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투자금 내 마음대로 쓸 수 있을까

몇 년 전 알고 지내던 한 스타트업 대표님에게서 수십억 원의 시리즈 B 투자를 받게 되었다고 자문을 부탁한다는 연락을 받은 적이 있습니다. 이후, 저희의 자문 과정을 통해 투자사와 회사 간 상환전환우선주인수계약(RCPS) 형태의 투자 계약을 성공적으로 체결하고 회사임·직원들 모두 큰 산을 넘었다며 자축을 했었습니다.

한동안 연락이 없던 그 대표님에게 갑자기 연락이 와 자신이 시리즈 B 투자 이후 투자금 집행 내역 때문에 횡령·배임 혐의 수사가 진행되고 있다는 소식을 전했습니다. 회사 자금을 사적으로 사용할 분이 아니라고 알고 있었기에 저 역시 충격이었는데요. 수사 기관의 조사 내용을 보니 사안이 심각하다는 판단을 하게 되었습니다. 

당시, 수사기관에서 혐의로 두고 있던 점은 크게 (1) 투자금으로 다른 회사를 인수한 점, (2) 투자금으로 관계사에 거액의 자금을 대여한 점, (3) 투자금을 업무와 무관하게 개인적 용도로 사용한 점 등이었습니다. 마지막 혐의점 말고는 왜 문제가 있는 것인지 의문이 있을 수 있습니다. 하지만 법률가의 입장에서 보면 수사기관에서 (1), (2)와 같은 케이스를 중점적으로 수사하는 경우 오히려 (3)의 사항보다 더욱 심각하게 바라볼 수밖에 없었습니다. 일반적으로 횡령·배임 액수가 상당히 크기 때문입니다.



투자금, 그 무게를 견뎌라


최근 스타트업 창업자분들은 많이 달라졌지만 얼마 전만 하더라도 회사와 개인을 동일시해 회사에 들어온 투자금을 대표 마음대로 사용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 분들이 더러 있었습니다. 그런데 투자금은 엄밀히 따지면 타인인 투자자의 돈이 회사의 자본으로 들어온 것으로 어디까지나 회사의 이익 내지 투자자의 이익에 부합하게 사용되어야 합니다. 특히, 국내외에서 일반적으로 사용되는 투자 계약에는 반드시 아래와 같은 “투자금의 용도 및 제한”에 대한 규정이 들어가 있습니다. 



<투자금의 용도 및 제한 규정 예시>

회사는 본 계약에 의하여 투자자로부터 받은 자금을 회사의 운영자금으로만 사용하여야 하며, 투자금으로 제3자에게 자금의 대여 또는 제3자의 주식을 매입하여서는 안 된다. 단, 투자자와 충분한 협의 후 투자자로부터 사전 서면동의를 받은 경우는 제외한다.




따라서 투자 받은 회사의 입장에서는 투자금으로 관계사에게 자금을 대여하거나 다른 회사를 인수할 수 없고 특히나 계약에 위반해서 이러한 행위를 한다면 민, 형사상 책임을 질 가능성이 매우 높습니다. 일반적으로 투자 계약에는 투자금의 용도 및 제한 규정을 위반할 경우 투자자가 회사와 이해관계인(대표이사, 대주주)에게 자신이 인수한 주식을 매수할 것을 요구하는 권리(주식매수청구권)를 행사 가능하게 규정하고 있고, 이로 인해 손해가 발생하였다면 추가로 손해 배상 책임을 물을 수 있도록 규정하고 있습니다. 특히, 이러한 민사적인 문제와 더불어 용도가 엄격하게 제한된 자금을 투자 받아 제한된 용도 이외의 목적으로 자금을 사용한 경우 이는 업무상 횡령에 해당할 수 있습니다. 

한편, 이러한 투자금의 용도 및 제한 규정이 없다 하더라도 투자금으로 다른 회사를 인수할 경우 적절한 투자심의회, 내부 의사결정, 이사회 보고, 관련 분야 전문가(법무법인, 회계법인 등)를 통한 검토 등을 통해 인수 타당성 검토를 충분히 하지 않고 회사를 인수하였고 이로 인해 회사에 재산상 손해가 발생했다면 이 또한 업무상 배임에 해당할 수 있습니다. 

또한, 관계사에 자금을 대여하는 행위 역시 생각해 봐야 합니다. 자금을 차용하는 관계사가 대여금을 변제할 능력을 상실하여 자금을 회수할 가능성이 높지 않은 상황이거나 충분한 담보를 제공받는 등 리적인 채권 회수조치를 하지 않을 경우에도 업무상 배임에 해당할 수 있습니다.

따라서 투자 계약상 투자금의 용도제한 규정이 존재할 경우, 이러한 목적 이외의 건에 대해 자금을 사용하기 위해서는 투자자와의 충분한 협의와 사전동의를 구하는 것이 좋습니다. 또 투자자의 사전 동의가 있다 하더라도 자금을 집행하기 전에 충분한 내부 의사결정 과정을 거치고 전문가로부터 의견을 청취하여 이러한 행위가 합리적인 경영판단 행위로서 인정받을 수 있도록 준비하여야 합니다. 



