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페인에서 세 자녀 한 달 아빠 육아 1

프롤로그-전지적 아내 시점

외국생활 이력이 곧 결혼생활의 역사인 우리 부부는 함께 산지 15년입니다. 오로지 남편 하나만 바라보고 따라 나온 아내는 영어권도 아닌 나라만 골라가는 남편 때문에, 적응할만하면 잊고 다시 처음부터 시작해야 하는 일을 반복했습니다. 말이 통하는 한국에 살아도, 나고 자란 고향을 떠나면, 낯선 그곳에서 적응하기 쉬운 일이 아닙니다. 그러니 애당초 아는 사람 하나 없고 말도 안 통하는 외계의 땅에서 느낄 어려움이야 말해 뭐하겠어요.


생활환경만 그런 게 아닙니다. 잊을만하면 아이를 갖고, 이제 좀 키워서 자기 시간을 가져보려 하니 또 아이를 가졌습니다. 이건 누구 탓을 하려는 건 아니고요, 그냥 저희가 살아온 게 그렇다는 얘기를 한 거예요. 그렇게 해서 저희 부부는 한국에서 첫아들을, 슬로바키아에서 둘째 녀석을, 스페인에서 막내딸을 낳았습니다. 서로 간에 터울이 좀 있는 아이들은 중학생, 초등학생, 유치원생으로 저마다 개성이 뚜렷해서 참 안 맞는 것 같다 싶으면서도 한 핏줄이라 그런지 통하는 것도 많아 볼 때마다 신기합니다.


저마다 본인의 일이 제일 힘들다 합니다. 그래도 남편은 직장인, 강사, 가이드, 작가 등 다양한 경험을 두루 쌓았습니다. 직장인 십 년 차에 나오더니 일찌감치 프리랜서의 길로 걸었어요. 시간이 갈수록 자기가 좋아하는 일을 찾아다니고요. 샌님인 외모와는 다르게 사람 만나 얘기하길 좋아하고, 사람을 많이 그리고 오래 만날 수록 에너지를 더 얻습니다. 말을 할수록 더 텐션이 오르는 그를 보면 예전 회사 다니던 남편은 누구였나 하는 생각이 들 정도지요.


남편은 나이가 들수록 삶의 활력을 찾고 발전하는 것 같아요. 무엇보다도 본인이 좋아하는 일을 찾은 게 옆에서 지켜보는 입장에선 솔직히 부러울 정도예요. 하지만, 아내인 나는 바라볼 사람이 가족을 벗어나기 어렵습니다. 그이가 대기업 회사원으로 있던 때는 하루가 멀다 하고 야근이라 못 봤죠. 그러다 가이드를 시작하자 스페인과 포르투갈, 모로코 곳곳을 다니며 짧게는 며칠, 길게는 몇 주씩 집을 안 들어옵니다. (일의 성격상 못 들어온다는 게 좀 더 정확하겠네요.)


코로나 때문에 모든 게 중단되어 집에서 원 없이 보겠다 싶었습니다. 맞아요. 그리고 아니에요. 어느 날 갑자기 <브런치 작가>라는 타이틀에 취해 글을 써야 한다더니 밤만 되면 부엌으로 나가서 안방으로 들어오질 않아요. 밤 말고 낮에 쓰면 안 되겠냐고 물으면 낮에는 애들과 토막토막 끊어지는 시간 때문에 집중이 잘 안 된다네요. 고수는 연장 탓 안 한다는데, 하긴, 아직 초보 작가니까요. 저도 스페인어 공부할 때 애들이 자꾸 찾아오면 맥이 끊기더라고요.


제가 남편에게 바라는 건, 영화 보면 왜 그런 장면 있잖아요. 밤이면 침대에 등 받치고 누운 부부가 서로 하루의 일과를 나누는 장면이요. 잠옷은 꼭 정전기가 치지직 하고 일 것 같은 실크, 아니면 유치 찬란한 무늬의 극세사로 된 걸 입고 말이죠. 결혼한 지 10년이 넘었는데 신혼을 바라는 건 아니고, 그저 동반자이자 배우자로, 오랜 친구로 서로 나누자는 거지요. 하지만 남편은 그때야 말로 본인이 하고 싶은 걸 할 수 있는 유일한 기회라면 미련 없이 노트북을 챙겨서 나갑니다. 그래도 나중엔 좀 미안했는지, 이전에 학기 중엔 오전에 한 시간 반 가량은 꼭 커피 데이트로 시간을 내주곤 했어요.


