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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Judy WOO Feb 22. 2020

그곳엔 진실도 카타르시스도 없었다

이정범 감독 <악질경찰> 리뷰

그렇다. 이정범 감독도 대한민국 국민이었다. 아마 그도 내가, 그리고 우리가 그러하듯 4월 15일 하염없이 영상을 보고 있었을 것이다. 또 속절없는 시간에 허탈과 무력감을 느꼈을 것이다.

그래서일까. 그는 가장 그가 잘할 수 있는 방법으로 이를 위로하고 기억하고자 했다. 바로 ‘액션느와르’이다. 사실 비리경찰은 그다지 신선한 소재는 아니다. <투캅스>, <끝까지 간다> 등 여러 영화에서부터 몇 년 전 화제였던 ‘버닝썬’ 등의 사건들로 확인된 실제 비리경찰에 이르기까지. 대중들은 현실과 비현실 속에서 수많은 비리경찰을 만나왔고, 이로 인해 친숙함(?)과 피로감을 동시에 느끼고 있는 상황이었다.

<악질경찰> 포스터

이런 연유인지 영화 <악질경찰>은 비리경찰이라는 사실보다는 사건 그 자체에 집중하는 모습을 보인다. 영화 초반 아무런 설명없이 그저 ATM을 털어 돈을 챙기는 악질경찰 조필호(이선균 분)을 보여준다. 감독은 왜 필호가 악질경찰이 되어있는지, 왜 그렇게 돈이 중요한지에 대해 그다지 설명하지 않는다. 또한 필호의 적, 악의 악의 행동의 이유도 과감히 생략되어 있다. 비자금 등 흔한 돈의 이유로 악의 악이 된 대기업의 모습, 그리고 마지막에는 정의를 위해 싸우는 비리경찰의 모습. 이는 마치 <끝까지 간다>의 나오는 비리 경찰 이선균이 <아저씨>의 원빈처럼 아이와 여자에게 대한 연민으로 심경의 변화가 생겨 목숨을 바쳐 사투를 벌인다는 오묘한 조합을 연상케 한다.

영화 <악질경찰> 中 권태주(왼)와 미나(오른)

 하지만 뭐니뭐니 해도 <악질경찰>의 포인트는 세월호 참사를 다뤘다는 점이다. 세월호 참사로 인해 친구를 잃은 미나(전소니 분)를 만나며 필호는 심경의 변화를 겪게 되고, 결국 미나의 복수를 위해 정이향 회장(송영창 분)과 그의 오른팔 권태주(박해준 분)과의 최후의 결투를 벌인다. ‘세월호 참사’를 추모하기 위해 선택했다는 감독의 의도와는 달리 평은 이분화되었음은 물론, 최종 관객 스코어 26만 명으로 흥행실패의 오명을 벗어날 수 없게 되었다.

 현대사회의 가장 주목되는 소재와 감독의 선한 의도에도 불구하고, 이렇듯 대중들의 차가운 외면을 받은 것은 왜 때문이었을까. 나는 그 이유를 ‘액션 느와르’라는 장르에서 설명해보고자 한다. 영화 <아저씨>, <우는 남자>를 통해 이정범 감독은 명실상부 대한민국에서 ‘액션 느와르’를 가장 잘 다루는 감독 중 하나로 인정받았다. 그렇기에 감독도 추모 방식으로 ‘액션 느와르’를 선택했을 것이다. 하지만 이 선택에는 치명적인 2가지의 허점이 존재했다.

첫째, 대표적인 액션신의 부재를 들 수 있다. 본디 느와르 장르란 숨 막힐 듯한 심리전과 멋진 액션을 통해 보는 이로 하여금 카타르시스를 느끼도록 하는 것이 최대 장점이자, 관객들이 바라는 점이다. 가장 대표적인 것이 <올드보이>의 장도리씬이다. 오대수(최민식 분)이 오랜 감금의 이유를 풀기 위해 기나긴 심리전을 마치고, 시원하게 액션을 날리는 장면. 막힘없이 그리고 시원하게 진행되는 액션을 통해 관객은 통쾌함을 느낀다. 

