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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루나 Apr 01. 2022

에필로그부터 쓰는 여행 이야기

산티아고 순례길

산티아고에 도착한 지 꼭 일주일이 지났다. 올해 사순시기에 맞춰 3월 2일부터 시작하려고 했던 산티아고 순례 여정은 3월 2일부터 내내 이어지는 비 예보에 하루라도 비를 덜 맞고자 3월 1일로 앞당겨 시작했고 지난 24일 마무리되었다.


원래도 길을 걸으며 글을 쓸 계획은 없었다. 스무 살 때 자전거를 타고 한 달간 국토순례를 했었는데 당시를 회상해보면 막상 순례 중에는 생각이 굉장히 원초적이고 단순해졌기 때문이다. 그래서 이번에도 보나 마나 걸으면서 하는 생각이라곤 '배고파 / 힘들어 / 다리 아파 / 집에 가고 싶어' 이 네 가지 중 하나로 귀결될 것이라 지레짐작했었다. 하지만 찻길을 달리며 집중해 페달을 밟아야만 안전하게 일행을 따라갈 수 있었던 자전거 순례와 달리 때때로 주변에 나 말고는 아무것도 없던 순례길을 발로 걸으며 예상보다는 많은 생각을 했다.


가장 많이 든 생각은 순례길이 마치 인생 같다는 것이었다. 왜 삶을 흔히 '길(way)'이라고 표현하는지 느낄 수 있었다. 엄마 뱃속에서 안온함만을 느끼다 불현듯 삶에 던져졌던 것처럼 지난 3월 1일, 알람 소리에 편안한 침대에서 화들짝 일어나 두렵고 걱정되는 마음으로 배낭을 메고 순례라는 삶의 길을 떠났었다. 어린 시절처럼 순수한 인사로 사람들을 만났고 학창 시절처럼 와르르 몰려다니고 떠들었으며 서로 헤어지고 만나고 또 헤어짐을 반복했다. 산티아고에 가까워질수록 어른이 되어갔던 우리는 걷는 일에는 능숙해졌으나 때론 이기적이 되기도 했고 각자 허락된 시간에 맞추어 길을 마치고 각자의 삶으로 돌아왔다. 마치 아주 짧은 시간 삶의 파노라마를 본 느낌이다.


삶이라는 길  ©2022. 이루나


순례길 중간 메세타* 지역에서 끝없이 불어오는 바람을 온몸으로 맞으며 걷다 몇 시간 만에 하나 있는 카페나 바에 들어가면 바람에 정신없이 두들겨 맞았던 머리가 멍해졌던 기억이 있다. 지금의 심정이 약간 그러한 듯하다. 지난 시간들을 돌아보면 마치 메세타의 바람처럼 정신없이 흘러간 것만 같다.

*메세타(meseta): 스페인 중앙의 높고 평탄한 지역


그 몰아치던 바람결 속에서 기억하고 싶었던 순간들을 기어코 찾아내 하나씩 적어보려 한다. 복작거리는 삶의 길을 뒤로하고 고요한 소파에 파묻혀 차분히 실타래를 풀어 엮는 노인처럼 지난 시간 배낭 속에 급하게 쑤셔 담은 순례길의 실타래를 이제 하나하나 풀어볼까 한다.


지금의 나에게 산티아고 순례길이 어떠하였냐고 묻는다면 아직 잘 모르겠다. 엉켜있는 실타래를 다 풀어 하나의 담요로 엮어 내 몸에 감싸 본다면 그제야 그 길이 주는 온도와 의미를 느끼려나.




<구독자님들께>


그동안 비워두었던 브런치를 다시 찾아왔습니다. 한 달 반만이니 엄청나게 긴 시간도 아닌데 엉덩이를 붙이고 앉아 키보드를 다시 누르는 일이 굉장히 오랜만인 것 같습니다. 그새 적지만 구독자수가 조금 늘어 200명이 되었네요. 새로운 구독자님들 반갑습니다 :)


또 그간 많은 이웃 작가님들이 글을 올려주셨는데 쌓인 숙제가 많아 다 읽지는 못할 것 같습니다. 미리 죄송하다는 인사드립니다.


더 희미해지기 전에 기록해두고자 당분간은 산티아고 순례길 이야기로 찾아뵐 것 같습니다. 정보 위주의 글은 아닙니다. 하지만 혹시 순례를 준비하시는 분들 중 궁금하신 점이 있다면 댓글을 통해 아는 한 대답해 드리겠습니다. 또 이미 순례를 다녀오신 분이 계신다면 댓글로 감상을 나눠주셔도 좋을 것 같습니다. 저도 당장 다음 글에 무슨 이야기를 쓰게 될지 모르겠지만...  사진첩과 메모를 뒤적이며 기억을 엮어 보아야겠지요.


오랜만이라 평소 하지 않던 끝인사를 적어 보았습니다.

다들 평안하고 행복한 하루 보내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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