좌충 우돌 캐나다 영주권과 취업 도전기
매주 화요일 휴식일인데 쉬지도 못하고 캘거리에 도착하여 선생님과 한 시간 공부를 하고는 바로 근처 도서관에 들어가 조리책을 펴고 열공을 하였다. 한달도 채 남지 않은 12월 4일이 시험인지라 한국에서 돌아온 이후 시차 적응도 할 사이도 없이 공부에 전념을 하였다. 매일 11시 넘게 끝나는 식당 일은 고되고 힘들었지만 나는 새벽 2-3시까지 공부를 하지 않을 수 없었다. 다음날 힘겨운 듯한 모습을 보이면 식당 주인 마님은 여지없이 독설이 날아왔고 나의 영주권을 위한 힘겨운 사투를 전혀 이해를 해 주시지 않은 듯 했다. 아쉽고 서운하지만 어쩌겠나? 자기들은 식당 운영을 위하여 일하는 종업원들이 업무 시간에 졸지 않고 맑은 정신으로 일해 주기를 바라는 것인데, 세상의 어떤 주인이라도 마찬가지가 아니겠는가?
캘거리에는 여러 군데의 도서관이 있지만 방문한 도서관 중에서 Fish Creek Library라는 곳이 제일 맘에 들었다. 시험 치는 장소와도 10분 거리에 위치하고 있으며, 최신식 건물에 내부에 책상도 많았고, 참 예쁜 도서관이 었다.
열심히 공부해야 할 내가 예쁜 도서관과는 무슨 관계가 있나? 하하.... 아무튼 난 매주 이 도서관에서 조리사 공부를 해 왔고 피곤할 때는 엎드려 자도 누가 방해하는 사람도 없고 조용한 공간이었다. 이 도서관을 찾는 대부분의 이용객들은 캐나다 백인들이다. 아이들과 같이 들어와 독서 하는 모습을 보면 참 우리나라와 비교되는 바가 크다. 나는 비록 시험 준비 차 들렀지만 그들은 책을 사랑하고 책 보기를 좋아하는 것 같았다.
드디어 시험날짜가 하루 앞으로 다가 왔다. 12월 3일 아침에 식당 주인께서 선뜻 제안을 하는 게 있었다. 4일 아침부터 시험 치려면 새벽부터 일어나 차를 몰고 캘거리로 이동해야 하고, 오전 8시 30분까지 입실하려면 캔모어에서는 최소한 5시 반에는 기상해서 가야하는데 힘들터이니 그냥 오후에 캘거리로 가라고 하신다. 1박을 호텔에서 하고 아침에 조금 더 눈을 부친 후 시험장으로 가라고 하시길래 너무나 고마웠고 생각지도 않은 호의에 지금까지 나를 힘들게 하신 모습도 잠시 잊게 하셨다.
짐을 챙겨 캘거리로 향했고, 1박은 Air BNB 를 이용하여 저렴한 일반인 가정집을 예약하였다. Booking.com 을 통해 예약을 했고 저녁 9시 도서관이 문을 닫을 때까지 정리를 하고 숙소로 향했다. 도착하니 밤 10시가 넘었고, 내 방으로 안내가 되었다. 그냥 잘 수는 없지 않은가? 그래도 한 단어라도 더 익히기 위해 책상에 앉았고 밤 12시가 넘어서야 침대로 향할 수가 있었지만 여전히 자신은 없었다. 처음 치는 시험인지라 생소하기도 하였고 70% 그까짓거 못 넘기겠는가? 하는 오기도 생겼지만 책만 보면 지례 자신이 없어지는 것이었다.
시험 전날은 그래도 충분한 잠을 자야겠기에 낯선 침대에 몸을 뉘었다. 그런데, 어디선가 들려오는 코 고는 소리에 도저히 잠을 잘 수가 없었다. 주인이 아직 취침 전이라 소음에 대하여 얘기를 했고 어떻게든지 조치를 취해 달라고 요청했다. 나는 내일 시험을 치뤄야 해서 잠을 못자면 안된다고 신신당부를 했다. 그러나, 코 고는 소리는 멈추질 않았고 나는 잠을 뒤척이다 2시나 되어서 잠이 들었다.
