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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스페인 한량 스티브 Mar 29. 2023

글쓰기와 말하기의 순환

이번 달은 <글쓰기>가 주제이다. 글쟁이들의 가장 기본인 글쓰기를 소재로 글을 쓰라니. 좋으면서도 싫다. 좋다는 건 평소 생각하던 것인지라 무엇이든 자유롭게 풀어내 볼 수 있지 않을까 하여 그런 것이고, 싫다는 건 가장 기본이기에 그간의 부실공사가 드디어 여기서 끝을 보겠구나 하는 두려움에서이다. 내밀한 모습을 보이려니 힘들어서 이기도 하다. 나 역시 감정의 치유, 자신에 대한 발견 등에 대해 쓰려했으나, 팀라이트 작가님들의 글을 주욱 읽어보니, 나보다 배는 더 깊이 와닿게 말씀을 하신 터라, 어쭙잖게 썼다가는 본전도 못 건질 판이 되었다. 하여, 내 업과 관련된 글쓰기로 써 본다. 평소 감정과잉이라 할 정도로 감정에 충실한 글만 써오다, 이번에는 좀 딱딱한 생각에 시선을 돌리기로 했다. (이는 F 성향인 본인에게 매우 힘든 작업임을 감안해 주시고, 부실한 글이더라도 이해를 해 주십사 하는 밑밥...) 

 



나는 가이드를 업으로 하는 사람이다. 가이드는 기본적으로 말을 많이 하지만, 우연한 기회에 칼럼글을 쓰는 기회를 얻어 연재하는 작가로서 활동도 했다. 그때 쓴 마흔 편의 칼럼글은 이제 버스 안에서 낭독의 소재로 자리 잡아 손님들에게 보다 짙은 여운을 남기는 마중물로 활용되고 있다. 


덕분에 그간 영상으로만 본 세계테마기행을 본인이 직접 느끼게 만드는 문화해설사로도 역할을 감당하게 되었다. 말하기와 글쓰기의 순환은 나를 단순한 사실 열거의 가이드가 아닌, 하나의 장편 스토리텔링이자 거대한 인문학의 세계로 안내하는 거리의 인문학자로 자리매김하게 해 주었다. 이는 결국 본인뿐만 아니라 함께하는 사람들의 삶을 보다 풍성하게 만드는 일로 귀결되기에, 일을 나갈 때마다 설렘과 보람을 동시에 느낀다.

  

버스에 타면 역사와 문화 및 남은 일정을 전하느라 바쁘고, 내리면 눈에 띄는 것마다 무엇인지 알려주느라 쉴틈이 없고, 입장지에 들어가면 본격적으로 설명하느라 잠시도 입을 다물 새가 없다. 여담이지만, 한번 출장 갔다 오면 일주일에 4~5킬로 감량은 기본 보증인지라, 다이어트에 있어 가이드 보다 더 좋은 업은 없지 않을까 한다.


혀로 쉴 새 없이 현란한 드리블을 구사하든, 술술 끊임없이 뽑아내는 지식 자판기로 자리매김하든 간에 일단, 말로써 설명한다는 것은 아웃풋의 작업이다. 아웃풋을 내려면 인풋이 있어야만 가능하다. 블로그의 근거 없는 Ctrl C, Ctrl V 식 설명이나, 어설픈 귀동냥 또는 짜깁기 수준을 넘어서려면 우선 제대로 된 독서부터 시작해야 맞을 것이다.  


그렇지만 독서 자체가 좋은 설명을 보증해 주지는 못한다. 안다는 것과 설명한다는 것은 전혀 차원이 다른 이야기이기 때문이다. 전교 1등만 하던 학생은 의외로 선생님이 되기 어렵다. 수학의 어떤 명제나 공식에 대해 이해 못 한다는 사실 자체를 이해 못 하는 데, 어떻게 그 마음을 헤아려 볼 수 있겠는가. 


