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아하는 형님을 만나 일을 도와드리고 왔다. '코로나 때문에 돈은 못 벌지만, 여전히 어딘가에 쓸모는 있어.' 하며 스스로 뿌듯해하며 기분 좋게 귀가했다. 집안의 공기가 이상하다. 외출 후 여느 때 같으면 다들 나와서 강아지 꼬리 치듯 반기며 안겨야 하는데, 차분하기만 하다. 아내도 잠잠하다.
자초지종을 듣고 곧바로 아내의 비행기 표를 알아봤다. 마음 같아서는 식구를 다 데리고 가면 좋겠지만 형편상 그럴 수 없어서 아내만 가기로 했다. 하지만 때가 때인지라 바로 갈 수도 없었다. 선배님들께 자문을 구했고, 그때부터 열심히 사이트를 찾으며 메모를 하고, 출발 가능 일정을 계산했다.
아내는 대사관에 다녀왔고, 이후 출국 전날까지 일주일 남짓의 시간 동안 4인 가족의 일용할 양식을 제조하기 시작했다. 아내는 작지만 야무진 생산 공장이자 반찬 가게이다. 좁은 부엌은 계속해서 펄펄 끓는 김을 뿜어댔고, 칼질은 도마 위에서 멈추지 않았으며, 냉장고 안은 아내의 작품으로 차곡차곡 채워져 갔다. 아이들은 정말 엄마가 가긴 가는 건가, 가서 한 달씩이나 떨어져 지내는 건가, 이 모든 게 진짜인가 하는 것으로 엉켜 있었다.
아내는 준비를 하면서도 몇 번이고 같은 말을 했다
- 이상해요, 여보. 전혀 불안하지 않아요. 당신을 내가 엄청 믿는가 봐요.
- 그래요, 나두요. (마음의 소리-응, 아니야, 이런 말에 말려들면 안 돼)
애 셋을 데리고 살면서 하도 시트콤 같은 상황을 많이 겪어서 그런 걸까. 한 달간의 생이별을 앞두고도 진지함보다는 자꾸 되지도 않는 이상한 드립만 입안에 맴돌아서, 제정신인가 하는 생각마저 들었다. 한편으론, 나 역시 아내가 떠난 후 애들하고만 덜렁 남겨질 상황이 딱히 걱정되지 않았다. 다섯 살 막내만 어찌어찌 엄마의 빈자리를 잘 보듬어 주면 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가기 전에도 복잡한 서류 준비로 머리를 혼미케 하던 아내의 출국은, 인천 공항 도착까지 그야말로 it ain't over till it's over 끝날 때까지 끝난 게 아니라는 말을 몇 번이고 되새기게 했다: 복잡한 서류도, 항공권도, 언뜻 보면 그럴 듯 하지만, 다시 보면 딱 부러지지 않는 애매모호한 말이 수두룩 했다. 그래서, 이게 도대체 된다는 거야, 안 된다는 거야, 어휴 진짜, 속 시원한 결론은 오로지 비행기를 탑승하는 당일날 알 수 있었다.
코로나로 직항이 사라진 스페인에서는 무조건 경유를 통해서 가야만 한다. 그런데 출국 당일 출국 시각 4시간 전에 마드리드 발 항공편이 1시간 15분이나 지연된다는 메일이 왔다. 보딩 기준 3시간 전이고, 수속 기준 2시간 전, 다시 집 출발 기준으로 보면 1시간 반 전에야 안 셈이다. 입에서 욕이 절로 나왔다.
경유 공항의 대기 시간이 1시간 25분인데, 출발이 1시간 15분이나 늦는다니. 공항 도착 즉시 발바닥에 불나게 뛰어서 10분 만에 탑승한다고? 탑승 마감이 20분 전인데? 아내 말로는 직원이 문제없다고 했단다. 미라클 모닝에 이어 미라클 보딩인가?
참고로, 코로나 때문에 공항에는 출국 당사자만 들어갈 수 있다. 그날 밤, 나는 몇 번씩 새로고침을 해 가며 경유 공항의 상태, 두 비행편의 도착과 출국 시각을 거듭 확인하느라 진이 빠졌다. 수없는 새로고침 끝에 환승편 비행기 역시 40분 지연되었다는 걸 보고서야 비로소 안심 가운데 누울 수 있었다. 나중에 아내 말로는, 환승 이용객을 따로 안내해 데려간 덕에 문제없이 타고 갔단다.
