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답은 없지만
코로나가 끝났습니다. 시작도 가물가물한데 끝난 것도 언제였는지 기억이 없네요.
코로나 이후 보복성 여행이라는 말이 나올 정도로 정말 많은 관광객이 인천 국제공항으로 향합니다.
스페인은 이미 코로나 이전 상태로 돌아간 지 오래입니다.
이러다간 스페인에 오는 한국 관광객이 연간 56만 명은 거뜬히 넘어설 것으로 보입니다.
스페인에 오는 분들마다 한결같이 입을 모아 하는 말이 있습니다.
요즘 TV 봤어요? 스페인 여행 정말 많이 나와요!
정작 스페인에 사는 저로서는 한국 방송을 시청할 시간이 없어서 잘은 모르지만, 오는 분들마다 빠짐없이 말씀들을 하시니 정말 그런가 보다 합니다. 아이들 여름방학을 맞아 한국을 다녀온 이후부터 지금까지 두 달 넘는 기간 동안 휴일이라고 해 봐야 한 손에 꼽을 정도밖에 되지 않습니다.
가이드는 본인이 일하는 날만큼 수입이 되는 것이기에 많이 일하면 많이 일할수록 돈이 됩니다.
그렇기에 많이 일하는 건 그만큼 즐거운 일이 되지요. 돈은 버는 것도 쓰는 것도 즐겁다는 걸 나이 들수록 온몸으로 실감합니다.
문제는 버는 건 좋은데 쉴 틈이 없다는 것이죠. 억지로 현장으로 발걸음을 옮기는 것도 아니고, 주말이 되기만을 손꼽아 기다리는 것도 아닌, 저에게 천직이라 여기는 업임에도 불구하고, 쉼 없이 계속 일하니까 엔진오일이 다 떨어진 차가 따로 없습니다. 뻑뻑해요. 그러면서 성미만 급해지고, 작은 일에도 쉽게 욱하게 되는 일이 생깁니다.
문자 그대로 몸이 좀 쉴 수 있으면 좋겠다 하는 생각을 한다는 건, 어찌 보면 배부른 소리일 수 있겠지만, 정말 아무것도 안 하고 (물론 일을 안 한다는 것일 뿐 휴대폰도 보고 글도 쓰고 있겠지요) 쉬고 싶다는 생각이 간절히 듭니다. 저만 그런 게 아니라 다른 동료분들도 하는 얘기가 그래요. 세상에 어떻게 이럴 수가 있느냐고 말이지요.
문제는 쉼이 없다 체력이 쉽게 고갈되고, 고갈된 체력은 정신적인 부주의함으로 이어진다는 데 있습니다.
부주의함은 뭔가 하나 둘 빼먹는 일이 생기지요. 뭔가를 자꾸만 놓치는 겁니다. 건망증처럼, 아님 치매 초기 증상처럼 분명 무언가 생각하고 있었는데, 어, 그게 뭐였지? 하면서 전후 맥락에서 신기하게 어느 한 부분만 쏙 곶감 빼먹듯 빠진단 말이죠. 하루에도 두세 번씩 이런 일이 있다 보면, 가슴을 내리칠 때가 한두 번이 아닙니다.
처음 두어 번은 괜찮아 그럴 때도 있지 하는데, 세 번, 네 번 반복이 되면, 제가 언제 이렇게 멍청해졌나 하는 자괴감이 듭니다. 다른 사람도 아닌 스스로를 못 믿고 회의적이 된다는 건 상당히 무서운 일입니다. 자기 자신을 갉아먹는 일이거든요.
일을 하고 있는 (여기서 일이란 주로 설명가 관련된 일들) 동안에는 현장에 집중해 있으니 괜찮은데, 그 이외의 것에는 그야말로 나사 풀린 의자처럼 여기저기서 삐그덕 대면서 금방이라도 주저앉을 것 같은 형국을 이루고 있지요.
해결책은 프리랜서인 점을 십분 감안해서 과감하게 쉬겠다고 선언하는 것입니다.
그렇지만 그러다 쉰 김에 코로나 때처럼 아주 푹 쉬어라 할까 봐 조바심 속에 아직 말을 못 합니다. 어쩌면 와인 댓 병 마시고 나면 아무렇지도 않게 말을 전할지도 모릅니다. 뒷감당도 물론 잘해야겠지요.
코로나 때 아무 일도 못하던 때를 생각하면 분명 지금은 좋아도 분에 차고 넘치도록 좋은 때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좀 쉬는 타이밍이 필요하다는 것도 더욱 절실히 깨닫습니다.
아무리 삼시세끼 꼬박 챙겨 먹고 좋은 호텔에서 잔다고 해도 저로서는 휴식이 아닌 일로써 나와 있기 때문에 세상 모르고 푹 잘 수는 없는 법이니까요.
과유불급이라 했습니다. 일부러라도 휴식의 시간을 가져야겠습니다.
아니면 조금 신경을 덜 쓰고 저의 시간을 이기적으로라도 챙겨봐야 할 거 같아요.
제목에 있는 사진처럼 매일 수만 수십만 명의 현지인과 관광객 사이를 오가며 일이든 휴식이든 다들 열심이라는 걸 봅니다. 과하도록 많은 사람을 접해서 그런가, 아무도 찾아오지 않을 슬로바키아의 어느 호수가의 산장에 가서 누렇게 물들어 가는 가을 나무와 눈 시리도록 푸른 하늘을 바라보며 가만 있고 싶습니다.
제목 사진: 마드리드 솔 광장에서 본 프레시아도스 거리 평일 밤 인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