좌충 우돌 캐나다 영주권과 취업 도전기
시험 결과는 빠르면 하루 이틀 내에 늦어도 일주일 이내로 업데이트된다고 하였다. 캔모어로 돌아와 시험에 나왔던 문제를 생각하면서 책을 1장부터 1000장 까지 훓어 나가기 시작했다. 중간중간 시험에 나왔던 문제들이 보였고 기억을 더듬어 엑셀에 옮겨 문제와 답을 적어 나가기 시작하였다. 총 150문제 중 106개의 문제가 생각이 났고 이 문제를 선생님께 보내드렸더니 "어떻게 이렇게 많이 기억하느냐?" 라고 하신다. 하하
"이 정도로 기억을 많이 하다니 합격할겁니다."라고 격려를 해주셨다.
시험 결과는 이틀 뒤에 발표가 되었고, 내 성적은 실망 그 자체였다. 100% 중에 59%인 89문제만 정답을 맞힌 것이다. 레드씰 자격증을 취득하기 위해서는 70% (106 문제)를 넘어야 하는데 11%나 작게 나왔다. 속으로 "이제 어쩌지?"라고 계속 한숨만 쉬게 되었다. 하루라도 빨리 점수를 받아 조리사 자격증을 취득하고 Express Entry의 Pool에 어서 집어넣어야 하는데, 첫 시험부터 삐꺽거리다니...
션생님께 조용히 결과를 말씀드리러 전화를 했고, 저쪽에서 들려오는 답은 "나는 Jay씨 이번에 합격 못 할 줄 알고 있었어요. 그래도 55% 정도 예상했었는데, 4%나 더 나왔네요."라고 하신다. 허걱, 이것이 격려인지 놀리시는 건지 순간 헷갈렸지만 다음번 한번 더 남은 시험에는 더 잘 치라는 의미로 받아들이고 싶었다. 사실 11월 초에 한국에 갈 때 선생님께서는 가지말라고 말리셨고 중요한 시간들이니 그 기간 동안 죽었다 하고 공부를 하라고 하셨었다. 그런데, 난 이틀만 공부하고 나머진 한국 갔아 오는 날로 다 보내버렸으니 할 말이 없었다.
그렇다하더라도 매일 11시 넘게 일을 마치고 새벽 2-3시까지 허벅지를 꼬집어 가며 공부했으니 무슨 공부 효율이 있었을까 싶다.
재 시험 일정을 1월 중순으로 정하고 시험 센터에 다음 날 전화를 하여 신용카드로 재시험 비용 $145을 지불한 후 시험을 예약하였다. 이번이 마지막이기 때문에 이제는 더 열심히 공부를 해야 하는 수 밖에 없었다. 시간은 흐르고 흘러 어느 덧 2018년 연말까지 날짜가 되었고, 12월 31일 마지막 날에도 나는 책상 앞에 앉아서 공부를 해야만 하였다. 2019년으로 접어 드는 첫 번째 날 밤 12시에 나는 다시 다짐하였다. "이제까지 고생했는데 이까짓거 뭐가 힘들다고 그래? 자, 다시 한번 도전해 보자. 그리고 나는 반드시 시험에 합격하고 말거야~" 라고 말이다.
이렇게 나의 2019년은 시작되었다. 올해에는 반드시 영주권을 따겠다고 다짐 또 다짐하였다. 시계는 2019년에도 여지없이 흘러가고 있었다.
시험은 1월 22일 예정되어 있었고, 나는 여전히 공부를 하였지만 자신 없기는 마찬가지였다. 시험 치기 일주일 전, 선생님이 제안을 하셨다. "Jay씨, 내가 볼 땐 지금같이 공부가 안되어 있으면 이번에 시험을 쳐도 합격하기가 힘들 걸로 보여요." 라고 말이다. 선생님의 눈은 매의 눈과 같아서 정확히 나의 실력을 꽤뚫어 보시고 시험 점수까지 예측을 하시는 것 같았다. 그리고, 나에게 2주 정도 연기를 하라고 하시었다. 나는 합격되든 안되든 빨리 끝내고 싶은 마음에 그냥 치겠다고 하였으나 2주 동안 한 페이지라도 더 보고 외우면 그래도 합격 확율이 높아지지 않을까 하는 마음에 선생님의 제안을 받고 시험센터에 전화를 걸었다. 2월 5일로 시험 일정을 변경하겠다고 하였고, 돌아오는 답변은 이번 한번만 변경이 가능하고 다음번엔 변경이 불가능하단다. 이제 더 이상 물러날 곳도 없기에 나는 확정을 하고 2월 5일 시험을 치겠다고 결정을 하였다.