영어 선생님은 자신이 말을 잘하는 게 중요한 게 아니다. 배우는 학생이 말을 잘하게끔 도와주고 알려줘야 한다. 그래서 의외로 (영어) 원어민 선생님은 설명에 약하다. 당연하게만 여기고, 굳이 왜?라는 질문을 던진 적이 없던 걸 설명하려니 오히려 자기가 이렇게나 모국어를 몰랐다는 사실에 충격을 받기까지 한다. 


이는 가이드도 마찬가지이다. 아무리 로마 역대 황제 이름과 합스부르크 가문의 역사를 꿰고 있다 한들, 한 장소에서 수십 컷의 연사를 날리는 거대한 건축물 앞에서 건축양식이며 연대표를 말한들, 손님의 관심과 흥미를 끌어내지 못하면 그것은 나르시시즘에 빠진 관종에 지나지 않는다. 


읽었으면 정리하는 작업이 필요하고, 정리한 것에서 다시 핵심 요소를 빼내야 한다. 단어의 나열이 되었건, 문구의 기승전결이 되었건, 문장의 서술이 되었건 이는 모두 글쓰기에 해당한다. 글쓰기로 정리를 해 두지 않는다면 설명은 꼬이거나, 했던 말을 무한 반복하거나, 삼천포로 빠지는 일이 부지기수로 일어난다. 


글을 쓰는 동안에도 생각은 붕붕 거리는 파리처럼 머릿속을 휘집고 다닌다. 그래도 잡생각의 파리가 한 마리임에 감사해야 한다. 간혹 파리떼가 되어 올 때도 있는데, 그때는 단순한 사실들의 정리, 나열조차 쉽지 않은 터라 아예 자리를 일어나 머리를 식히고 오기도 한다.


다 쓴 글을 몇 번이고 읽다 보면 본인이 제대로 이해를 한 것인지를 가늠하게 된다. 쓰는 듯 말하게 되고, 말하듯 쓰는 일이 서로 순환하면서 말은 단 한 마디를 전하더라도 깊이를 느끼게 하며, 글에서는 단 한 줄에서도 다시 읽어보게 만드는 힘을 지닌 것으로 발전한다.


비단 이런 일은 가이드에만 국한되지 않을 것이다. 세상의 모든 직업은 결국 다리를 놓아주는 것이기 때문이다. 보라. 엄마는 아이에게 세상을 알려주는 다리이고, 선생님은 학생에게 학문의 세계를 연결해 주는 다리이며, 직장인은 구매자와 생산자 사이에서 서로의 필요를 채워주는 다리이다. 글 또한 작가와 독자의 사이를 연결해 주는 다리이지 않는가. 우리는 서로에게 다리가 되어 연결해 주는 존재이다.


말하기와 글쓰기는 한자리에만 머물러 벽을 치지 않는다. 서로의 세계를 오가며 서로를 정밀하게 가다듬는다. 그 세심한 작업은 지엽적인 것만을 의미하지 않는다. 오히려 작은 것에 충실한 덕에 보다 큰 작품을 낳기도 한다. 인생에서 가장 행복했던 순간의 사진으로 모자이크를 삼아 <키스의 벽>이라는 작품으로 재탄생하듯 말이다. 


키스의 벽, 스페인 바르셀로나



<모든 생명의 탄생은 키스로부터 시작한다>는 작가의 말처럼 나의 모든 것은 글쓰기와 말하기의 순환에서 시작한다. 오늘도 달리는 버스와 대기 중인 공항과 입장하는 박물관과 둘러보는 성당에서 스페인과 한국을 이어주는 다리로 나의 페르소나를 입힌다. 글쓰기로 시작한 말의 전달이 다시 글쓰기로 돌아와 지성을 깨우고, 감성을 채우며, 한번뿐인 생을 보다 아름답게 만드는 여행으로 오롯이 남기를. 




글쓰기로 우주정복을 꿈꾸는 브런치 작가들이 모여 팀라이트가 되었습니다. 팀라이트 매거진에서는 매월 한 가지 주제를 선정하여 각양각색 이야기를 작가님들의 다른 시선과 색깔로 담아갑니다. 이번 달 주제는 <글쓰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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