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는 없어서요
해외 나와 한국기업 회사원 10년 차를 정리하고 나왔다. 자의 반 타의 반이었다. 회사는 늘 쪼고 쪼이는 관계였다. 상사든 동료든 대등한 입장에서 필요한 정보를 요청하고 제공하는 것이 아닌 먹이사슬 마냥 서로 쪼고 쪼이는 관계. 어쩌면 직군 이름부터 chain이 들어가는 거라 그랬을까.
나의 생활은 회사와 가정이 구분되어 있지 않았다. 퇴근해도 전화든 메시지든 본인들 필요한 대로 연락을 하면 AI 마냥 응대해야 했다. 일하는 중엔 낮과 밤의 차이도 딱히 없었다. 그냥 출근하면 퇴근 전까지 시간의 구분 없이 일이자 업무일 뿐이었다. 그래서 야근이란 말을 굳이 쓰지도 않았다. 현지인들이 퇴근하고 나면, 농담 반 진담 반 이제부터 본격적으로 일 해보자 라는 말을 할 정도였다.
유럽에선 유급 휴가가 한 달 가까이 된다지만 잘 모르겠다. 주말 껴서 겨우 사나흘을 쓰면서도 눈치란 눈치는 다 보고 휴가를 내면서도 마음 한편은 늘 찜찜함을 가져야 했다. 휴가를 다녀올 때는 언제나 상사와 동료에게 미안한 마음을 가져야 하는 게 미덕인 거 마냥 여겨졌다. (지금 생각해 봐도 미친 짓이다. 기업이 월급 주는 거지 자기들이 주는 것도 아닌데)
근면성실을 강조하는 한국인이니만큼 놀고먹고 쉬는 휴가를 다녀오는 건 죄인이나 할 짓이다. 지금도 기업가 기사 중엔 자신은 단 한 번도 휴가를 다녀와 본 적이 없다는 걸 개국공신 훈장 마냥 써갈긴 기사를 볼 때마다 체한 것 마냥 가슴을 움켜쥔다. 사장이 저러니 직원들이 과연 행복할까. 예전의 나처럼 잠재적 죄의식 속에 갇혀서 평생 남에게 눌려 살고 말을 것 같아서 답답하다.
휴가를 당당한 나의 권리로써 사용하는 것이 아니라, 회사 자금을 대규모로 끌어오는 사업 기획서를 내듯 어렵게 결제를 내 타진하곤 했다. 현지인들처럼 일방 통보로 제출한다는 건 상상도 못 할 일이었다. 그건 아예 책상을 뺄 각오를 해야 가능하다.
해외에서 일하는 데 왜 휴가는 현지인들처럼 쓰질 못할까? 그들이 항상 들먹이는 이유는 '넌 쟤들보다 돈을 많이 받잖아.'였다. 찌질이처럼 지금에서야 겨우 꺼내는 얘기지만, 그럼 상사인 당신들은? 당신들은 더 받으면서 나보다 휴가도 더 쓰는데 왜 나만 만날 그놈의 몇 푼 더 받는다는 걸로 볼모 잡혀야 했나. 그 지긋지긋한 회사를 나온 지 수년이나 지났음에도 여전히 마음의 멍울이 느껴진다.
왜일까. 어쩌면 보다 더 근본적인 이유는 찌질했던 내 모습이 너무나 선명하게 떠오르기 때문이다. 그냥 한마디라도 내질러 볼걸. 내가 그렇게까지 잘못한 것도 없는데, 아니 그래도 그렇지 이건 좀 부당한 거 아니냐고 한번 개겨라도 볼 걸. 사람 좋아한다더니, 선을 넘어선 남들의 말에도, 멍청할 정도로 착해 빠져서, 상사의 말에 맥없이 휘둘리고, 가스 라이팅 당한 줄도 모르고, 그렇게 자기 검열 속에 자아는 형편없이 무너졌었다.
휴가 한번 쓰는 것에 그렇게나 전전긍긍해야 했던 내가 지금은 아예 남들의 휴가 자체를 타깃으로 하는 '가이드'를 업으로 삼다니... 인생은 정말 알 길이 없다. 역설로 가득 찬 게 인생인가 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