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BTI, 네 글자로 설명되지 않는 진정한 이해의 시작

MBTI로 푸는 소통의 공식 by 고영재

by 반선

언제부턴가 MBTI는 우리 모두에게 꽤 중요한 대화 주제가 되었다. 우리는 새롭게 만난 사람을 빠르게 파악하고 싶어 하고, 조금이라도 더 잘 이해하고 싶기도 하다. MBTI는 때로는 그저 아직은 서먹하고 특별한 화제가 없을 때, 어색한 침묵을 피할 수 있는 부담 없는 주제가 되어주면서 그야말로 트렌드로 자리 잡았다.


한창 MBTI에 익숙해졌을 무렵, 외국 친구들에게 같은 질문을 던져본 적이 있는데, 그들의 반응은 예상과는 달랐다. 대부분은 알지 못했고, 그러한 성격테스트가 있다는 것은 알고 있더라도 자신의 유형이 무엇인지는 기억하지 못했다. 그제야 이 열풍이 한국적인 현상이라는 사실을 실감했던 것 같다.


하지만 열풍이 커질수록 부작용도 함께 드러나기 마련이다. 사람은 모두 각자의 복잡하고 독특한 점을 가지고 있는데, 어느 순간 서로를 16가지의 카테고리에 끼우고 틀에 박힌 잣대를 들이대기 시작하는 사람들이 생겨났다. “그 유형은 그렇대”, “그래서 너랑 안 맞아” 같은 말들은 이해를 돕기보다 오히려 관계를 단순화하고, 이렇게 MBTI를 이해의 도구가 아닌 판단의 기준으로 삼게 되는 순간, 사람들은 피로감을 느끼기 시작했다.


MBTI는 우리의 노력에 따라 서로를 이해하는 데 도움을 줄 수 있는 도구이다. 상대가 어떤 방식의 소통을 편안해하는지, 어떤 상황에서 에너지를 얻고 소진되는지를 가늠할 수 있게 해 준다. 그러나 그 목적은 각 사람에게 맞는 존중의 방식을 찾기 위함이어야 하며, 내 성격은 이러하니 이런 나를 그대로 받아들이라고 강요하는 용도가 된다면, 좋은 도구를 제대로 사용하지 못한 결과를 낳을 뿐이다.


외국인 친구를 처음 만나서 사귀었을 때, 그 친구는 나에게 친구이기 이전에, 다른 나라 사람으로 인식되었던 것 같다. 시간이 오래 지나고 그 친구를 개인적으로 더 친밀하게 느껴지게 되면서, 그 친구는 더 이상 어느 나라 사람이 아닌 ‘나의 친구’가 되었던 기억이 있다.


결국 중요한 것은 MBTI가 아니라 사람 그 자체다. 수많은 경험과 선택을 하면서, 우리 모두는 네 글자로는 담아낼 수 없는, 누구와도 다른 소중한 존재로 성장했으며, 그렇게 존중받아야 마땅하다. MBTI는 대화의 시작일 수는 있어도 결론이 되어서는 안 되며, 서로를 이해하려는 노력은 분류가 아니라 관심에서 시작된다는 사실을, 우리는 다시 떠올린다면, 좀 더 배려 있는 관계 형성에 도움이 되지 않을까 생각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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