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각한 얘기 끝에 ㅡ의자에 묶어두든지ㅡ하라는 농담 섞인 말을 던져두고 어머니는 볼일을 보러 아침 일찍부터 집을 나섰다. 평소 어머니의 꿈이 너무도 잘 맞았었기에 겁이 덜컥 났다. 그야말로 비상체제 돌입이었다. 언젠가 어머니가 아버지 출근길에 조심하라는 당부를 했던 어떤 날은 공사장 감독하시며 구석구석 다니시다가 30년 무사고의 아버지가 추락사고를 당한 적도 있었고, 가족 중 누군가에게 크고 작은 사고들이 생기기 전엔 아침부터 불길하다며 미간을 찌푸리시는 어머니 표정이 틀린 적이 없었기에 그날은 막내가 혹여라도 다칠까 봐 더더욱 신경을 곤두세우고 있었다.
그날 오후쯤 막내가 1층 빈 방에 내려가 혼자 놀다가 넋이 나간 얼굴로 2층으로 들어섰다. 2층 거실에 있던 나와 언니는 막내의 얼빠진 모습을 보고 '왜 안 들어오고 거기 섰어?'라고 의아해 묻는 표정으로 물끄러미 보다가 곧바로 무언가 잘못되었음을 느꼈다. 사색이 된 언니는 뛰어가 막내의 몸을 어루만지며 무슨 일이냐고 물었고 막내가 내민 손바닥엔, 두 줄기 전선을 타고 들어간 전기의 자국이 불냄새와 함께 새겨져 있었다. 감전사고였다. 그래도 그만하면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이내 의자에 묶어놓기라도 하라던 어머니의 말이 떠올랐다. 집 밖에 나가지 않게 하면 될 거라 생각하고 방심했다. 하지만 일어날 일은 오고야 말았고 불길한 어머니의 예감은 그날도 여지없이 맞아떨어졌다. 운명은 피할 수 없는 신만의 영역인지도 모르겠다고 생각했다. 어머니의 예감은, 또 꿈들은 늘 맞았지만 크던 작던 사고는 피할 수 없었으니 말이다. 예지몽은 되었지만, 예방몽은 될 수 없었다.
어려서부터 어머니의 꿈이 너무 잘 맞았던 탓에 더 불안해서였을까? 어머니는 자식들에게 늘 '조심'이라는 단어를 새겼다. 칠순이 훌쩍 넘은 지금도 밤 운전은 사고 날 수 있으니 조심하라고, 겨울 빙판길을 걸을 땐 손을 주머니에 넣으면 안 된다고, 꿈자리가 사나우면 집 밖에 나가지 말라고, 사람 너무 믿지 말라고... 끝도 없이 조심하라고 당부하시니 말이다. 빙판길을 걸으면 "주머니에서 손 빼."라는 말이 들리는 듯하다는 언니들의 말에 공감하며 웃은 적도 있었다. 하기사 나도 요리할 땐 불과 뜨거운 물, 기름 조심해야 한다는 말이 들리는 듯하고 내 아이들에게도 대물림하고 있으며 , 운전할 땐 늘 신경을 곤두세우기도 한다. 어머니 덕에 큰 사고 없이 자랐다.
늘 그렇게 온실 속 화초처럼 조심조심 걸으며. 좋게 말하면 온실, 부정적 단어를 끄집어 온다면 폐쇄적인 삶을 살았다고도 할 수 있겠다. 어른의 세계로 들어서기 전까진 난 폐쇄적이지만 안전한 그 공간이 참 좋았던 것 같다.
머구리처럼 폐쇄적인 나만의 안전장치를 그렇게 유지하며 들어섰던 어른의 세계. 안전하게만 살면 상처 없이 잘 살 수 있을 줄 알았지만, 그 어른의 세계 속 인간관계에서는 오히려 참 불편한 일이 많았던 것 같다. 간혹 내 기준에 비상식적인 사람을 만나면 당황해서 어찌해야 할지 모르다가 무 방비 상태로 상처를 받기도 했고, 머구리 안으로 물방울이라도 새어 들어오는 것처럼 불안에 떨며 안절부절못하기도 했기 때문이다. 다른 머구리를 찾아 쓴다든지, 머구리를 벗고 다른 숨 쉴 공간으로 들어설 준비가 나는 되어있지 않았던 것 같다. 문을 열고 나가지 말라는 목소리가 늘 나를 따라다녔기 때문일까?(어머니를 원망하는 것은 아니다.)
악몽 같은 예지몽을 꾸어도 일어날 일은 일어나고야 마는 세상. 신의 손바닥 같은 인생이라는 바다 위에서 나는 마음껏 다른 이의 경험 속으로 뛰어들어 탐험할 준비도 되어있지 않았고, 용기도 없었다. 문을 열고 들어가 보아야 난파선들 속에 보물로 가득 차 있는지, 썩은 누군가의 잔해들이 있는지 알 수 있었을 텐데, 몇 분의 일의 확률로 맞닥뜨릴 흉측한 것들을 보고 싶지 않아서 그 뒤에 보물로 가득 차 있을 수도 있다는 사실을 외면하며 그렇게 살아왔다.
