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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루나 Apr 22. 2022

오늘 삶은 처음이라

걱정 말아요. 다 길이 있어요.

혼자 산티아고 순례길을 걷겠다고 나선 나를 보는 가족들과 지인들의 걱정도 컸지만 사실 그 누구보다 걱정한 사람은 바로 나 자신이었다. 아마 모든 순례자가 느끼는 가장 큰 감정 중 하나는 바로 걱정일 것이다. 순례자들이 모여있는 커뮤니티를 가보면 정말 별의별 걱정을 다한다. 신발, 배낭, 복장과 같은 순례길 필수 준비물 걱정부터 간식은 뭘 먹으면 좋을지, 면도는 어떻게 하는지 등 내 기준으로는 약간 과해 보이는 걱정의 글들도 보인다. 하지만 생각해보면 나 역시 순례를 떠나기 전 '밤에 뭐 입고 자는지' 걱정되어 커뮤니티에 물어본 적이 있었다.


걱정은 그런 지엽적인 문제에서 시작하여 순례가 가까워질수록 점점 길 자체에 대한 걱정으로 변했다. 내가 시작한 팜플로나라는 도시에서 통상 첫 목적지인 푸엔테 라 레이나까지 거리는 약 24km 정도다. 그런 길이의 거리를 평소 걸어보지 않았기에 내가 과연 하루 안에 걸을 수 있을지에 대한 걱정이 우선 생겼다. 또 처음 걸어보는 길이었기에 길의 경사나 상태도 걱정되었고 과연 어떤 길일지에 대한 두려움도 있었다. 요컨대 처음 걷는 길이었기에 모든 게 다 걱정되었다.


그 걱정은 시간이 갈수록 커져서 순례 시작 전날이 되자 그만 포기하고 싶은 마음마저 들었다. 누가 강요한 것도 아닌데 왜 이 길을 걷겠다고 나섰는지 후회도 되었다. 팜플로나의 안락한 호텔 침대에 누워 다음날 알람을 맞추며 이 밤이 아주 느리게 지나가기를 소망하고 또 소망했다.


침대가 너무 안락했던 탓일까. 아니면 순례 시작 전부터 팜플로나와 주변 도시를 이리저리 여행 다니느라 피로했던 탓일까. 눈을 감자마자 알람 소리가 들려 잠에서 깼다. 나는 어떠한 감상이나 생각도 없이 기계적으로 재빠르게 씻고 준비를 하고 배낭을 멨다. 단 1분이라도 멈추어 있다간 '가기 싫다'라는 생각이 들 것만 같아서 그랬다. 그리고 무조건 일단 길 위에 올랐다. 체력이 있을 때 최대한 빨리 많이 걸어가야 오늘의 목적지에 도달할 수 있을 거 같아서 뒤도 안 돌아보고 그저 앞으로만 앞으로만 걸었다.


사실 걷기 전 그리고 걷기 시작한 아침까지도 가장 걱정했던 또다른 문제 중 하나는 '과연 길동무를 만날 수 있을까'였다. 아직 감염병의 우려로 이동이 썩 자유롭지 못할 때였고 그게 아니더라도 원래 비수기로 불리는 3월이었다. 함께 걸을 누군가가 간절했던 건 아니지만 다만 나의 안위와 안전을 위해서라도 길 위에 뜨문뜨문 누군가 보이면 좋을 것 같다는 생각을 했다. 전날 팜플로나에서 순례자 같이 보이는 사람을 거의 못 보았기 때문에 그 걱정은 첫걸음을 떼는 순간부터 내게 쏟아졌다.


결과적으로 나는 걷기 시작한 지 불과 1시간 만에 첫인사를 나눈 순례자와 만났고 다시 1시간이 더 지나자 우리는 세명이 되었으며 거기서 1시간이 더 지났을 때 우리는 다섯 명으로 늘어났다. 그리고 그들과 함께 한 카페 정원에서 맥주 한잔의 휴식을 가지며 '나 순례 오길 너무 잘했어. 이 길이 벌써 좋아!'라고 외치고 있었다. 그날은 아마 올해 들어 가장 오래 그리고 크게 웃은 날이었다.


내가 미친듯이 웃었던 이유. 누군가에게 사진을 부탁했는데 (실수로) 이렇게 자로 잰듯 목을 잘라 사진을 찍어놓았다 ⓒ이루나


성경 속에는 '걱정하지 말라'는 언급이 365번 나온다고 한다. 주님께서는 매일매일 우리에게 아무것도 염려하지 말라고 알려주심에도 우리는 매일 새로운 걱정을 한다. 아마 처음 살아보는 삶이라 그럴 것이다. 늘 오늘은 처음이라 과연 오늘은 내가 견뎌낼 수 있는 하루일지, 오늘의 오르막길은 얼마나 높을지 내리막길에는 자갈이 가득한 건 아닐지 이 하루 끝 내가 평화를 느낄 수 있는 여유와 공간은 허락될지, 갑작스러운 소나기나 강풍과 만나지는 않을지 아니면 홀로 고독하고 외롭지는 않을지, 그저 모든 게 다 걱정이다.


그러나 순례길을 걷던 첫날 알았다. 그렇게 많이 걱정하지 않았어도 되었다는 것을. 하루하루가 지날수록 어깨는 더 결려오고 발목은 더 욱신거렸지만 걱정은 조금씩 덜했다. 어차피 필요한 모든 것은 길 안에 있었다. 그렇게 길에 익숙해졌던 것처럼 삶도 익숙해진다면 얼마나 좋을까. 여전히 매일 아침 다급한 알람에 눈을 뜨며 익숙한 듯 낯선 하루를 살고 있는 나에게, 걱정이 비처럼 쏟아지는 날이면 가만히 말해본다. 걱정하지마. 다 괜찮을거야.


주님께서 너의 의지가 되시어 네 발이 덫에 걸리지 않게 지켜 주시리라 ......[잠언 3: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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