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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루나 Apr 05. 2022

걱정도 사랑이어라

나의 첫 순례길을 걱정하던 사람들

산티아고 순례길을 걷기로 마음먹고 나서 은근슬쩍 주변 사람들에게 알리기 시작했다.

사람들의 반응은 각양각색이었다. 직장에 매여 있는 사람들은 긴 시간을 낼 수 있다는 자체에 부럽다는 반응을 보였고 평소 활동적인 걸 즐기지 않는 사람들은 왜 사서 고생을 하냐며 되물었다. 내가 진짜 할 수 있는지 의심하는 사람들도 있었고 별거 아닌 나의 결정을 대단하다고 격려해주는 사람들도 있었다. 그런 다양한 반응들 속에서 가장 좋았고 지금까지도 마음에 소중히 남은 것은 '걱정'이었다.




의외로 가장 격렬하게 나의 순례길을 걱정하신 분은 시어머니였다. 시어머니는 나의 이야기를 듣자마자 누구랑 가는 건지 물으시고는 혼자 간다고 하자 '절대로' 안된다고 말씀하셨다. 순례길에서 사고를 당한 뉴스를 종종 보았고 여자 혼자 가는 건 위험하며 아직 날씨도 춥고 순례객이 많은 시기도 아니니 절대로 혼자서는 못 보낸다는 것이었다.


벌써 결혼한 지 12년이 되었으니 시부모님과 '가족'이라는 이름으로 마주한지도 꼭 그만큼이 지났다. 결혼 전 시부모님을 처음 뵈었을 때 난 시어머니 될 분이 무척 좋았었다. 사진 속 무뚝뚝해 보이는 얼굴과 달리 잘 웃으셨고 웃으시는 얼굴이 화사했으며 아주 작은 부분도 세심하게 챙기시는 모습이 굉장히 우아해 보였다. 시부모님 댁에서 식사를 하고 후식으로 차를 마실 때 거실 가운데 테이블에 정갈한 매트를 펼치시는 순간 어쩌면 나는 시어머니한테 반했던 것 같다. 나는 오래도록 이 잘 정돈된 거실의 테이블에서 이렇게 예쁜 테이블보를 펼쳐두고 차를 마시고 싶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시어머니는 때때로 너무 격식 있고 교양 있는 분이었다. 결혼한 지 한참이 지났어도 나는 언제나 외부인이라는 느낌이 가시지 않았고 가끔 시어머니의 지나친 배려가 마치 먼 타인에게 하는 행동인 것만 같아 서운하기도 했다. 처음 전통적인 한국인 며느리 마인드를 장착하고 시부모님께 사근사근하게 대하려 했던 나의 태도 또한 점점 무뚝뚝해져 갔다. 그랬기에 시어머니는 뭘 하든 나의 일을 크게 상관하지 않으셨고 나 역시 어떤 일들을 앞두고 시어머니의 의견을 묻는 일이 없었다. 그런 시어머니가 아주 단호한 얼굴로 순례길을 가지 말라고 말한 것이다. 나한테 무슨 일이 생길 수도 있으니 절대로 안되다며 말이다. 오랜만에, 어쩌면 처음 들어본 시어머니의 강렬한 반대와 걱정 앞에 나는 무슨 까닭인지 행복한 기분이 들었다.




그 뒤로 가족과 여러 지인들이 걱정의 말을 보내왔다. 날씨가 추울 텐데 걱정이다, 사람이 많이 없을 텐데 혼자 걷다 무슨 일이라도 생기면 큰일이다, 걷다 힘들면 어떡할 거냐(어떡하긴요, 정말 너무 못 하겠으면 그만두고 집에 가면 되지요. 집이 5시간 내 거리에 있는 걸요.) 그러지 말고 그냥 나중에 같이 걷자, 다시 생각해봐라 등등. 그들은 상상이나 할까. 내가 그 걱정의 말들을 읽으며 얼마나 행복하게 웃고 있었는지를. 직접적으로 '걱정'이라는 단어가 적힌 문자 메시지는 몇 번이고 읽으며 얼마나 좋아했었는지.


나는 늘 사랑에 기대하며 살았던 것 같다. 누구나 그러하듯 사랑받고 싶어 했고 그 사랑을 늘 확인하고 싶어 했다. 그런 나의 마음은 때로는 사랑처럼 포장된 것들에 끌리기도 했다. 달콤해만 보이는 것들 말이다. 나의 마음이 아플 때 나를 걱정해서 주는 쓴 약들은 모두 거부하고 아주 잠깐 동안만 아픔을 잊게 해주는 달콤한 사탕 같은 것을 진짜 위로라 생각하기도 했다.


지나 보니 꼭 사랑한다고 말하지 않아도 사랑인 것들이 있다. 걱정하는 그 마음이 왜 사랑이 아닐까. 걱정의 말이 때로는 단호하고 때로는 더 차가운 얼굴을 하고 있다 하여도 그건 사랑이었다. 사람 간 사랑이 항상 절대적이고 대단하며 유일무이할 이유도 없다. 그저 누군가의 삶의 길이 조금이라도 걱정된다면 우리는 그 누군가를 어느 정도는 분명 사랑하고 있는 것이다. 그 사랑이 꼭 모든 것을 퍼주고 목숨을 바치며 영원을 약속하는 그런 엄청난 사랑은 아닐지라도 말이다.


내가 뒤쳐지자 앞서 간 줄 알았던 이 친구들이 비가 오는 데도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혹시나 내게 무슨 일이 생길 수 있으니 기다리자고 했다며. 이런 마음과 만나는 곳이 순례길.


결국 시어머니에게는 비밀로 하고 순례길을 떠났다. 시어머니의 걱정이 사그라들 만큼 많은 사람들을 만나고 안전을 확인했을 때 즈음 비로소 내가 순례 중임을 알렸었다. 그리고 당연하게도 나와 시어머니의 관계는 순례 이전과 대비해 전혀 애틋해지지 않았다. 앞으로도 나는 시어머니에게 결코 사랑한다고 말하지 못할 것이다. 그녀도 내게 사랑한다고 말할 일은 아마 없을 것이고 말이다. 그럼에도 나는 안다. 우리는 서로 어느 정도는 분명 사랑하고 있다는 사실을. 아주 거창하고 큰 사랑은 아닐지라도, 그리고 꼭 그런 사랑이어야만 하는 것도 아니니.


순례 전, 모든 걱정의 말은 내게 사랑의 처럼 들렸다. 나를 걱정해준 모든 분들을 나 또한 걱정한다. 오늘 이 순간 그들 마음과 몸의 온전한 평화를 위해 기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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