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버지는 여행을 좋아하셨다. 좋아하신 걸로 기억한다. 어렸을 적 사진을 보면 주말에 가족을 데리고 산으로 가서 그곳 명소 이름이 적힌 바위 앞에서 찍은 사진이 상당하다. 방학 때 시골에 가면 계곡, 강가 등에서 깨벗고 노는 것 또한 잊지 않고 남겨두셨다. 아버지에게 여행이란 가족이 모이는 일이자 사진으로 기억과 추억을 기록하는 일이었다.
칠순이 넘으신 아버지께서는 지금도 운전을 하시며 날이 맞아 주말이면 어디론가 가고 싶어 하신다. 아버지는 성격상 집안에 가만있지 못하는 편이시다. 아버지가 나가자고 할 때면 어머니는 항상 과일과 야채로 간식거리를 준비하느라 분주하셨고, 아버지는 시간 걸린다며 투덜투덜하시는 듯해도 차 안에서 어머니가 입안으로 쏘옥 넣어주는 과일을 드시며 분명 좋아하셨다.
다만 여행지에 가면 사진을 워낙 많이 찍으시는 까닭에 돌아오고 나면 이번엔 이번엔 어머니께서 인화한 사진을 앨범에 정리하느라 애를 먹으셨다. 게다가 어머니는 밖에서 다니는 것보다는 책을 읽으며 사색하는 걸 좋아하시는 까닭에 여행이란 출발부터 마무리까지 피곤함 그 자체였다.
여행을 좋아하는 아버지와 독서를 좋아하는 어머니의 습성을 반반씩 물려받은 나는 덕분에 여행은 서서 하는 독서이고, 독서는 앉아서 떠나는 여행이라는 걸 깨달았다. 스마트폰을 끼고 산지 오래지만, 그래도 집 밖을 나갈 때면 책은 습관처럼 잊지 않고 챙기고 다닌다.
한국을 떠나 슬로바키아로, 그리고 스페인으로 와서 정착해 사는 동안 혼자서 그리고 가족과 함께 부지런히 돌아다녔다. 심지어 업마저도 여행을 일상으로 삼는 가이드가 되어 여행을 즐기러 온 손님들과 인생을 즐긴다.
밖으로 돌아다니는 여행을 일상으로 삼고나니,
가족과 다 같이 모여 맛나게 식사 한 끼 하는 일상의 즐거움 또한 얼마나 큰 지 알게 되었다.
왁자지껄 떠들썩하게 보내는 여행이 매일의 일과가 되고 나니,
조용히 나만의 시간을 가지는 사색의 시간이 얼마나 중요한지도 알게 되었다.
다양한 사람을 만나며 간접 경험의 폭을 넓히는 여행을 업으로 삼으니,
책을 읽고 글을 쓰며 내면의 깊이를 더해가는 일이 얼마나 가치 있는지도 깨달았다.
무엇이든 남의 떡이 더 크게 보이고 남의 집 잔디가 더 푸르게 보이는 법이다.
내가 남을 부러워하듯 남 또한 나를 부러워하는 면이 있다는 걸 여러 번 듣고 나자 나도 나 자신을 더는 평가절하하지 않기로 했다. 그게 성숙한 어른의 길이고 내 삶의 여정을 잘 걸어가는 방법이라는 걸 뒤늦게사 깨달았다. 오늘도 버스를 타고 날씨와 일정에 맞는 음악을 선곡하며 나의 여행을 그리고 손님의 추억을 만들어 간다.
제목 사진: 세르반테스 축제 날 세르반테스 광장, 알칼라 데 에나레스, 마드리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