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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회하는 글쓰기에 대하여

[에디터스토크] 글을 쓰는 이유는 재미있게도, 


솔직한 글을 좋아합니다. 수식어를 온갖 곳에 덧댄 문장보다 전달하려는 바가 명확하고 짧은 문장에 매력을 느껴요. 글쓴이의 개인적인 에피소드가 담긴 글은 특히 강렬해서 그 덩어리를 알아채자마자 무방비가 됩니다. 그런데 그 힘을 알면서도 저는 제 경험을 쉽게 적어내지 못합니다. 나의 경험에는 나만 등장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친애하는 이름들과 나의 결핍도 기어코 등장하는 까닭입니다. 앞으로 내가 받을 시선을 만드는 일인 덕분입니다. 솔직한 글은 어렵습니다. 글이 유독 잘 써지지 않는 오늘은 ‘솔직하게’ 제 부족을 드러내보고자 합니다.


친애하는 이름들은 가끔 걸림돌이 된다

큰산입니다. 누군가 엮여 있는 일들을 공개하는 건 두렵습니다. 머릿속에 끓어넘친 이름들을 그저 받아냈을 뿐인데도, 글이 죄가 되는 느낌입니다. 내가 이들의 이름을 이용하는 것은 아닌가 의심이 들어요. 고백하건대 공개된 제 글 중 많은 양은 진짜 적고 싶었던 이름들의 주변부만 미련하게 배회하고 있습니다. 친애하는, 혹은 내 성격을 바꿔버린 강력한 존재들에게 누가 될까 싶어 일부러 뭉툭해집니다.



애꿎게 결점을 내보이기도

나 또한 걸림돌이 됩니다. 경험에서 우러나온 글 속 나는 근사하지 않습니다. 남들이 실망할 만한 일을 저지르기도 하고, 바보 같은 착각을 할 때도 있어요. 독자들은 글쓴이가 당연히 결점이 있다는 생각을 가지겠지만, 당사자는 결점을 애꿎게 내보이는 느낌입니다. 쓰지 않았다면 숨길 수도 있었던 사실을요. 그래서 제게 깨달음을 준 일이라도 적지 못할 때가 많습니다. 순한 에피소드들로만 맛깔나게 글을 써야 하니 난이도가 상당히 높아집니다.



시선을 만드는 일

경험으로 얻은 브레이크도 있습니다. 글은 나에 대한 시선을 만드는 일이었습니다. 예컨대 수년 전 한 TV프로그램을 보고 평론 기사를 작성한 적이 있었는데요. 지금과는 다른 생각을 가지고 감상을 남겼습니다. 세월이 흐르고 옛 생각에 대한 반감이 든 저는 그 기사를 내려줄 수 있는지 매체에 요청했습니다. 하지만 기사를 내려주기는 어렵다는 답변을 받았어요. 현재까지 그 글은 매체 내에 살아있습니다. 아쉽지만 어쩔 수 없는 일입니다. 반면에, 쓰고도 까먹었던 제 문장이 어떤 사람의 마음에는 오래 남을 때도 있었습니다. 마음에 남는 문장은 삶을 이끄는 중요한 지표가 됩니다. 내 글은 나와 세상의 시선을 만드는 일이라 부담스럽습니다.



그럼에도 쓰는 이유

누가 될까 두렵고, 제 못난 모습을 드러낼 수도 있으며, 부담스럽기 짝이 없는 글쓰기. 그럼에도 불구하고 저는 늘 펜을 들거나 키보드를 두드립니다. 글을 쓰는 이유는 재밌게도 글을 쓰기 어려운 이유와 비슷합니다.


친애하는 이들과의 순간을 오래 보듬고 싶어서 글을 적습니다. 글로 그들의 향을 담아두는 것입니다. 나중에 그리울 때 꺼내볼 수 있도록요. 사진에는 그 사람의 모습이 담겼다면 글에는 그 사람의 태도가 담깁니다. 써둔 사람은 '이런 습관이 있던 사람이었지', '나와 이런 대화를 나누었지' 곱씹을 수 있습니다. 쓰지 않는 사람에 비해 쓰는 사람은 머무를 수 있는 과거의 용량이 훨씬 큽니다.

그런가 하면 부끄러운 경험을 쓰는 일은 나아가는 일입니다. 글쓰기는 그 자체로 자기를 인식하고 성찰하는 과정입니다.  또한 맺음말을 고려하며 해결책을 떠올리기도 합니다. 초등학생 때 일기 숙제를 한 번쯤 받아보셨을 텐데요. 우리에게 발전하는 방법을 알려주기 위한 미션은 아니었을까요?


마지막으로 세상을 더 옳은 방향으로 보고 싶다는 마음이 저를 움직이게 합니다. 어른이 되어서도 계속 성숙해지는 느낌을 받습니다. 그 말인즉슨, 저는 계속해서 미성숙하다는 얘기일 텐데요. 그렇다 하더라도 표현하지 않았다면 누군가에게 피드백을 받을 기회 또한 없었을 겁니다. 제가 목소리를 내듯 다양한 계층의 사람들이 목소리를 내고 세상의 방향을 고민할 때 우리는 더 좋은 답을 찾을 수 있습니다. 제가 쓴 문장이 어떤 사람에게 힘이 될 수 있다는 점도 뭉클합니다. 


그래서 오늘도 미련하게 한 자 한 자 적어봅니다. 배회하며 배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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