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역이 예술이 되는 인생을 살 수 있을까

『오역하는 말들』,『번역: 황석희』 by 황석희

by 반선

도서관에서 우연히 황석희의 『오역하는 말들』이라는 책이 신간으로 들어온다는 공지를 보았다. 왠지 모르게 읽고 싶은 마음이 들어 찾아보았더니 이미 대출 중이어서 예약을 걸어두었다.


얼마 후, '책을 받으러 오라'는 알람이 울렸고, 첫 장을 펼쳐 읽는 순간 저자의 매력에 사로잡혔다.


첫 페이지에는 외국인과 대화를 하던 중, "한국 사람들은 항상 화날 준비가 되어 있는 것 같다"는 말에 기분이 좋지 않았다가, 씩씩 대는 자신을 보며 '아 이게 화낼 준비'라는 생각에 멈칫했다는 이야기가 담겨있었다.

그 대목을 읽으며 '앗 나도 역시' 싶은 마음이 들어 피식 웃음이 나왔다.


그분이 유명한 번역가라는 사실은 책을 읽으면서 알게 되었다. 번역을 꾸준히 하신 분이라서 그런지 글도 뭔가 달라도 한참 달라 보였다. 번역가의 삶과 고민에 대해 귀 기울이다가, 인생 힘든 것은 다 똑같다는 생각이 들었다가, 단어 하나, 문장 하나에 담긴 그간의 치열한 세월이 느껴져 감탄이 나왔다.


영화를 보고 번역 작업에 대한 피드백을 하는 사람들이 있다는 사실도 놀라운데 갖가지 피드백을 받는 과정에서 때로는 오역임을 받아들이고 이를 수정하기 위해 제작자를 설득하고 이미 완성되어 나간 자막을 수정하고자 노력하는 열심을 보이는 저자의 모습이 그려졌다. 독자들이 좀 더 좋은 경험을 하기 바라는 그의 번역을 향한 열정과 겸손한 마음이 전해져 마지막 장을 읽을 즈음에는 그의 팬이 되어 있었다.


그래서 그 책을 소장하고자 구매했고, 전작이 있길래 함께 구입했다.

『번역: 황석희』라는 다소 직관적인 제목의 에세이였다.


새로운 책도 역시 좋았지만 조금 안타까운 비하인드 스토리도 들어 있었다.


부커상을 받은 한강의 『채식주의자』와 그 작품을 영어로 번역해 번역가상을 받은 데버러 스미스가 유명세를 탄 이후 수많은 번역가들이 그 번역을 하나하나 뜯어보며 오역을 지적했고, 결국은 책의 60군데를 수정하여 재출간했었다는 소식은 가히 충격적이었다.


그리고는 마음이 무겁게 내려앉았다. 왜 우리는 다른 사람의 기쁨을 같이 기뻐해줄 수 없을까? 외국인으로서 우리나라의 문학작품에 대한 애정을 가지고 그의 언어로 가장 잘 번역하기 위해 노력했던 그녀의 열정과 노력을 꼭 그렇게 무참히 짓밟아야 했을까? 그 많은 번역가들은 과연 부커상을 수상하기 전부터 그 책을 그렇게 꼼꼼히 들어다 보고 있었을까?


우리나라의 글이 외국으로 번역되는 많은 글들을 보면 분명히 영어인데 우리나라의 색채가 많이 묻어나는 경우가 있다. 외국인들이 작성한 글보다는 번역된 글이라는 느낌이 물씬 나게 마련이다. 부커상을 수여했던 심사위원이 읽었던 데버러 스미스의 번역본에서 그녀가 갖고 있는 외국인들에게 더 잘 전달하기 위한 문장으로 인해 심사위원들의 마음을 움직이게 된 문구는 없었을까?


나는 속사정은 모른다 번역가도 아니고, 무엇이 오역이었는지 찾아볼 열심도 없고, 본다고 알 수 있을 리도 없다. 다만, 치열한 한국사회를 살아온 한 명의 사람으로서 이 소식이 유독 씁쓸하고 가슴이 먹먹해져 오는 것을 막을 수 없었다.


인생에서 마주하는 여러 가지 '오역'들이 있다. 때로는 피할 수 없고, 수정이 필요하기도 하고, 새로 배우기도 한다. 그러나 우리가 그 '오역'이 가득한 삶에서 조금 바보 같더라도 따뜻함, 배려, 희생을 기억하고 실천한다면 '오역'마저 '예술'이 되는 날을 맞이할 수 있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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