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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스페인 한량 스티브 Dec 15. 2023

스페인 호캉스 TOP 3

글루틴의 글감과 상관없이 쓰고 싶은 대로 쓰고 있습니다만, 오늘의 주제가 호캉스라 하니 그냥 지나칠 수가 없네요. 

자자, 스페인 현지 가이드가 생각하는 호캉스. 어떤 게 있을까요?


1. 파라도르 Parador de Turismo / 전국


전망 좋은 고지대의 유서 깊은 고성, 바닷가를 바라보는 영주의 별장과 왕족의 궁전, 16세기 사제들이 거닐었을 회랑과 중정, 밀실이 이어지는 듯한 미로가 이어지는 수도원... 벌써 듣는 것만으로도 눈앞에 영화 같은 장면들이 그려지지요?


스페인에 오면 이런 곳에서 숙박할 수가 있답니다. 바로 나라에서 운영하는 국영호텔 파라도르입니다. 파라도르 parador는 멈추다는 단어 parar 파라르에서 나왔는데요. 도시에서 도시로 이동하려면 중간 기점에서 쉬었다 가야 하잖아요. 그렇게 해서 잠시 멈춘다는 뜻에서 출발해 1928년부터 옛 건물을 사들여 현대식 호텔로 개조해 용도변경을 한 곳이 파라도르입니다. 


고즈넉한 분위기 속에 스페인 전통의, 스페인 스타일에 의한, 스페인 빈티지 마니아를 위한 숙소가 바로 파라도르입니다. 객실 내의 삐걱거리는 목재 바닥, 열고 닫기가 불편한 나무 창문, 끝자락이 살짝 떨어져 나간 태피스트리들마저 예스러움이 깃들어 있어 전부 사진으로 찍고 싶을 정도예요. 테라스와 파티오(중정)에서는 커피 한 잔만 시켜도 바로 중세의 귀족과 근대의 쁘띠 부르주아가 된 기분이 들지요. 


옛 스타일을 지키다 보니 파라도르 숙소 중에는 열쇠가 카드키가 아닌 진짜 쇳대를 쓰는 곳들도 제법 있답니다. 현재 스페인 전국에 96개의 호텔을 갖추고 있으며 100주년이 되는 2028년까지 100개의 파라도르를 세우는 게 그들의 목표예요. 이 호텔에선 산티아고 순례길에서 묵는 알베르게의 순례증처럼 파라도르 여권을 만들어서 각 숙소마다 다른 스탬프를 받는 것도 의외의 재미이고요.


파라도르가 있는 곳은 의심할 바 없이 가장 전망 좋은 곳, 최고의 뷰를 가진 곳이라고 여기면 틀림없습니다!


파라도르 호텔 사이트 www.parador.es




2. 카탈로니아 레이나 빅토리아 Catalonia Reina Victoria / 론다


독일 시인 라이너 마리아 릴케가 열렬히 사랑했던 스페인 마을, 론다! 그곳에 그가 머물렀던 호텔이 있습니다. 바로 카탈로니아 레이나 빅토리아 호텔인데요. 호텔 내부엔 릴케와 관련된 아기자기한 소품들이 전시되어 있어 눈길을 끕니다.


호텔의 이름인 레이나 빅토리아는 영국의 빅토리아 여왕을 뜻합니다. 그래서 호텔 건물도 영국의 빅토리아 건축 양식을 일부 차용했어요. 물고기 비늘 모양의 기와와 급격한 기울기를 갖춘 지붕을 보면 19세기 전후 영국에서 유행했던 빅토리아 양식이 생각날 겁니다. 


특히나 이 호텔에서 마음에 드는 건 널찍한 테라스, 거기서 바라보는 론다의 풍광이 정말 일품입니다. 그곳에는 릴케의 동상도 있어서 잠시 릴케와 교감을 나눠볼 수도 있지요. 상그리아 한 모금하면 릴케만큼은 아니더라도 왠지 시상이 절로 떠오를 것 같은 느낌적 느낌이 듭니다. 


론다 시내에서 살짝 떨어져 있어서 아침저녁 번잡함을 피해 산책하기에도 좋습니다. 앞서 말한 파라도르의 위치야 워낙에 넘사벽으로 자리 잡았지만, 카탈로니아 호텔도 파라도르 못지않게 스페인 전국에 경치 좋은 곳에 있어요. 꼭 숙박이 아니더라도 루프탑 바 만이라도 이용해 보기를 적극 추천합니다.


카탈로니아 호텔 사이트 www.cataloniahotels.com 



3. 포사다 Posada / 전국 (북부)

(원래 현지 발음은 뽀사다가 맞지만, 우리나라의 외국어 표기법에 따라 포사다로 씁니다.)


포사다의 원래 의미는 여인숙입니다. 파라도르나 카탈로니아처럼 체인으로 전국 또는 전 세계에 걸쳐 수십 개의 호텔을 둔 것이 아니라 가족단위로 운영하는 작디작은 곳입니다. 크기는 작지만 고급스럽고 가구 하나, 테이블 하나, 테이블 위의 천 하나하나에 깃든 정성과 아기자기함이 숨어 있습니다. 숙소 주인의 따뜻한 환대와 세심한 배려를 받을 수 있다는 점이 포사다만의 매력입니다. 에어비앤비 이전의 에어비앤비라 할 수 있는데, 주로 나이 지긋한 노부부가 운영하는 편입니다.

 

호텔 검색에서 포사다로 치면 스페인 전국에 퍼져있는 수백 채의 숙소가 나오겠지만 특별히 스페인 북부에서 더 많이 볼 수 있습니다. 저는 개인적으로 가족과의 짧은 첫가을 여행을 북부 산티아고 데 콤포스텔라의 외곽도시에 있는 한 포사다 (여인숙)에서 보냈는데, 그때 주인의 따뜻한 환대를 얼마나 받았던지요. 제 인생에서 가장 힘들었던 시기를 지나가던 때 포기하고 싶었던 삶을 다시 돌아보게 해 준 곳이었어요. 그로부터 10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고스란히 간직하고 있습니다. 


10년 넘게 살다 보니 속 터지고 답답하고 환장할 일 천지이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스페인을 인간미 넘치고 따스한 곳으로 받아들이는 건 포사다의 주인 내외 덕분입니다. 아쉽게도 코로나를 거치고 난 후 더는 운영을 안 하더라고요. 분명 주인아저씨는 좋은 기운을 이웃과 함께 하고 계실 겁니다. 


10년 전 숙소 앞에서... 숙소 옆에선 양을 키우고 있었어요.





고즈넉한 고성이건, 시인의 고뇌가 남은 곳이건, 결국 모든 것 (모든 곳)은 이야기로 남습니다. 

저도 저 자신과 가족과의 이야깃거리로 휴가를 기억합니다. 아이들과의 교감도 이야기로 이어질 겁니다. 

올 연말, 사정이 있어 호캉스를 떠나진 못하지만, 모처럼 만에 이틀 이상을 집에 머물며 가족과 같이 보냅니다. 가족과 함께 있는 곳이 호텔이고, 마음속 이야기가 머무는 곳이 호캉스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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