폴란드 여행 중 가장 당혹스러웠던 순간이 있었다.지금까지 여행했던 그 어떤 나라에서도 느껴보지 못한 당혹감이었다. 바로 한 레스토랑에서 화장실을 가려고 했을 때다. 보통 다수가 이용하는 화장실에는 직관적인 기호나 확실한 단어로 여성용과 남성용이 구분되어 있기 마련이다. 하지만 폴란드의 몇몇 화장실에는 그런 글자나 그림 대신 ○와 ▽만 덩그러니 표시되어 있었다.
'여기서 네모만 있으면 오징어 게임인데' 생각하며 마치 잘못된 기호를 고르면 '화장실 가기 게임'에서 탈락이라도 할 것처럼 한참을 문 앞에 서서 고민했다. 하지만 동그라미와 세모 중 어떤 게 더 내가 들어가야 하는 '여성용'에 가까운지 도무지 감이 잡히지 않았다.
아무 문이나 벌컥 열었다가는 서서 볼일을 보는 외간 남자를 마주칠 수도 있다는 생각에 고민은 더욱 깊어졌다. 그러다 마침내 세모를 고르기로 결정했다. 그나마 세모가 보통 여자 화장실에 그려져 있는 치마와 비슷해 보였기 때문이다. 물론 그 세모마저 거꾸로 되어 있었기 때문에 좀 불안하기는 했지만 그래도 의미를 도저히 알 수 없는 동그라미보다는 역삼각형에 좀 더 친근감이 들었다.
그렇게 슬쩍 세모 화장실의 문을 연 순간,
나는 화장실 가기 게임에서 탈락하고 말았다!
다행히 아무도 없었지만 벽에 나란히 붙어 있는 두대의 남성용 소변기는 나의 잘못된 선택을 명백히 알려주고 있었다. 오징어 게임의 달고나 뽑기에서 우산 모양을 고른 이정재의 심정이 이러했을까! 나는 깜짝 놀라서 황급히 문을 닫고는 아무도 본 사람이 없는지 주변을 두리번거린 뒤 얼른 동그라미 화장실로 들어갔다.
얼마 전 문득 생각이 나서 왜 폴란드 화장실을 저런 수수께끼 같은 기호를 화장실에 붙여 놓는가 검색해 보았다. 나같이 화장실 가기 게임에서 탈락한 외국인들이 많았는지 왜 폴란드 화장실에는 동그라미와 세모로 구분해두는지 묻는 질문들은 많았지만 어떤 답변도 명확하고 속 시원하지는 않았다.
별자리와 관련된 것이다부터 여성은 동그라미처럼 부드럽고 남성은 세모처럼 샤프하기 때문이다(?), 여성 성기를 비하하는 단어와 관련이 있다(??), 삼각형은 다부진 남성의 상체를 의미한다(???), 여성의 몸은 모래시계 같은데 모래시계를 다 그리기 복잡하니 동그라미 한 개만 그린 거다(????)까지 요즘 세상에서는 도무지 동의하기가 어려운 뇌피셜들까지 난무했다. 심지어 어떤 이는 여러 폴란드 사람에게 직접 물어봤는데 그들 중 아무도 이유를 모르더라고 했다.
여행 가이드북인 론니플래닛을 찾아봐도 그저 동그라미는 여자, 세모는 남자라고만 알려주고 왜 그런지 이유를 알려주지는 않았다. 오히려 한술 더 떠 '폴란드는 양반이다, 리투아니아는 세모만 두 개다!'라고 성토하는 이들도 있었다. (삼각형은 여자, 역삼각형은 남자라고 한다. 하지만 이는 오히려 통상적인 개념에서 생각해볼 때 여성의 치마와 남성의 상체로 이해해볼 만하다.)
결국 끝끝내 왜 폴란드 여자 화장실의 표시가 동그라미인지는 미궁으로 남았다. 이유는 몰라도 여자라면 폴란드 화장실에서는 동그라미로 직진해야 한다. 부디 나같이 '화장실 가기 게임'에서 탈락하는 희생자가 없기를 바란다.
그냥 마치기 아쉬우니 전차와 현대적 건물의 조합이 멋졌던 카토비체 도심 사진 ⓒ 2021. 이루나. all rights reserv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