아침에 식사가 제공되었기에 식당으로 갔더니 옆 방에서 코 골았던 주인공이 거기서 식사를 하고 있었다. 얼마나 얄밉던지 뭐라고 쏘아 붙이고 싶었지만 꾹 참았다. 남자는 러시아 사람이고 여친인지 아내인지 여자는 인도 여자였다. 말을 자꾸 걸어왔지만 별로 대꾸도 하고 싶지도 않아 식사도 하는 둥 마는 둥하고 자리를 떴다.
샤워를 하고 준비를 마친 후 시험장으로 향했다. 시험장은 Willow Park Centre의 2층에 위치하고 있었다.
아침 7시 30분까지 도착하니 이주공사 사장님과 사모님이 친히 나와 계셨고 잘 치라고 응원해 주시면서 따뜻한 커피 한잔 건내 주셨다. 통역을 대동하면 4시간 시험을 6시간까지 연장이 가능하였기에 2시간의 시간을 더 벌 수가 있었으나 불행하게도 통역을 해 주실 분이 없으셨다. 하는 수 없이 나 혼자 시험을 칠 수 밖에 없었고 영어로 시험 문제를 푸는 데는 문제가 없었기에 통역은 굳이 필어 없을 것이라 생각했다.
시험장으로 들어서니 20여명의 응시자들이 보였고, 다들 자기 분야의 시험에 도전하는 사람들이었다. 나는 조리사 자격증이지만 어떤 사람은 용접사, 헤어 기능사 등등 다양한 직종의 시험에 응시하는 사람들로 붐볐었다.
한가지 불안한 징조가 있었었다. 건물 입구로 들어서면서 바지 호주머니에 넣었놨던 키 뭉치를 꺼내려는데 한국에 있는 큰 아들이 준 키 체인에 달려 있었던 아들 새끼 손가락 모형의 쇠 줄이 끊어진 것이었다. 순간 "아, 오늘 시험 떨어지는게 아닐까?" 하고 속으로 생각하였으나 아무 일 없이 난 시험에 최선을 다하리라 다짐했다.
시험은 8시 30분에 시작하였고 시험관이 오후 12시 30분까지 시간을 줄 테니 각자 자리로 가서 시험을 시작하라고 하였다. 대학 입시 시험을 친 후 이렇게 시험을 쳐 본 적이 언제 있었던가? 그것도 50세가 넘어서 시험을 쳐야 한다니 한편으로는 내 신세가 처량해 보이기도 하였지만 영주권을 따기 위해서는 필수였기에 그런 생각도 할 수가 없었다. 시험은 4지 선다형이었고, 4개의 보기 중 하나만 선택하면 되었다. 튜텨 선생님이 가르쳐 준데로 아는 것은 확실히 표시하고 지나가고 헷갈리는 문제나 모르는 문제는 2번째 훓어볼 때 마킹을 하기로 하였다. 150문제였기에 하나하나 꼼꼼하게 읽어갔는데 70문제가 넘는 시점에 시간을 보니 벌써 2시간이 흘러갔다. 속으로는 조마조마해지기 시작했고 조금 더 스피드를 내어서 풀어 나갔다. 최선을 다하였고 어느 덧 4시간이 흘러 오후 12시 30분이 되었다. 확실한 문제, 헷갈리는 문제, 모르는 문제 모두 카운트를 해 보았는데 각각 80개, 40개, 30개 정도로 나뉘었다. 105개를 맞으려면 확실한 문제를 제외한 70개 문제에서 25개만 맞으면 합격이지 않는가? 시험장을 나오면서 자신은 없었으나 그래도 희망을 가지고 나섰다.
시험장에는 주차할 곳이 없다고 하여 근처 쇼핑몰에 차를 주차한 후 시험을 치뤘는데, 주차했던 차로 돌아가니 앞 유리에 흰색 종이 한장이 끼어 있었다. 뭔가하고 보았더니 파킹 위반 티켓이었다. 그것도 $50 짜리 였다. 돈도 돈이지만 일부러 티켓을 안 받으려고 그 곳에 주차했더니 오히려 티켓을 거기서 받고 말았다. 이래저래 뒤숭숭한 하루였고 최선을 다한 시험이었기에 후회는 없었고 캔모어로 돌아오는 발길은 그리 가볍지는 않았지만 후련하였다. 그 동안 고생했던 순간들이 머리를 스쳐 지나갔다. 이제 1주일 후에는 결과가 나올테니 오늘은 돌아가서 그동안 못 잤던 잠이나 실컷 자겠다고 마음 먹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