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출은 늘었다. 사람도 늘었다. 팀도 생겼다.
근데 이상하게 일이 더 복잡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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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요일 아침, 메신저를 열면 이미 읽지 않은 메시지가 수십 개다.
세 군데서 같은 걸 물어보고 있고, 두 팀이 모르게 같은 작업을 하고 있고,
누군가는 "이거 원래 우리 팀 일 아닌가요?"라고 조심스럽게 묻는다.
회의는 늘었는데 결정은 줄었다.
보고서를 만들려면 데이터를 네 군데서 긁어와야 하고,
그 데이터가 각각 다른 숫자를 가리키고 있다.
내 역할이 뭔지는 아는데, 어디까지가 내 일인지는 모르겠다.
분명히 열심히 하고 있는데, 뭔가 계속 빠지는 느낌이 든다.
처음엔 내가 부족한 건가 싶다.
정리를 더 잘해야 하나, 커뮤니케이션을 더 잘해야 하나,
더 빠르게 움직여야 하나.
근데 옆자리를 보면 다들 비슷한 표정이다.
팀장도, 다른 팀 사람도.
이건 개인의 역량 문제가 아니다.
스타트업이나 중소기업이 빠르게 성장할 때 자주 생기는 패턴이 있다.
처음 10명일 때는 굳이 프로세스가 없어도 돌아간다.
서로 다 보이고, 말 한마디면 정리되고, 누가 뭘 하는지 다 안다.
그게 30명, 50명, 100명이 되면서 달라진다.
근데 일하는 방식은 10명짜리 그대로다.
R&R은 문서화된 적이 없고,
의사결정 기준은 담당자 머릿속에 있고,
프로세스는 "원래 이렇게 해왔으니까"로 유지된다.
조직의 몸집은 커졌는데, 운영 인프라는 그 속도를 따라오지 못한 것이다.
이 상태에서 일하면 에너지가 두 군데서 빠진다.
하나는 실제 일.
다른 하나는 일을 하기 위한 일.
누구한테 물어봐야 하는지 찾는 것,
기준이 없으니 매번 판단해야 하는 것,
같은 맥락을 여러 번 설명하는 것,
내 일인지 아닌지 눈치 보는 것.
이 두 번째 에너지 소모가 눈에 잘 안 띈다.
성과로 잡히지도 않고, 누가 알아주지도 않는다.
근데 퇴근하면 이상하게 더 피곤하다.
그게 이유다.
해결이 어렵거나 거창한 게 아니다.
지금 이 상태를 만든 건 의지 부족이 아니라 우선순위의 문제였을 뿐이다.
이 시점의 조직에 필요한 건 크게 세 가지다.
첫째, R&R 명문화
"원래 저 팀이 하던 일"을 문서로 꺼내는 것.
암묵지로 돌아가던 역할 분담이 문자로 정의되는 순간,
경계가 생기고, 책임이 생기고, 서로 묻지 않아도 되는 영역이 생긴다.
둘째, 의사결정 기준 만들기
지금 조직의 병목 대부분은 결정이 안 되는 데서 온다.
담당자 머릿속에 있는 판단 기준을 꺼내서 기준표로 만드는 것,
그것만으로도 회의 수가 줄고 실무 속도가 달라진다.
셋째, 프로세스 표준화
"원래 이렇게 해왔으니까"를 "이렇게 하기로 했으니까"로 바꾸는 것.
이 한 문장의 차이가 온보딩 비용을 줄이고,
인수인계를 가능하게 하고, 특정인 의존도를 낮춘다.
거창한 혁신이 아니다.
지금까지 말로만 돌아가던 것들을 글로 적는 것,
그게 이 단계 조직에 필요한 운영 인프라의 시작이다.
"우리 지금 성장통 겪는 거야"라는 말을 들을 때가 있다.
맞는 말이긴 하다. 근데 그 말이 면죄부가 되는 순간이 있다.
구조적으로 정비가 필요한 시점을 "원래 성장하면 다 이래"로 덮어버리는 것
빠르게 크는 조직에서 운영 인프라가 뒤처지는 건 자연스러운 현상이다.
근데 그게 자연스럽다는 게, 그냥 둬도 된다는 뜻은 아니다.
지금 당신이 느끼는 그 피로감은,
조직이 다음 단계로 가기 위해 뭔가가 필요하다는 신호다.
당신이 못 버티는 게 아니라,
지금의 운영 방식이 지금의 조직 크기를 감당하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매출이 오르고, 팀이 늘고, 뉴스에 나오는 회사에서
정작 안에 있는 사람들은 더 힘들어지는 이유가 여기 있다.
성장은 보이는데, 그 성장을 받쳐줄 구조는 아직 없는 것.
그리고 그 간극 사이에서, 오늘도 실무자들이 몸으로 때우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