2주일이란 시간은 금새 흘렀고 드디어 시험 전날이 되었다. 식당 사모님께서는 고맙게도 마지막 시험인 것을 이해해 주시고, 오후 6시까지만 근무하고 캘거리로 가라고 하셨다. 이번에는 사모님도 시험을 잘 치라고 Hug 도 해주신다. 자기 '기'를 받아서 가라고.... 감사하다는 말을 두번하고 난 캘거리로 향했다. 그리고, 이번에는 친구가 고맙게도 자기 집에서 잠을 자고 아침에 시험장으로 가라고 한다. 너무나도 고맙고 고마웠다. 지난 번같이 Air Bnb는 다시는 이용하고 싶지는 않았고 친구 집은 조용하고 시험 치기 전날 머무르기에 적합한 곳이었다. 2월 달인데 날씨는 영하 20도가 넘었다. 첫 번째 시험은 통역없이 혼자서 치루었는데, 두 번째 시험은 이주공사 사장님 아들이 같이 들어가 주기로 하였다. 물론 영어로 이해하는데 어려움이 있을 경우 도움이 되겠지만 더 큰 것은 시간을 2시간 더 벌어주는 것이었다. 통역은 평생 3번까지 같이 시험을 칠 수가 있으며, 요식업에 종사하거나 관련이 없는 사람이어야 했다. 2월 5일 시험치러 시험장에 다시 갔고, 이번에는 파킹 위반 티켓을 받지 않기 위해 시험장 앞 도로변에 주차를 하였다. 이주 공사 사장님과 이사님 모두들 Tim Horton 커피를 들고 오셨고 격려를 해 주셨다.
난 마음 속으로 "자, 이제까지 고생한 8개월이란 세월이지만 오늘 하루 내 모든 것을 쏟아 부어 자격증을 따 보자!" 라고 다짐을 하였다. 지난 번같이 큰 아들이 준 손가락 석고 키 체인도 떨어지지 않았고 나름 기분은 좋았다. 드디어, 시험은 8시 30분에 시작되었고 통역을 대동한 시험자는 별도의 방에 배정되어 시험을 칠 수가 있었다. 문제를 하나 하나 풀어 나갔는데, 지난 번보다 더 어려워 보였지만 최선을 다해 한문제 한문제 풀어 나갔다. 오후 2시 반이 가까와 올 때까지 계속해서 문제를 풀었고 어느 덧 6시간이 지나 마칠 시간이 되었다. 시험관이 답지를 제출하라고 하였고 제출 한 순간 눈물이 핑돌았다. 왜냐하면, 저번 시험보다 더 못 친 것 같아 속상하기도 하고 이제는 기회도 주어지지 않으니 재 시험도 없고, 우리 가족들 볼 면목도 없어서였다. 그래도, 이제 다시 이 시험을 칠 일도 없고 하니 한편으로는 후련했다. 우리 선생님은 나를 위해 교회에 새벽부터 가셔서 기도를 하셨단다. 그리고, 한국에 있는 옛 직장 동료도 나를 위해 매일 기도한다고 하였다. 난 참 행복한 사람인가 보다 주위에서 날 위해 기도해 주는 사람들도 많고~
시험은 이틀 후 쯤 결과가 나올 것이라 생각하고 집으로 돌아와 그 동안 못 잤던 잠을 푹 잤다. "Jay야, 수고했다. 시험은 어려웠지만 최선을 다했으니 좋은 결과가 나올 거야!"라고 하면서 잠이 들었다.
아침에 잠을 깨니 아직도 내가 시험을 친 건지 아닌지 헷갈렸다. 이내 난 "아 어제 시험쳤지?" 라고 정신이 번뜩 들었다. 오후 3시 휴식시간이 되어 하루가 지났지만 난 궁금해서 시험 결과가 나왔는지 시험기관 웹사이트로 접속을 하였다. 그런데, 날씨가 추운 날에 시험을 쳐서 그런지 응시자가 많지는 않았고 나의 시험 점수도 놀랍게 하루 만에 사이트에 업데이트가 되어 있는 게 아닌가? 나는 "에구 이번에도 그리 점수가 잘 나오질 않았을꺼야!" 하고 내 점수가 나와 있는 페이지를 클릭하였다.
본인의 스토리는 현재 진행 중이며, 늦었다고 생각할 때가 가장 이른 거라고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부디 읽으시는 독자들에게 용기를 드리고 싶고 개인적으로 질문이 있으신 분은 카카오톡 ID: jaehan16으로 연락 주시면 시간이 나는데로 답변 드리겠습니다.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