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런 제가 저도 싫어요
최근에 들은 말. 그러게, 내가 봐도 내 상태가 좀 안 좋다 싶었는데 그런 말을 직접 들으니 반박할 힘도 없다. 직격탄을 맞았네. 그것도 제대로. 마음이 찌그러진 빈 페트병 마냥 요란한 소리를 삼키며 뒤틀린다. 그러게, 나 왜 이렇게 된 거지?
실은 나도 안다. 둘 다가 원인이다.
나는 예민하다. 목이 긴 까닭에 겨울엔 무조건 목티를 입는데, 입기 전 반드시 해야 하는 일이 있다. 목덜미에 있는 띠 (태그)를 떼는 일이다. 조금이라도 남아 있으면 신기할 정도로 둔탁한 피부가 다 알아차리고 가만있질 못한다. 때로는 목에서만 끝나지 않고 왼쪽 옆구리도 벌겋게 부어오르곤 한다. 일단 꾸덕꾸덕한 크림을 발라야 해.
머리는 '야, 어지간히 좀 해라' 윽박지르지만, 몸은 목덜미부터 시작해 어깨 전체가 파도타기를 한다. 결국 5분을 넘기지 못하고 기어코 벗어 가위로 조심조심 잘라낸다. 나름 조심한다고 하지만 ㅡ 애꿎은 연장 탓을 해보자면 ㅡ 실밥을 따라가며 뜯어내다가 결국 구멍 숭숭... 한두 벌이 아니다.
나라는 인간, 착장 5분 내로 새 옷을 헌 옷으로 만드는 놀라운 능력의 보유자라니. 아니, 그러게 왜 태그를 그렇게 까슬까슬한 소재로 만드는 것이며, 그게 뭐 그리 중요한 거라고 재봉질을 단단히 박아둬서 뜯기 어렵게 만드는 거냐고!!
한편 일은 일대로 코로나 이후 올 한 해 작심하고 한국으로 여름휴가를 다녀온 걸 제외하면 두 달간 쉰 날이 한 손을 꼽는다. 쉬는 날에는 다른 밀린 일을 해야 한다. 자영업자이기에 서류상 처리해야 할 일이 늘 빨랫감처럼 그득그득 쌓여있다.
사람 만나는 걸 그 누구보다도 즐거워하고, 사람들과의 교류 속에서 에너지를 얻으며, 주고받는 대화에서 희열과 살아있음을 느끼는 나인데, 이제는 조금만 계획에서 어긋나도 급발진 걸린 폭주열차가 되어 극단으로 달리고 있다. 이 글을 쓰면서도 심상의 표현이 칼춤을 춘다는 걸 자각한다.
나는 쉬어야 한다. 쉬어야 한다. 한 번만 더 쓰면 강박증에 걸린 이로 보일 거 같아 두렵다. 하지만 나는 쉬어야 한다. 사랑하는 일이지만, 과로 덕에 감당하지 못할 해일이 되었다. 덮치기 전에 비행기 표를 서둘러 끊어 도피해야겠다. 호텔 창밖 방음 유리 너머로 차들의 불빛이 일렬을 이루어 신호를 보낸다. 거기서 나와.
아버지가 즐겨가시는 사우나, 어머니가 좋아하시는 온천. 무념무상의 세계에 몸을 담그고 싶다. 염려, 불안, 초조, 근심, 걱정, 짜증, 스트레스를 모락모락 피어오르는 수증기로 만들어 날려 버린다. 나중에 다시 쌓인다 하더라도 일단 비워내고 나면 한동안은 괜찮을 거야.
그러면 더는 내 말을 들으며 같이 불안해지는 일이 없겠지, 없을 거야. 호텔 밖 차들도 마찬가지로 그저 지나가는 차에 불과한 일이 될 거고. 내일 입을 옷을 만지작 거린다. 사라진 태그. 구멍 난 옷 뒤태. 괜찮아. 예민한 건 사실이지만 그 덕에 감각을 더 키울 수 있으니까. 그러면 겨울의 [예민함]은 봄의 [섬세함]으로 업그레이드하는 거야. 재탄생하는 거라고.
배경 사진: Dede from Pixaba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