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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스페인 한량 스티브 Jun 09. 2021

꽃은 조화를 이루며 산다

개성과 연대 사이에서

마드리드 주의 문화와 교육의 도시, 알칼라 데 에나레스 Alcalá de Henares는 봄이 찾아오면, 겨우내 정원사가 정성 들여 심고 가꾼 꽃들이 활짝 핀다. 꽃의 이름들은 모르지만, 형형색색의 생기발랄한 꽃들은 몇 번을 봐도 마음을 들뜨게 만들고 나이를 잊게 만든다. (안다, 꽃 좋아하면 이미 나이가 제법 들었다는 것을) 


알칼라 시민들은 물론, 주말이면 인근 도시에서도 다들 와서 거리 구석구석을 채운다. 특히 시내의 중심이 되는 세르반테스의 광장 양 옆으로 마요르 거리와 리브레로스 거리에는 식당들 마다 차리는 탁자와 의자로 빽빽한 데다, 삼삼오오 앉아서 요리와 음료를 즐기기 때문에, 과연 코로나가 있었던가 싶을 정도다.


평일 낮에는 마음 놓고 활보하지만, 주말에는 가급적 방문을 피한다. 저녁 시간이 되면 대학의 도시답게 학생들과 청년들이 어찌나 많은지, 이러다 재발하는 거 아닌가 하는 우려마저 들 때도 있다. 그래도 너무 조용해서 유령 도시 같은 분위기 보다 사람 사는 냄새가 나는 게 좋다. 알칼라 데 에나레스는 평범한 일상도 주민이면서 동시에 관광객으로 살아가게 만들어주는 최적의 도시다.




세르반테스 광장에는 장미꽃 위주로 화단이 심겨 있다. 장미의 종류가 얼마나 되는지 아시는 분?

구글 검색을 하면 언어마다 결과가 다른데, 일단 제일 적게 나온 게 150종이고, 많은 경우가 2만 5천 여종으로 나온다. 150종으로도 충분히 많다 싶은데도 미에 대한 본능적 열망은 어쩔 수 없는 듯하다.


꽃망울을 터뜨리는 게 우리나라는 보통 5월 마지막 주인데 스페인은 좀 더 이른 5월 초부터 만발한다. 그러다 6월이 넘어서면 지기 마련인데, 올해는 무슨 이유에서인지 봄에서 여름으로 넘어가는 지금까지 한창 피어있다. 보는 입장에선 그저 즐겁다.


주말엔 사람들이 바글바글 대지만 평일 낮에는 햇볕 쬐러 나온 어르신들만이 광장 의자에 앉아 친구분과 두런두런, 배우자와 말없이 그저 손을 맞잡으며 고요한 평온을 만끽한다. 덕분에 아내와 나는 관광 나온 아시아인이 되어 맘껏 누비며 눈이 호강 중이다. 색상은 다르지만 같은 장미과에 속해서 그런지, 화려함에서 나오는 그 색채가 '코로나야 얼른 물렀거라' 하며 대신 호령해 주는 듯하다. 


평소대로라면 지난달 즈음부터 이곳은 축제의 거리로 꾸며졌어야 한다. 4월 23일 세계 책의 날이자 언어의 날을 맞아 세르반테스 기념행사를 벌이고, 이어 5월 중순이면 중세시대로 거리를 조성해 광장에 발 디딜 틈 없이 지름이 3미터는 족히 될 빠에야부터 시작해 각종 먹거리와 음료, 거기에 아기자기한 수제 기념품 등의 상점이 즐비하게 있어야 하지만, 작년에 이어 올해도 조용히 넘어간다.


알칼라 데 에나레스의 세르반테스 광장




세르반테스 동상을 기준으로 좌측으로 가면 알칼라 대학교 건물이 있다. 금빛 찬란한 사암 건물로 1499년 건립을 시작해 1600년대까지 걸린 건물로 대학 건물 자체가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에 속한다. 개방시간에 맞춰 들어가면 안에 커피숍까지 있어 시간 여행의 한 복판에서 여유와 운치를 가득 맛볼 수 있다. 이런 건물에서 공부한다는 것 자체가 역사를 아우르고, 역사의 주인공과 교류하는 느낌을 주기에 충분할 것이다.


멋들어진 정문 앞 역시 광장과 화단이 조성되어 있는데, 이곳의 화단은 세르반테스의 그것과는 달리 가지각색의 꽃들이 심어져 있다. 분홍, 다홍, 노랑, 빨강, 보라, 연두, 초록. 언뜻 언급한 색상만을 놓고 생각한다면, 별로 어울리지 않을 성싶은 구성인데, 꽃으로 보니 그 자체로 완벽할 정도로 아름답고 예쁘다.


어쩜 저렇게 각기 다른 꽃잎부터 시작해, 활짝 피어나는 꽃 크기도, 뻗어가는 줄기도 하나도 같은 게 없는데, 아름다워 보일 수 있을까. 자연이 선사한, 그러나 분명 인간의 손길을 탄 신비로운 조화였다.


