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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공간여행가K Jan 21. 2021

시간의 흐름을 바라보는 시간

02. 여행에서의 하늘 in 프라하

2년 전, 내 인생의 첫 번째 무소속의 시간을 가지게 되었다. 대학원 석사 과정을 병행하며 사회생활을 한 지 5년이 되던 해에 처음으로. 아주 어릴 적을 제외하곤, 학교에 다니거나 회사에 다니거나 혹은 둘을 병행하느라 늘 어딘가에 소속되어 있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때엔 무소속의 시간을 체감하기가 힘들었다. 회사와 이별했을 땐 석사 논문을 쓰고 있던 중이었고, 논문을 쓰고 나선 인테리어 회사에서 한 달간 프리랜서로 풀타임 근무 후, 바로 40일간의 유럽여행을 떠났기 때문이다.




경유지까지 포함해 6개국 9곳의 지역을 여행한 그 해 유럽여행은 20대가 가기 전 꼭 해보고 싶었던 버킷리스트였다. 그중 프라하는 여행 시작 후 2주쯤 되던 때에 3박 4일을 보낸 도시다. 원래 계획은 프라하에서 2박 3일을 보내고 맥주의 도시 '뮌헨'에 가려 했었지만, 뮌헨을 다음 여행으로 넘기고 프라하에서의 일정을 이틀 연장했었다. 프라하에 도착한 날이 생일이었는데, 코인세탁소를 찾아 빨래를 했더니 하루가 끝나버렸었기 때문이다. 그 덕에 프라하에서 이틀간 같은 카페에 앉아 같은 시간을 보낼 수 있었다.


본격적인 여행을 시작한 첫 도시, 프랑크푸르트의 게스트하우스에서 알게 된 언니와 프라하에서 다시 만나 점심을 먹고, 저녁때 예약해둔 재즈 다이닝 크루즈를 타기 전까지 혼자서 까를교와 프라하 성 주변을 산책했다. 여행지에서도 늘 보고 싶은 것이 많고, 특히 전시 보는 것을 좋아해서 박물관이나 미술관을 많이 갔었는데, 여행 기간이 길고 다른 도시에서 볼 전시 일정이 충분했던 터라 프라하에서는 조금 더 풍경을 즐기고 싶었다. 느긋하게 산책을 하고도 시간이 남아 크루즈 예약 시간이 되기 전까지 강가 노천카페에 앉아 시간을 보내기로 했다. 마침 여행 전 '꽃보다 할배'에서 보았던 강가 카페가 떠올라 나도 그 시간을 즐기고 싶었었기 때문이었다.




프라하 성이 보이는 노천카페에 적당한 자리를 찾아 앉았다. 마시던 음료 사진을 찍고는 멍하니 풍경을 바라보며 변화하는 하늘의 사진을 찍었다. 종일 구름이 많이 꼈다가도 잠깐 푸른 하늘이 보였었는데, 해가 질 때엔 주황빛에서 분홍빛으로 점차 물들어가며 구름부터 보랏빛이 도는 푸른색을 띠기 시작했다.



1시간 조금 넘는 시간 동안 혼자서 바라본 노을은 '아, 나 여행 와있는 거구나. 근데 나 혼자 유럽이란 낯선 곳에 와서 2주가 된 게 진짜 내가 경험하고 있는 시간이 맞나? 지금 이 순간이 정말 현실 맞는 거지? 프라하는 다음엔 꼭 엄마 모시고 와야지.'라는 생각이 들게 했다. 그 풍경과 순간이 열심히 살아온 나에게 보상해 주는 느낌이었다.




그날의 그 시간과 감정이 너무 마음에 들었고 한 번으론 아쉬워서, 그 다음날 비슷한 시간에 한 번 더 같은 곳에 갔었다. 전 날에는 크루즈 위에서 가로등이 켜지는 시간을 보내느라 그 광경을 놓쳤는데, 다음날엔 놓치지 않고 그 순간을 볼 수 있었다.



이렇게 멍하니 풍경을 바라볼 수 있던 시간이 얼마나 있었나. 여행 가서도 보고 싶은 게 많아 늘 바빴었던 것 같다. 그러나 프라하에서의 그 우연의 시간은 '역시 여행은 시간의 흐름을 보기 위한 것이다.'라는 생각을 강화시켰다. 그래서 그때의 여행 이후로는 여행에 '시간의 흐름을 보기 위한 시간'을 넣으려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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