서 2층으로 올라가는 계단 사이사이 조명이 켜지고 각자의 방으로 나뉘는 중간지대쯤에서 왼쪽으로 들어서면 대리석 돌계단을 지나 3일 내내 나를 작은 휴식으로 인도했던 전신 욕조가 나온다. 숙소는 습한 공기를 잠재우는 에어컨이 가동되고, 차가워진 공기 속에 몸은 오들오들 추워지기 시작한다. 때 맞춰 온종일 걷고 땀 흘렸던 내 육신을 풀어줄 뜨거운 물을 욕조에 받기 시작한다. 드디어 몸을 서서히 따뜻하게 만들어줄 욕조의 물속으로 풍덩 몸을 던진다.


서서히 온몸으로 퍼지는 온기를 느끼며 은밀하게 즐기는 나만의 휴식. 나는 더 이상 여행의 묘미를 유명 관광지나 사람들이 많이 모이는 핫플레이스에서 찾지 않는다. 여기는 진정한 자유와 해방, 쉼을 담고 있는 나만의 욕조, 사랑하는 나만의 안식처로 명명되고 기억될 것이다.


욕실 인테리어를 하나하나 내 눈에 담고 마음에 담아둔다. 집에 돌아가면 욕실만큼은 일상의 피로를 풀어줄 공간으로 재탄생시켜보리라 다짐도 해본다. 이 욕조에 내 몸 하나 담그기 위해 멀고 먼 길을 돌아온 것 같다. 충만함이 발끝에서부터 가슴 쪽으로 차오른다. 시간이 멈춘 듯 아무 생각 없이 먹고 마시고 즐겼던 베트남에서의 3일. 이번 여행에서 내 육신의 피로를 달래준 608호 고마운 욕조와 푹신한 침대에게 안녕을 고한다. 짧고 굵게 경험했던 많은 장면들을 마음속에 하나둘 떠올려본다.


우리를 놀라게 했던 작고 귀여운 도마뱀, 안녕!

친절한 베트남 사람들이여, 안녕!

빵빵 오토바이 그랩 택시들이여, 안녕!

내 영혼의 쌀국수여, 안녕!

심신의 피로를 달래준 608호 욕조와 침대여, 안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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