마드리드 공항 앞. 초등학생과 중학생인 두 아들은 나이 덕인지 남자들이라 그런지 포옹을 할지언정 울먹 거리지 않았다. 하지만 다섯 살인 막내딸은 달랐다. 엄마하고 헤어지는데도 늘 그렇듯 애교 섞인 표정과 귀여운 말을 하며 까불거리더니, 차에 타면서 엄마와 멀어지자 그때부터 실감을 한 건지 운다. 3분도 채 안 돼 아내에게 전화해 딸과 통화를 시켰다. 아내의 코맹맹해지는 목소리에 큰 녀석도 약간 울컥하려는 듯싶다.
안 되겠다. 나와라, 유튜브, 시크릿 쥬쥬 노래 연속 듣기. 막내가 좋아하는 만화 주제가를 틀어주니 아이는 울다가 웃고 곧이어 신나서 따라 부른다. 이왕에 기분 더 풀어주자 싶어서 집 가는 길에 있는 쇼핑몰에 들렸다. 그곳엔 아이들이 즐겨가던 vertical park, 암벽등반 줄타기 놀이터가 있다. 다들 가기 전까지는 좋아하다가, 막상 도착하니 다시 막내는 못 가겠다고 한다.
두 오빠만 한 시간을 놀고, 막내는 나와서 다른 곳으로 데리고 돌아다녔는데, 한 시간이 그렇게 길었나 싶었다. 그래도 맥도날드의 콘 아이스크림은 아빠와 아이들 모두를 행복하게 했다. 콘을 먹으며 (고맙게도) 출발 지연으로 여전히 대기 중인 엄마와 통화한 것 역시 아이들의 마음을 잡아주었다.
방학 사이 발이 커진 둘째에게 학교 구두를 사주고, 아이들에게는 저마다 간식거리를 안겨줬다. 큰 녀석은 어느새 코로나 시대를 살아가며 집안 살림을 헤아리는 아이가 되었다. 동생들은 자기가 먹고 싶은 걸 샀지만 녀석은 제일 싼 걸 집어 와서는 자긴 이거면 됐다고 한다. 콧등이 시큰했다.
집에 돌아오니 저녁 먹을 시간. 첫날 저녁은 엄마의 반찬보다는 아빠의 파스타, 펜네 볼로네제로 대신하고 싶었다. 애들, 특히 막내가 반찬 보자마자 엄마 생각난다고 할까 봐서. 아이들은 샐러드와 함께 푸짐하게 그릇을 채운 파스타를 남김없이 잘 먹었다. 부른 배에 샤워까지 하고 나니, 다들 밤 11시도 되기 전에 뻗었다.
가끔 아내는 알다가도 모를 사람이다. 나 역시 아내에게 그럴 테지만.
멘붕의 소식을 듣고도 차분하게 하나하나 준비한다. 한 달 치의 찬거리를 다듬고 만들어 내며 냉장고의 칸들을 장식한다. 그러다 수하물의 번호 자물쇠를 잘못 만졌다. 사소한 실수 하나 때문에 그만 캐리어가 잠기자 자기는 이제 어떡하느냐며 펄쩍펄쩍 뛰었다.
모름지기 모를 땐 귀찮더라도 하나하나 다 경우의 수를 살펴보는 게 최고다. 이런 때를 위해 아이들에게도 나 스스로에게도 항상 되뇌던 말이 있지 않았는가: "세상의 모든 귀찮은 일은 전부 내가 해야 할 일이다."
아무렇지도 않다는 듯,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 의연히 앉아 세 자리의 자물쇠 번호를 000부터 시작해 하나씩 더해가며 돌렸다. 마침내 795번의 숫자로 잠금장치를 풀었다. (의미 없는 말이지만, 이럴 줄 알았으면 000에서 001, 002...로 올릴 게 아니라 999, 998...로 하나씩 내리면서 확인해 볼 걸! 학생 때 객관식이나 어른 때 로또나 아무튼 찍기는 나와 영 안 맞는다.)
그래 봤자 겨우 15분도 안 되는 일이지만. 그 사이에 금고 다이얼 돌리듯 하나씩 돌려가며 맞춘 아빠는 몇 날 며칠을 쉼 없이 준비하며 한 달간의 일용할 양식을 마련한 엄마보다 영웅이 되었다, 민망하게 시리.
아내의 말대로 걱정할 것도, 고민할 것도 없었다. 아내의 예상대로 아이들도 별 요동 없이 잘 보냈다. 막내가 잊을만하면 엄마를 찾고, 특히 잘 때 엄마 생각난다며 훌쩍이긴 했지만, 고맙게도 책 읽어주는 사이에 금방 잦아들고 잠에 빠졌다.
다음 날 일어나 막내와 함께 아침인사를 보냈다. 잠시 후 아내에게서 예정보다 1시간 늦게 도착했다는 카톡이 왔다. 끝날 때까지 끝난 게 아닌 아내의 출국은 그렇게 별 탈 없이 마무리 지었다. 동시에 본격적인 한량주부의 생활이 시작됐다.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