그러다 어느 순간 머구리 안으로 물이 차오르고 있었다. 숨을 쉴 수가 없었다. 벗어던지고 새로운 머구리를 찾든 산소통 달린 마스크를 찾든 수면 위로 힘차게 발길질을 하며 떠오르든 해야 했었는데...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다 죽을 듯 죽을 듯.. 가빠져 오는 숨을 참으며 두려움에 떨기만 했던 것 같다.
그러다 결심했지.
죽든지 까무러치든지.
한 번 해보자고.
그럼 죽는다고..
주변 사람들 대부분 본인이 겪을 두려움 인양 몸서리칠 때, 안전제일을 외치던 어머니의
"이제 그만 해도 돼."
한 마디에
나는 안전함이 보장된 이 공간 안에서 숨 쉬다 산소를 다 쓰면 죽을 것인지..
열고 나가, 열심히 발차기를 하고 수면 위로 내 날숨을 쉬어내든지 고민하다가...
드디어 벗어던졌다.
다른 세계로의 문을 연 것이다.
적응하지 못한 허파가 뒤틀리는 듯했고, 조여 오는 듯했다. 적응되지 않는 그 고통을 견디다며 신을 찾다가 원망하다가 받아들이는 과정. 그 시간들.
금방이라도 그 문을 열면 죽을 거라던 사람들의 말이 무색하게도 나는 잘 견뎠고, 밝은 빛을 따라 수면 위로 위로 잘 올라가 기쁘게 숨을 쉬었다. 그리고 내 고통을 들여다볼 수 있는 문을 기꺼이 열어 보여주었다. 나처럼 문 뒤에 무엇이 있을까 두려워하지 않게 먼발치에서라도 살짝 엿보라고 그렇게 열어두었다.
해방 (解放)
1. 구속이나 억압, 부담 따위에서 벗어나게 함.
나를 함부로 대하지 않게 저항할 권리, 내가 살아가 싶은 방식대로 살 권리.
난 그토록 남들이 불안한 눈으로 보던 그 문을 열었지만, 열어보니 별 거 없었고 더 좋았다고나 할까? 진정한 해방의 맛을 개방을 통해 얻은 것이다. 나에게 조언을 구하고자 한 어떤 이가 내게 물었다. 많은 두려움을 어떻게 극복해야 하는지 말이다.
"저는 어려운 상황이 닥쳐도 내가 열심히 잘 헤쳐나가리라는 제 자신에 대한 믿음이 있어요. 경제적으로 어려운데 돈을 많이 벌게 될 거라는 믿음이 아니라, 힘든 일이 있는데 다 없던 일처럼 척척 해결한다는 게 아니라, 그걸 극복해내려고 끊임없이 노력할 거라는 믿음이요. "
언니가 말했다.
넌 회복탄력성이 좋은 사람이라고.
한 번도 그렇게 생각해본 적이 없었다. 난 우울이 취미이고 특기이고 그걸 즐기는 사람인 양 늘 허우적대기만 했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어쩌면 그런 시간들은 내가 극복하고 헤쳐나가려 애쓴 흔적들이 아닐까. 나의 내 자신에 대한 믿음, 회복탄력성. 그리고 마침내 얻은 이 해방감.
안전을 보장받았던 내 유년시절, 어머니의 보살핌 때문이 아니었을까 새삼 생각해 보았다. 어머니의 예지몽은 예방몽이 아니었다는 생각이 틀렸을 수도 있겠구나. 어머니는 걱정스러운 꿈을 통해 자식들을 보호하고, 그 안에서 안정감을 느낀 나는 더 단단해졌을 수도 있겠구나. 이런 생각을 하고 있자니 한 때 내가 가졌던 답답함이 한 번에 해소됐다. 나를 너무 세상으로부터 단절시켜서 나는 아무것도 하지 못하는 바보가 된 건 아닐까 안절부절못했던 지난 시절의 내가 무척이나 부끄러웠다.
내 아이들이 세상의 많은 문들을 다 열 수 있는 용기를 주고 싶다. 그 문 뒤에 보이는 것들을 통해서 때로는 희열을 느낄 수도, 불안을 느낄 수도, 환멸을 느낄 수도 있겠지만 스스로 판단하면서 잘 헤쳐나갈 수 있었으면 좋겠다. 어떤 상황에 맞닥뜨리든 자기 자신이 결정한 대로 밀고 나갈 용기를 가졌으면 좋겠다. 그러기 위해서 예지몽을 꾸지 못하는 나는, 온전히 내 경험을 통해서 아이들이 보고 배우기를 바란다.
개방, 그리고 그 뒤에 오는 진정한 자기 자신에 대한 사랑과 믿음을 온전히 느끼며 해방감을 만끽했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