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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Judy WOO Feb 22. 2020

좀비는 그저 즐길 뿐!

짐 자무쉬 감독의 <데드 돈 다이(Dead Don't Die)>

사람들로 가득한 혼돈 속의 신도림 역. 누군가 와이파이를 격하게 외치며 찾으러 다닌다. 우리 주변에서 일어날 수 있는 굉장한 흔한 장면 같아 보이지만, 과연 찾는 이가 사람이 아니라 좀비라면? 또 부딪히는 물체 또한 사람이 아닌 샤도네이(와인의 한 종류)를 외치던 취향 있는 좀비라면 어떨까.

<데드 돈 다이> 예고편

 바로 그 황당한 이야기가 <데드 돈 다이>의 전부이다. 지난 2019년 칸 영화제의 개막작으로 선정되어 관심을 불러일으킨 이 영화는 소위 미국 독립영화의 대가로 불리는 짐 자무쉬의 신작이다. 나는 이 감독을 감히 ‘미국의 이명세’라 칭하고 싶다. 이명세 감독의 영화 <인정사정 볼 것 없다>를 예로 들어보자. 가령 지나가는 이들에게 이 영화에 대해 설명해보라고 했다면, 십중팔구 대부분의 사람들은 “Bee Gess의 Holiday”가 흐르고 있는 비속의 주먹다짐 장면을 기억할 것이다. <데드 돈 다이>도 그러하다. 일본도를 들고 다니는 미스터리한 장의사의 모습, 각자의 취향을 외치고 다니는 개취적인 좀비들의 모습 등. 전체적인 스토리가 기억나는 것이 아닌 인상적인 장면들의 향연들이 먼저 다가온다.


황당한 사건들의 향연

때문에 나는 짐 자무쉬 영화엔 사건이 있을 뿐 스토리는 없다고 말하고 싶다. 대부분의 영화들이 일련의 사건들을 통해 의미를 부여하고 스토리를 쌓아가는 방식이라면, 자무쉬 감독의 영화는 사건은 그저 사건일 뿐이며 시간은 그저 흘러갈 뿐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의 영화가 사랑받는 이유는 바로 ‘유머’이다. 마치 철학적인 사고를 이야기하듯 담담하고 차분하게 읊조리나, 내용은 황당무계하고 비급 코드를 품고 있다. 대표적인 장면으로 후반부 빌 머레이와 아담 드라이버의 대화씬을 들 수 있다. 아담이 “곧 좀비가 나타날 것이다:”라는 등 상황을 예견하고 이는 실제로 일어난다. 이에 머레이가 어떻게 그렇게 잘 맞추냐는 의문을 제기하자, 아담은 자무쉬 감독이 자기한테 먼저 대본을 줬다고 한다. 이에 머레이는 자기에겐 쪽대본밖에 안 줬다며 격분하는 모습을 보인다. 이는 갑자기 영화 밖 실제상황을 불러일으켜 긴장감이 고조되고 영화 속 흐름을 깨는 듯 하지만, 아이러니하게도 관객들에게 웃음을 선사한다.

과연 그의 영화에 해석이 중요할까? 그저 즐기면 되는 것이 아닌가라는 생각이 들게 한다. 이번 <데드 돈 다이>가 공개되고 난 뒤, 수많은 비평가들은 현재의 미국 정치상황을 비유했다는 해석을 내놓았다. 하지만 감독은 이에 난색을 표하며, <데드 돈 다이>는 그저 블랙코미디 영화라는 견해를 내비쳤다. 바로 이것이 감독의 의도가 아닌가 싶다. 영화를 사유하는 바로 그 순간, 영화를 즐기는 것이 그의 연출론이 아닐까 싶다.


좀비 영화가 아니다

 이러한 연유로 이번 국내 개봉 성적에 아쉬움을 표하지 않을 수 없다. 약 만 명(2020.2.01 기준)의 관객 스코어를 기록했기 때문이다. 물론 이는 예술영화에 있어 좋은 성적이라고 불릴 수 있다. 이에 나는 좀비 영화보다는 코미디 영화인 측면을 부각하였으면 더 좋은 성과를 얻지 않았을까라는 조심스러운 생각을 해보고자 한다. 좀비 영화는 소재의 특성상 호불호가 극렬하게 갈린다. 때문에 코미디 영화로 포지셔닝하여 좀 더 관객들에게 친숙하게 다가갔으면 좀 더 좋은 성적을 얻을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실제 <데드 돈 다이> 영화 자체도 좀비란 그저 코미디를 위한 콘셉트일 뿐이었으며, 좀비 영화의 전형적인 긴장감 있는 극 진행과는 거리가 멀었다. 일각에서는 <부산행>의 성공을 이유로 한국에서도 ‘좀비 영화’라는 장르가 이제 관객들에게 친숙해졌다고 한다.

<부산행> 스틸

 그러나 나의 생각은 다르다. <부산행>이 성공한 것은 좀비 영화라서가 아니다. 그 속에 나오는 인물들의 탈출기, 성장물 그리고 마지막의 감동적인 결말-소위 신파라 불리는-들이 있었기 때문이었다. <부산행>에서조차 최대 악은 좀비가 아닌, 동료를 버리는 사람들이 아니었는가. 아직 한국시장에서 ‘좀비 영화’가 성공할 수 있다고 확신하는 것은 시기상조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코미디라는 장르는 이미 수많은 흥행으로 한국시장의 성공을 확인시켜왔다. 그 예로 2019년 초에 개봉한 <극한직업>부터 <엑시트>에 이르기까지, 현재 한국시장의 흐름은 코미디 영화였다. 때문에 같은 시기에 개봉한 블랙코미디의 요소를 확실하게 담고 있던 <데드 돈 다이>의 성적에 아쉬움이 드는 이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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