내 마음대로 쓸 수 없습니다


투자금 잘 알고 사용하고 계시나요? 서두에 말씀드렸던 회사는 투자금을 외형 확장을 위해 무차별적으로 타 스타트업을 인수하는 비용으로 사용했습니다. 이후 인수한 회사에서 부실이 발생하여 투자금으로 자금을 지원한 것이 문제가 되었습니다. 장래 유니콘이 될 것이라고 촉망받던 회사는 그렇게 몇 년째 제자리에 머물러 있습니다. 

물론, 혁신하고 역동적이어야 할 스타트업에서 투자 자본을 받고 이를 사용하는 것을 두려워하여서는 안됩니다. 뚝심 있게 나아가려는 의지는 필요합니다. 다만, 앞서 얘기했던 것처럼 투자 계약서 상 투자금 용도 제한 규정이 있는지 살펴보세요. 있다면 투자금 용도 제한 이외의 목적으로 사용할 필요가 생길 때 필히 투자자로부터 사전에 서면동의 등을 구해야 합니다. 투자금 용도 제한 규정과 무관하게 투자금을 사용하여 다른 회사를 인수하거나 관계사에 자금을 대여하여야 할 필요가 있을 경우에는 내부 검토 절차를 잘 밟고 전문가의 의견을 충분히 청취한 후 결정하세요. 이 세 가지 주의점을 잘 고려해 자금을 집행하면 향후 귀사가 유니콘으로 점프하여야 할 시기에 불필요한 분쟁에 휘말리지 않을 수 있습니다.



업무상 횡령·배임이란


형법상 횡령죄란 타인의 재물을 보관하는 자가 그 재물을 횡령하거나 그 반환을 거부하는 경우를 의미합니다. 배임이란 타인의 사무를 처리하는 자가 그 임무에 위배하는 행위로써 재산상의 이익을 취득하거나 제삼자로 하여금 이를 취득하게 하여 본인에게 손해를 가한 경우를 의미합니다(형법 제355조).

우리 형법에서는 이러한 횡령·배임 죄에 대하여 ‘업무상’ 지위에 있는 자가 범한 경우 이를 가중처벌하는 규정을 두고 있습니다(형법 제356조). 한편, 횡령 및 배임으로 인한 이득액이 5억 원 이상일 경우에는 특정 경제 범죄 가중처벌 등에 관한 법률의 적용 대상이 됩니다. 이에 이득액이 50억 원 이상일 경우 무기 또는 5년 이상의 징역을, 이득액이 5억 이상 50억 미만일 경우 3년 이상의 유기징역으로 가중처벌하고 있습니다.


손해를 입히면 무조건 죄?


경영판단의 원칙은 19세기 미국의 판례를 통해 형성됐습니다. 회사의 경영자가 자신의 권한 내에서 ‘합리적인 근거’를 기초로 성실하게 회사에 이익이 된다고 믿는 바에 따라 결정을 하면 그 결과 회사에 손해가 생길지라도 이사의 임무 위반을 부정하고 손해 책임을 묻지 않는다는 원칙입니다. 

우리 법원 역시 “기업의 경영에는 원천적으로 위험이 내재하여 있어서 경영자가 개인적인 이익을 취할 의도 없이 가능한 범위 내에서 수집된 정보를 바탕으로 기업의 이익을 위한다는 생각으로 신중하게 결정을 내렸다고 하더라도 그 예측이 빗나가 기업에 손해가 발생하는 경우가 있으므로, 이러한 경우에까지 고의에 관한 해석 기준을 완화하여 업무상 배임죄의 형사책임을 물을 수 없다(대법원 2007. 3. 15. 선고 2004도 5742 판결 참조). 여기서 경영상의 판단을 이유로 배임 죄의 고의를 인정할 수 있는지는 문제 된 경영 상의 판단에 이르게 된 경위와 동기, 판단 대상인 사업의 내용, 기업이 처한 경제적 상황, 손실 발생의 개연성과 이익 획득의 개연성 등 제반 사정에 비추어 자기 또는 제삼자가 재산 상 이익을 취득한다는 인식과 본인에게 손해를 가한다는 인식 하의 의도적 행위임이 인정되는 경우인지에 따라 개별적으로 판단하여야 한다(대법원 2010. 10. 28. 선고 2009도 1149 판결 등 참조).”고 밝힌 바 있습니다. 


합리적인 경영판단에 기한 경영행위로 인해 회사에 손해가 있을 경우에는 배임 죄의 형사책임을 물을 수 없다고 판단한 거죠.





본 시리즈는 스타트업 관련 전문지식을 제공하는, 스파크플러스와 법무법인 수오재의 콜라보 콘텐츠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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