다시 궁색한 일상을 돌아보자면, 낮에는 낮대로 애보고, 장보고, 집안일하다가 시간이 후딱 지나가요. 정성을 다해 밥상을 차려도 남편은 10분도 안 돼서 바로 일어나요. 배부르다면서 더는 못 먹겠다 하거든요. 맛없는 걸 돌려 말하는 건가 했는데, 다행히 그건 아니고 정말 적게 먹는 거였어요. 많이 먹으면 졸리다 하네요. (그런데 적게 먹고도 잘만 시에스타 시간을 가지던데? 아, 그건 전날 늦게 잔 거에 대한 벌충이군요.)


사실, 밥 먹는 건 얘기를 나누는 일이기도 한데, 아이들은 아직 반도 안 먹은 상태에서 일어나면 꼭 그래야 하나 싶었어요. 그렇다고 그걸 갖고 또 뭐라고 딱 꼬집어 말하기는 그렇잖아요. 그래서 서둘러 후식 준비해서 다시 불러오곤 해요. 아니면, 남편이 좋아하는 화이트 와인 한 잔을 준비하기도 하지요. 들어가는 건 적지만, 나오는 게 많거든요.


제가 원하는 건 그저 일상의 대화 속에 서로를 보다 잘 이해하며 하루를 마무리하는 거예요. 다른 큰 일도 아니고요. 얼마나 좋은 일이에요. 남들에게는 더 없는 배려남이자 가정적인 남편으로 보이지만, 저에게는 남들에게 주는 관심의 절반도 안 주는 것 같은 느낌적 느낌이에요. (팩트가 아니라 다행입니다, 험험)


하지만, 현실은 남편의 따스한 품에 안겨 나누는 대화 보다, 마사지 기계 속에 어깨부터 종아리까지 마사지를 받으며 스페인어 책 붙들고 공부하고 있어요. 사실, 남편과 저 둘 다 마른 편이라 우린 서로를 껴안고 누워 있으면 푸근함이 아니라 뼈끼리 닿아서 아파서 금방 깍지를 풀고 돌아눕곤 해요.


그 와중에 막내는 자기 침대에서 자다가 기어코 기어 나와 제 가슴께에서 칭얼대고요. 남편은 어느새 글인지 뭔지를 쓴다고 나가요. 그렇다고 정말 브런치에 글을 하루도 빠짐없이 발행하는 것도 아니면서 말이죠, 킁. 저도 독자라 남편처럼 작가님들이 글 발행하는 즉시 띵! 하고 알림 뜨는 거 알고 있어요.


전날에 뭘 그렇게 하는지 새벽에 늦게 자는 거 보면 정말 걱정이에요. 몇 시에 자는지 물어봐도 건성으로 대답해요. 돌도 씹어먹을 이삼십 대도 아닌데, 일주일에 며칠씩 저렇게 지속하다 갑자기 쓰러지는 게 아닐까 하는 노심초사 속에 마음이 불편해요. 걱정이 잔소리로 나오게 되는 게 저도 싫고요.


운동하라는 얘기는 연애 때부터 지금까지 하루도 빼먹은 날이 없건만, 남편에겐 블랙홀입니다. 게다가 입이 짧아서 (그나마 편식 안 하는 건 고맙고 다행이지만), 살찔 기미가 없어요. 코로나 초기에는 밥 차리고 돌아서면 간식 달라고 조르는 아이들 덕에, 먹는 아이들 따라먹다가 2, 3킬로 정도 쪘는데, 다시 조금만 먹으면 배부르다며 물리는 까닭에 다시 빠졌어요.


그래도 근 일 년 반 지내면서 세 아이와 모두 엄청 가까워지고, 아이들이 찾는 아빠가 되어서 고맙고 감사해요. 남편과 아이들의 관계를 보면서 행복을 위해 돈은 필수인 건 맞지만, 그렇다고 절대적인 건 아니라는 걸 피부로 느껴요. 중학생과 초등학생인 두 아들에게 과외교사가 되어주고, 유치원생인 막내에겐 집안 독서와 집 밖 놀이까지 부족함 없이 아우르는 걸 보면서, 저에게 어느 날 무슨 일이 생긴다 해도 걱정할 게 별로 없겠단 생각이 들었어요. (계속)


(제목 배경 : 스페인 레온 주 레온 대성당 앞 가족 여행 사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