알칼라 대학교 정문


팀 라이트 작가님들이 생각났다. 스테르담 작가님의 공모와 제안으로 모인 형형색색의 개성 확실한 브런치 작가님들. 개성 있다고 해서 목청이 크거나 시끄럽고 방정맞다는 건 아니다. 조용하면 조용한대로, 명랑하면 명랑 한대로, 배경도 다양한 분들이 모여서 석 달 넘게 같이 해오고 있다. 어떻게 이게 가능한 일일까?


처음에는 다들 마음이 있음에도 어쩔 수 없는 작가들만의 특유의 낯가림과 어색함이 있었다. 나는 브런치 작가의 입문도 얼마 안 됐고, 가이드로서 마이크 잡던 게 있어서 입이 간질 거리기도 했지만, 그렇다고 뭘 주도할 수는 없는 위치와 입장, 실력이었기 때문에 웃는 리액션, 그리고 예비 작가이자 과거 직딩답게 말씀하시는 분들의 얘기를 놓치지 않고 열심히 메모했다.


그러다 여전히 조심스러운 분위기 속에 아이디어 좋은 작가님 몇 분과 실행력 좋은 작가님 몇 분으로 모임의 형태를 갖추며 팀 라이트를 이룰 유닛 unit이 구성되었다. 회의는 줌으로 진행하기에 거리감이 없지만, 그래도 물리적 거리상으론 제일 멀리 스페인에 뚝 떨어진 나로서는 그저 감탄만 나올 아이디어와 실행력의 집합체였다.


그러다 어느 날 팀 라이트에서 매달 마지막 주 토요일에 진행하는 <인사이트 나이트> 강연에서 인문학과 여행을 접목시켜 보자는 강의 제안이 들어왔고, 이를 계기로 나는 팀 라이트에 급 정착하게 되었다. 떨림 속에 4월 세계 인문학 여행을 스테르담 작가님, 마마뮤 작가님의 발표와 마야 작가님의 진행 속에 함께 했고 감사하게도 잘 마쳤다.




해외에 살아서 그런 걸까. 사람과 만남에 대한 목마름은 쉬이 가시질 않는다. 단톡방에서의 짧은 인사를 시작으로, 브런치 계정에 찾아가 구독을 누르고, 글을 읽고 좋아요도 누르고, 댓글을 남겨 보면서, 때로는 단톡방에서 스페인 일상에 대한 스케치도 올리며, 나를 알려보고, 작가님들을 알아가는 과정은, 관계의 갈증에 대한 나만의 해소였다.


진심은 진심을 알아본다. 수다와 넋두리, 또는 대화 그 어떤 형식이 되었든 시간이 흐름을 그냥 두지 않고 서로 간의 유대를 돈독히 하고자 하는 마음은 서로를 이해했고, 더 이해하고자 했다. 그렇게 작가들의 공동체는 작가 이전에 좋은 사람으로서의 만남으로 발전했고, 그런 만남은 나를 더 열심히 쓰게 만들었다.


베스트셀러 작가임에도 겸손의 인격이 빛나는 큰 형님, 스테르담 작가님.

언제나 생글생글 웃는 얼굴로 부드러운 말로 분위기를 풀어주는 나날 작가님.

따뜻한 글, 거기에 따스해지는 그림까지 더해 글에 향을 내는 글향 작가님.

풋풋한 솔직함과 코믹한 글에 빠져들면 못 나오게 만드는 개짱이 작가님.

우울함을 이겨내고 그 누구보다 정감 가득한 시선을 가진 나오미 작가님.

막내 작가의 포스 뿜뿜과 미저리의 매력까지, 모든 이를 조며들게 만든 날자 작가님.

마테일, 마갈량... 다음엔 또 어떤 별명이 생길까, 넘치는 재능 부자 마야 작가님.

전문강사의 역량으로 다이내믹한 일상을 꾸려가시는 에너자이져 라떼마마 작가님.

워낙에 바쁜 일정으로 만나 뵙진 못했지만 모르는 분 없는 능력자 체크인 작가님.

아직 몇 번 뵙지 못했기에 앞으로의 만남과 활약이 더욱 기대되는 이은영 작가님.

팀 라이트 작명부터 시작해 레터 유닛, 홍보까지 모두가 인정하는 프로, 이현진 작가님.

서글서글한 인상만으로도 좋은데 감성 가득 얹은 글까지 반하게 만든 춘프카 작가님.

전쟁에 잃은 누님으로, 음악, 언어, 수다 등 통하는 게 정말 많은 경험부자 마마뮤 작가님.


팀 라이트에서 만나 알게 되어 정말 감사합니다. 

개성 넘치면서도 조화를 이루는 꽃처럼, 우리 함께 같이 가요. ¡vamos juntos, os quiero mucho!



대학교 정문 앞 광장 화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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