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을 마치고 돌아오는 버스 안.
헤드폰을 머리가 아닌 목에다 두르고 음악을 듣는 인간이 하나 있다.
정신 나간 녀석이라고 하자. 아니면 미친놈이라 할까. 몰상식한 새끼가 나을까.
그런데 주위 사람들은 다들 아랑곳 않고 자신의 일을 이어간다.
정작 세 칸이나 앞에 떨어진 나만 홀로 신경 쓰여서 자꾸 뒤를 돌아본다.
하지만 그는 고개를 숙이고 있는 상태라 당최 앞을 보지 않는다.
음악은 음악대로 틀어두고 시선은 태블릿 아니면 휴대폰에 집중해 있는 것일 게다.
문제는. 문제를 일으키는 그를 보면서 짜증은 나에게로 향한다는 점이다.
다들 아무렇지도 않다 하는데 왜 나만 홀로 (과민) 반응을 보이는 걸까?
여행을 가는 즐거움이 아니라 일을 마치고 피곤한 몸을 이끌고 집으로 가는 길이라 그런 걸까?
음악이 클래식이 아닌 팝과 롹이라서 그런 걸까?
아는 곡이 아닌 모르는 곡이라서 즐길 줄 몰라 그런 걸까?
원래 성격이 예민 그 자체라서? 청각 세포가 귀가 아니라 온몸에 분포되어 있는 건가?
별의별 상상의 가지가 뻗쳐 나간다.
아, 이어폰이나 헤드폰을 챙겨 와 원하는 걸 보고 듣고 있으면 되는 건데
챙겨 오지 않은 내가 문제였네, 내가 잘못한 거였네.
신경 끄기 기술, 어떤 상황에서도 집중할 수 있는 몰입의 힘, 세상 모든 소음과 번잡함을 차단하고 내면의 고요한 세계로 안내하는 명상, 무엇이 되건 간에 고막을 차단할 것이 있으면 좋겠다.
그래도 괜찮다. 평소에는 사오정으로 살다가 이렇게 소머즈급으로도 변신이 가능하다는 걸 알았으니, 나도 모르는 잠재력을 발견한 것에 만족하기로 한다. 당최 이 능력 아닌 능력을 써먹을 데가 없다는 게 함정이긴 하지만.
백만 불의 사나이급으로 온몸에 퍼져있는 신경세포를 잘 모아다가 관찰력을 증진시키는데 활용해 보기로, 그래서 이 사례를 바탕으로 스페인 현지 생활 관련 에피소드를 언급할 때 적절히 써먹기로 한다. 이렇게 쓰고 보니 한결 기분도 나아지고, 심지어 그 정신 나간 녀석이 고맙게까지 느껴지네. 꿈보다 해몽.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