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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스페인 한량 스티브 Jun 02. 2022

아닌 것을 아니다 못하는

본격 불만 토로 글

맞는 것을 맞다고 하는 것보다 아닌 것을 아니다 하는 게 더 어렵다. 이유가 대체 뭘까.
나이, 직급, 관계, 서열, 친분 등 '나'라는 존재는 온전히 '나'로 존재하기가 어렵다.

나는 분명 나 자신으로서의 목소리를 내고 싶지만 사회는 그걸 잘 용납하지 않는다.


매우 주관적인 느낌이지만 사극에서 가장 많이 듣는 말이 '감히, 어디서, 내가 누군지 알고' 등이다.
이런 경우 상황은 대개 논리로 상대를 이기기 어려운 경우, 단전에 힘을 주고 용트림하듯 끌어올리며, 강세는 끝으로 갈수록 힘이 실린다. 다시 말하지만, 이건 매우 주관적인 인상이자 느낌이다. 사족으로, 흥미롭게도 영어는 그 반대의 경우가 많다. 감이 안 온다면, 영화 속에서 전화통 붙잡고 한 단어씩 씩씩 거리며 내뱉고 역정 내는 장면을 떠올려 보길.


반만년의 유구한 역사 속에 이런 분위기가 소위 전통이라는 허울을 쓰고 자리 잡고 있으면, 암묵적이든 공개적이든 '나' 자신은 나 자체로 보이기가 거의 불가능에 가깝다. 집단 또는 공동체에서 맡은 역할, 기능, 전체 그림을 맞추기 위한 하나의 퍼즐 조각으로 꼬리표가 붙기 마련이다. 회사를 떠올려 보라. 이름 대신 호칭으로만 불려도 아무 문제가 없다. 나를 잃어버리고 내비게이션의 좌표처럼 위치와 기능만이 남았다.

그런 곳에 있으면 알아서 기어야 한다. 이런 걸 곱게 포장 '뱁새가 황새의 깊은 뜻을 어찌 알랴' 하며 은근히 돌려 내비친다. 그러나 정작 그런 말을 하는 자신은 해당 조직에서 대붕은커녕 폭탄인 카붐이라는 걸 본인만 모른다.


문제는 그런 곳에 있으면 함께 있는 자들도 병들어 간다는 점이다. 처음에는 '아니야, 나만이라도 정신 차리고 있으면 돼. 나만 잘하면 돼.' 라며 거듭 다짐하지만, 앞에서는 기고, 뒤에서는 욕하니, 지킬과 하이드도 아니고, 정신이 온전할 수가 없다.


이는 회사에만 국한된 이야기가 아니다. 가정, 종교 단체, 각종 취미 모임, 어디에서건 적용되는 일이다. 어제 오늘의 일도 아니다. 인간이 모여 있는 곳에서는 어디든 일어다. 그러니 우리나라에서만 국한된 것도 아니다. 다시 처음로 돌아가서, 왜 우리나라는 이처럼 아닌 것을 아니라고 말하는 일이 그렇게나 어려울까.




요새 유럽의 역사 영화에 빠져 있어 그런 것일지도 모른다 (헨리 5세, 아웃로 킹, 오스만 제국의 꿈 등). 역으로 한, 중, 일의 역사물을 그만큼 보지 않아 감각이 떨어진 것일 수도 있다. 영화와 다큐에 등장하는 폭군, 암군, 명군 가릴 거 없이 저들의 왕은 감히 눈도 마주치지 못할 신성불가침의 존재가 아닌 것 같다. 그저 나 같은 인간인데 어쩌다 보니 왕이 된 건가 보다 라는 황당한 생각마저 들 정도다.

그러니 왕이 뭐라 말하든 본인 생각을 눈치 안 보고 얘기하고, 왕 역시 흥분이나 권위로 누르기보다는 상대의 논리를 그대로 따라가 허를 찔러 뒤엎거나, 따박따박 반박을 하거나, 전혀 다른 제3의 의견을 제시하는 게 아닐까. (물론 필터링을 거치지 않고 내뱉었다가 그 자리에서 세상을 떠나는 경우도 다반사지만 그건 다른 영역의 주제다.)

정확한 객관적 역사적 이유까지는 모르겠다. 알 수도 없다. 자료가 얼마나 된다고 그것으로 그때와 지금의 시대를 설명하겠는가. 상당수는 학자의 뇌피셜이고, 저자의 공상물이며, 승자의 창작이다. 거창한 데서 찾을 것도 없다. 연인, 부부, 형제, 자매, 남매처럼 단 둘만으로도 한 번 틀어지는 일이 생기면 얼마나 지리멸렬하게 본인 입장만 침 튀겨가며 목소리를 내세우는지 돌이켜 보면 알지 않은가.

   



모두가 Yes라 할 때 No라 하는 사람, 반대로 모두가 No라 할 때 Yes라 하는 사람을 광고로 내세운 게 있다. 실은 모두가 뭐라 하든 상관없다. 내 논리와 상식 선에서 맞으면 Yes이고 아니라면 납득할 이유를 대서 No라고 하면 될 일이다. 마지막 문구처럼 Yes든 No든 소신 있게만 말할 수 있으면 된다.


많은 걸 바라지 않는다. 그저 맞는 걸 맞다 할 수 있고, 아닌 걸 아니다라고만 하면 좋겠다. ... 응, 정말 그런가?
 
다시 생각해 보니, 앞 문장은 전혀 어려울 게 없다. 입이 있으면 말하면 될 일이다. 몇 개의 현학적인 단어로 운치 있게 휘감건, 천박스러운 싸구려로 도배를 하건, 얼마든지 가능하다. 입이 있음에도 말하지 않으면 어떻게 알겠는가. 제대로 된 소통이 없으면 눈치 경쟁만 난무하고, 헛다리 짚는 것만 양산할 따름이다.

내 말에 '감히, 어디서' 이런 식으로 속으로 기분 상해서 꽁해 있다가, 자신의 유리한 위치를 이용해 장난질 하지 않으면 좋겠다. '내가 왜 이러는지 네가 알아서 생각해 봐.'라는 식의 말도 안 되는 이심전심 기술을 시전하지 않으면 좋겠다. 자신의 기분이 태도가 되고 마는 저급한 수준에서 벗어나면 좋겠다. 연인 관계가 아닌 이상 비즈니스로 만나는 자리라면 사실, 의견, 논리, 감정을 구분해서 수평적인 인간 대 인간으로 응하길 바란다.


소신 있어 보이는 얼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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