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무리 높은 명예와 찬사와 존경을 얻는다 해도 입에 들어가는 게 없다면 한낱 육체는 열흘을 채 버티지 못할 것이다. 모든 건 먹고사는 것으로 귀결된다. 먹고살려고 하는 짓이란 어쩐지 자조적이고 세속적인 느낌을 자아내지만 사실 먹고사니즘만큼 숭고한 게 어딨을까.
벨라스케스의 보데고네스 그림은 그런 먹고사니즘의 숭고함을 보여준다. 주방, 주점, 식당 등의 일상적인 풍경이나 장면을 그린 이 그림들에는 가끔 인물들이 등장한다. 그들은 그가 스페인 최고의 궁정화가로서 그렸던 왕실의 사람들과는 완전히 다른 외양이다.
비슷한 구도로 그려 마치 연작 같이 느껴지는 <세비야의 물장수>와 <계란 튀기는 노파>에 등장하는 인물들도 그러하다. 움푹 파인 볼에 두드러진 광대뼈는 그들의 살아온 세월이 녹록지 않았음을 짐작하게 한다. 많은 나이에도 여전히 노동을 하고 있는 늙은 육신에 걸쳐진 옷도 초라하기 그지없다. 염색이나 장식을 할 여력도 없었겠지만 물을 나르고 불과 기름 앞에서 요리를 하는 데 있어 그런 옷들은 거추장스럽기만 할 것이다. 물장수가 입고 있는 옷은 심지어 어깨 죽지가 뜯겨져 있기까지 하다. 왼편에 있는 앳된 느낌이 채 가시지 않은 아이들의 얼굴은 노쇠한 얼굴에 드리워진 세월의 무게를 더욱 가차 없이 부각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그림들을 들여다보면 이들이 딱하다거나 불쌍하게 느껴지기보다는 놀라울 정도로 숙연한 감정이 인다. 벨라스케스의 따뜻한 시선일까, 천재적인 재능일까. 어떤 쪽이든 이들은 마치 성직자와 같은 결연한 표정과 곧은 자세로 생명을 이어 줄 음식과 물을 건네고 있다. 노파의 손에는 생명의 상징인 알이 쥐어져 있으며 노인이 받치고 있는 정갈하고 투명한 유리잔 안에도 씨앗을 품고 있을 과실이 한알 있다. 무화과이다. 레몬처럼 물 안에 넣어 향긋한 물 맛을 내는 데 사용했다고 한다.
노파의 옆에서 계란 프라이를 기다리는 아이의 손에는 이미 멜론과 포도주가 들려져 있다. 노인의 옆에 선 아이는 조심스레 무화과를 넣은 잔에 물을 받을 준비를 하고 있다. 둘 다 저 음식을 먹고 물을 마시게 될 주체가 아이는 아님을 짐작하게 한다. 적어도 아이나 노파, 노인보다는 더 높은 신분의 사람일 것이다. 그러나 그들의 신분이 아무리 높다 한들 저들의 노동 없이는 저날 신선한 물과 따뜻한 계란 프라이를 맛보지 못했을 것이다.
<세비야의 물장수>에는 웃지 못할 역사적 사건도 얽혀있다. 이 작품은 프랑스 군의 스페인 침략전쟁 승리로 잠시 스페인 왕권을 잡았던 나폴레옹의 형 조제프 보나파르트, 즉 호세 1세 왕이 러시아 원정 차출로 스페인을 떠나면서 끝까지 약탈해 가려던 스페인 왕실 소장품 중 하나였다.
다만 원정길에 영국 웰링턴 장군의 군대와 스페인 북부 비토리아에서 마주하게 되고 여기서 크게 패배하는 바람에 모든 짐을 다 버리고 팜플로냐로 도망치면서 놓친 그림이다.
후에 스페인 왕위를 복권한 페르난도 7세에게 웰링턴 장군은 이 전리품의 반환 의사를 비쳤지만 어쩐 일인지 2년이 넘도록 스페인 왕실은 그림의 거취에 대한 아무런 답신을 하지 않았다. 할 수 없이 일단 그림을 영국으로 옮긴 후 페르난도 7세에게 재차 그림을 어찌하면 좋을지 묻자 황당하게도 페르난도 7세는 정당한 승리로 인해 얻은 전리품이니 그냥 가지라는 서한을 보내고 만다(!) 이 그림이 현재 앱슬리 하우스라 불리는 런던 웰링턴 박물관에 소장되어 있는 이유이다.
이 그림을 훔치고자 했던 조제프의 부와 권력은 이름도 모르는 그림 속 주인공의 그것과는 완전히 다른 세계의 것이었다. 조제프 보나파르트의 초상화 속 모습은 그 차이를 더욱 극명히 보여준다. 다 찢어진 넝마가 아닌 화려하게 수 놓인 값비싼 옷감을 두르고 있는 그의 모습 뒤에는 왕좌가 앞에는 절대 권력의 상진인 왕관이 놓아져 있다. 왕장(王杖) 위에 살짝 얹어진 손은 일상의 노동에 찌들지 않은 듯 곱기 그지없다.
그러나 이 화려한 초상화에는 <세비야의 물장수>를 볼 때 느껴지는 감동이 없다. 오히려 알 수 없는 무상함과 허무함만을 가득 불러일으킨다.
스페인 호세 1세 왕(1808-1813)이자 나폴레옹의 형이었던 조제프 나폴레옹 보나파르트
먹고사니즘에 지친 날이면 전쟁에 차출당해 가는 급박한 상황에서도 모든 동력을 동원해 조제프가 훔쳐가고자 했던 그림 <세비야의 물장수> 속 노인의 담박한 얼굴과 온기가 느껴지는 듯한 투박한 손을 들여다본다. 모든 것을 가진 듯 보였던 조제프가 가질 수 없었던 한 가지. 평범한 일상의 숭고함. 평범한 일상도 예술이 된다. 그렇다면 삶은 이미 그대로도 충분한 게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