영화 <올드보이> 속 장도리 액션장면

그러나 <악질경찰>을 보자. 이번 영화에서 관객에게 기억되는 액션신이 있었는가. 그저 다른 느와르 영화에서 볼 수 있었던 흔하디 흔한 장면들 뿐이었다. 오히려 기억되는 장면이라고 하면, 미나가 권태주에게 반항하기 위해 자살한 장면을 드는 이가 대다수일 것이다. 이것은 통쾌함이 아닌, 관객들에게 더 큰 울분을 가져다주는 장면일 뿐이다. 

 둘째, 카타르시스의 부재이다. 아무리 뻔한 액션이라도 조금의 통쾌함은 있기 마련이다. 그러나 <악질경찰>은 그마저도 부족했다. 이는 감독이 선택한 소재의 특성이라고 할 수 있다. 보통의 액션영화라면 주인공이 복수를 결심한 이유, 그리고 관객들의 울분의 이유를 액션을 통해 전복시키면서 카타르시스를 가져온다. 그러나 <악질경찰> 울분의 인은 무엇이었던가. ‘세월호 참사’가 아닌가. 이는 ‘세월호 참사’의 진상규명 내지는 이에 관련된 관계자들에 대한 엄벌이 이루어져야 조금이나마 해소되는 문제이며, 애초에 완전한 카타르시스는 존재할 수 없는 사건이다. 또한 주인공 필호가 싸우는 적을 보자. 정이향 회장과 권태주가 아무리 악이라고 한들, 이들이 참사를 일으킨 직접적인 원인은 아니지 않다. 이는 그저 돈과 얽힌, 또 미나를 죽게 만든 독립적인 악일 뿐이다. 아무리 이들에게 복수한다고 한들 근본적인 해소는 이루어질 수 없는 것이다. 마치 왼쪽이 가려운데 오른쪽을 긁어주는 것과 같은 엉뚱한 처방이라 할 수 있다. 

 물론 ‘세월호 참사’ 소재를 선택한 것에 무조건적으로 비난할 만한 일은 아니다. 여전히 밝혀져야 할 진실들이 많고, 때문에 여러 방법을 통해 기억하고 환기시켜야 한다고 생각한다. 영화 <악질경찰> 역시 이 소재를 이용해 감동을 짜내려는 모습보다는, 담담한 시선을 유지하려는 모습이 일부나마 보여 긍정적으로 보인다. 또한 피해자의 사연들이 아닌 남겨진 이들의 모습의 집중하며, 앞으로의 보아야 하는 일들에 주목하는 모습을 보인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세월호 참사’는 조심스럽게 다뤄줘야 하는 소재이다. 그렇다고 무조건적으로 실제와 똑같이, 다큐멘터리로만 제작되어야 한다는 것은 아니다. 상상력이라는 것이 잘못하다간 의도를 오염시킬 수도 있지만, 한편으로는 관객들의 흥미를 자극해 소재를 널리 알릴 수 있는 매개체가 되는 것은 사실이기 때문이다. 

영화 <1987> 스틸컷

가령 지난 2018년에 개봉한 영화 <1987>의 경우 삼촌에 의해 얼떨결에 민주화운동에 참여하게 된 가상의 인물 연희(김태리 분)을 등장시켜, 관객들이 쉽게 극에 몰입하게 함은 물론 상대적으로 가려져있던 여성 운동가들의 모습을 전면으로 내세웠다는 긍정적 평가를 받는다. 영화 <악질경찰>이 아쉬운 대목도 여기에 있다. 좀 더 섬세한 상상력이 필요했다면, 해외 관객들에게는 참사를 알리는 대표적인 영화로 또 국내 관객들에게는 참사의 면을 다시 일깨워주는 역사적인 영화가 되지 않았을까. 하지만 이러한 아쉬운 점 역시, 추후 관련 소재에서 파생될 영화들을 위한 지표가 되리라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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