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에 뜬 무지개 같았던 마드리드의 하루

희망과 여지를 가지고 살아보기

by 이루나

아침에 눈을 떴을 때 미술관을 가겠다고 결심했다.

일어나서 확인한 예상 최고 기온이 38도였고, 오늘은 월요일이기 때문이다. 더운 월요일, 마드리드에서 할 수 있는 가장 근사한 일은 티센 보르네미사 미술관 가기이다.


빨래 하나는 바삭바삭 잘 마르는 건조한 38도의 여름날, 마드리드 티센 미술관의 풍경


티센 보르네미사 남작 가문이 소장했던 컬렉션을 전시하는 이 미술관은 매주 월요일 마스터카드의 후원으로 무료 개방한다. 스페인 사람도 아닌 티센 가문의 작품이 이곳에 있는 이유는 남작의 다섯 번째이자 마지막 부인이었던 카르멘 세르베라 덕이 크다. 미스 스페인 출신이었던 그녀는 남작과 결혼 후, 새로운 보금자리를 찾고 있던 티센 가문의 소장품이 스페인으로 오는 데 적지 않은 역할을 했다.


인터넷으로 티켓을 예약하고 집에서 나오는데 카톡으로 사진이 하나 온다.

서울 하늘을 배경으로 뜬 무지개 사진이다. 그린 듯이 커다란 무지개가 신기해 자세히도 들여다보았다. 무지개가 이토록 위로를 주는 존재였던가. 이렇게 아름다운 무지개를 서울 하늘 아래 수많은 사람들이 보았을 거라 생각하니 괜히 감사한 마음마저 들었다.



코로나로 미술관마다 불필요한 동선은 개방하지 않고 있기 때문에 일부 작품들은 볼 수가 다. 결국 가장 보고 싶었던 에드워드 호퍼의 <호텔 방>은 보지 못했다. 대신 얼마 전 보수를 마치고 다시 전시를 시작한 비토레 카르파치오의 <기사의 초상>을 보았다. 막 새 단장을 마친 작품이라 그런지 미술관에서 가장 힘주어 밀고 있는 작품이라는 느낌을 받았다.


비토레 카르파치오 <기사의 초상> 1505년 경 (출처: Thyssen Bornemisza Museum 제공)


실로 이 작품은 티센 미술관의 가장 중요한 소장품 중 하나로 손꼽힌다. 무엇보다 '여지'를 많이 가진 작품이라 그럴 것이다. 작품 하단 좌우에는 힌트 같은 쪽지가 두 개 있다. 육안 상 오른쪽은 작가의 이름과 제작연도가 새겨져 있는데 20세기 중반까지만 해도 이 부분이 훼손되어 보이지 않았기 때문에, 이 작품을 독일 화가 알브레히트 뒤러의 것이라고 예상한 이들도 있었다. (뒤러랑 화풍도 비슷하고, 이곳저곳 쪽지를 그려 넣는 습관도 닮긴 했다.)


또 작품 속 주인공이 누구인지, 산 인물의 초상인지 죽은 인물을 그린 것인지는 아직도 연구 중이다. 죽은 인물로 예상하는 전문가들은 크게 두 가지 이유를 든다. 왼쪽 하얀 담비 위에 보이는 '불명예보다는 죽음이 낫다'라는 라틴어가 적힌 쪽지와 오른쪽 하단의 부러진 나무이다. 생명이 꺾인 부러진 나무를 통해 명예를 택하며 죽은 기사를 상징한다고 말한다. 기사의 표정 또한 용맹하기보다는 다소 우울해 보이는데, 혹시 이미 죽은 기사여서 그런가 생각을 하고 보면 상당히 섬뜩하게 느껴지는 그림이다.


반면 만약 살아 있는 상태의 실존 인물을 그린 초상이라면, 유럽에서 그려진 거의 최초의 전신 초상화가 된다. 등장인물의 삶과 죽음 하나로 그림의 위상이 이토록 달라지는 것이다. 이밖에도 작품 전체에 깨알같이 등장하는 다양한 동식물들 덕에 이리저리 상징과 의미를 유추해볼 수 있는 재미가 있는 작품이다. 역시 사람도 그림도 매력은 여지에서 나온다.




한편, 개인적으로 이번 방문에서 가장 감동적이었던 그림은 2층 전시실 가장 끝에 있던 19세기 독일 화가 카스파르 프리드리히의 <부활절 아침>이라는 작품이었다. 첫인상은 매우 음산했다. 심지어 그림 속 세명의 여인이 향하는 곳이 묘지라는 것과, 그림이 그려진 시간이 아직 달이 떠있는 새벽이라는 걸 알았을 때는 더욱 그러했다. 그림만 보아도 느껴지는 한기와, 생명력이라곤 하나도 느껴지지 않는 검은 나무, 세 여인의 뒷모습 모두가 그런 느낌에 당위성을 부여했다. 그러나 이윽고 찬찬히 다시 보니 이 그림이 보여주는 건 다름 아닌 '희망'임을 알게 되었다.


카스파르 다비트 프리드리히 <부활절 아침>. 1828-1835년 경 (출처: Thyssen Bornemisza Museum 제공)


아직 달이 지지 않은 새벽이라는 건 곧 아침이 밝아 올 거라는 뜻이고, 아직 나무에 가지만 앙상하다는 건 곧 새 이파리가 돋을 것이라는 암시한다. 세 여인이 향하는 죽음을 상징하는 묘지조차, 종교에서는 끝이 아닌 새로운 시작이다. 아직 내세가 남아 있기 때문이다. 작가는 감상자의 시선을 세 여인이 걸어가는 길 위로 초대한 뒤 그녀들과 함께 밝아오는 부활의 아침을 향해 걷게 한다.




먼 서울에서 떠오른 무지개 사진을 선물 받고 간 미술관에서 어쩜 꼭 무지개 같은 작품들을 만났다. 무지개 색처럼 다양한 여지로 유추하는 재미를 선사하는 작품과, 희망을 상징하는 무지개처럼 희망을 보여주는 작품이었다. 참, 오늘 쓰고 간 마스크는 지인이 한국에 갔다 와서 선물로 준 '여름용 kf마스크'였다. 역시 K-마스크답게 얼굴에도 착 맞고 숨쉬기도 편했다. 모든 날이 그러해서 오늘 역시 희로애락 모든 감정이 다 스쳐간 날이었다. 그러나 무지개 같았던 감정만 기억하련다. 밝아올 날에 대한 희망의 여지를 남겨두고서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