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Jay Park Jul 08. 2019

앨버타 조리사 자격증 시험 준비

좌충 우돌 캐나다 영주권과 취업 도전기

이제 캐나다에서의 첫 차도 구입하였고, 더 이상 그레이하운드 버스를 기다리지 않고 바로 캔모어에서 캘거리까지 1시간 20분 정도면 튜터 선생님이 계시는 아파트까지 도착할 수가 있다. 10월 중 앨버타 조리사 자격증 시험을 치루고 반드시 합격을 하여야만 11월에 있을 Express Entry 로 영주권 진행할 수 있었다. 나의 직종은 조리사로서 Skilled Worker(숙련직)으로 지원이 가능했고, 매년 5월, 11월에 한번씩 선발이 있기 때문에 여름 내내 준비한 자격증 취득은 필수였다. 150문제 중 70% (105문제 이상)을 맞아야 레드씰 (Red Seal) 조리사 자격증이 주어지며, 이 자격증으로 50점을 부여 받기 때문에, 통상적으로 2018년 5월에 있었던 커트라인 점수 (287점)보다는 높게 점수를 받을 수 있으므로 11월에 뽑힐 가능성이 많았다.

즉, 조리사 자격증(레드씰)을 취득하면 나의 점수는 332점으로 50점 가까이 높기 때문에 뽑기만 하면 영주권 선발은 떼놓은 당상이었다. 9월을 넘어 10월 첫 주가 되었고 나는 여느 때와 마찬가지로 캘거리로 조리사 자격증 공부를 하러 가는 길이었다. 그런데, 이주공사로부터 갑자기 전화가 울려왔다. 무슨 일일까? 이주공사 담당자는 조심스레 차근차근 나에게 얘기를 했다. 원래 매년 5월, 11월에 정기적으로 선발을 해 왔으나 올해는 9월 말에 이민국에서 기습적으로 숙련직 Express Entry 선발이 있었고 점수도 284점으로 3점이 낮아졌다는 것이었다. 허걱, 마른 하늘에 왠 날벼락인지???


11월 선발을 꿀떡같이 믿고 준비해 온 나였기에 순간 절망적이었고 내년 (2019년) 5월에 다시 선발되기 까지는 많은 세월을 기다려야 하는 것이었다. 식당 고용주 분도 11월에 있을 영주권 진행에 맞춰서 하라고까지 선뜻 허락하셨기에 더더우기 아쉽고 힘 빠지는 소식이었다. 11월에 맞추려면 10월 중에 조리사 자격증 시험을 보고 합격하면 모든게 순조롭게 흘러가는 상황이었으나 이제 어쩌겠나? 다시 5월에 있을 영주권 선발까지 또 기다리고 기다려야만 했다. 한편으로는 조리사 자격증도 아직 따지 못한 내가 뭘 바라고 있는건지? 하고 내 자신이 한심스럽기도 했다.


실망했던 마음도 가라 앉히고 앨버타 주 조리사 시험 신청을 하였다. 1000페이지에 달하는 책은 3번 정도 훑어보고 나름 열심히 준비한다고 하였고, 영주권 진행을 위해서는 더 이상 지체할 수가 없었기에 100% 준비가 안되었지만 시험 날짜를 요청하였다. 시험은 원한다고 바로 칠 수가 있는 것이 아니라, 경력 증명이 필요한데 한국에서 일했던 레스토랑, 식당 주인들과 이곳 앨버타 주정부 담당자가 확인 절차를 진행해야 했고, 이 기간 또한 짧지는 않았었다. 신청 후 한국 고용주들에게 전화가 한국어가 가능한 직원이 연락이 갈 것이고 내가 그 식당, 레스토랑에서 일한게 맞는지를 확인하는 절차인데 전화상으로 몇가지 질문을 하고 끝나는 과정이었다.


한국에 있는 고용주 분들께는 미리 전화로 알려 드렸고 국제전화가 들어오면 절대로 끊지 마시고 받아달라고 신신당부를 하였다. 1주일 정도 지났을까, 한국에서 고용주 두분이 연락이 왔다. 캐나다에서 전화가 왔었는데 한분은 전화를 받고 10분정도 확인 작업을 마쳤으나, 나머지 한분은 전화를 받았는데 말소리가 들리지 않아 곧 끊어지더라는 것이다. 이 소식을 들은 나는 이 과정이 완료되지 않으면 시험을 칠 기회 조차 주어지지 않았고, 통상적으로 전화가 안될 경우, 이메일로 확인 요청을 한다고 하였다. 전화가 끊어진 고용주에게는 혹시 다시 전화가 오거나 이메일로 요청이 올 수 있으니 이번에는 꼭 확인해 달라고 신신당부를 하였다. 그러나, 2주가 넘도록 아무런 연락이 없다는 것이었다. 나는 점점 초조해지기 시작했다. 영주권을 획득하기 위해서는 조리사 시험으 필수이었고, 조리사 시험을 치루기 위해서는 경력 확인이 필수였지만 첫 번째 단추부터 문제가 발생한 것이다.


캐나다의 어느 정부 부서든지 담당자와 통화하기란 정말 힘들단다. 결국, 진행이 안되자 나는 조리사 시험 담당자에게 전화를 하였고, 담당자와 가까스로 통화가 되었고 현재 상황을 설명하고 경력 확인 담당자에게 2명의 고용주 중 한 분만 통화가 되었고 나머지 고용주는 전화가 왔으나 말소리가 들리지 않아 끊어졌고 다시 확인을 해 달라고 요청을 하였다. 그러나, 돌아오는 답변은 전달은 해 주겠으나 담당자가 다시 확인 전화를 걸지는 모르겠다고 다시 기다려 보라고 하였다. 이후, 2주가 넘도록 아무런 연락이 없었다, 3주째가 되었는데, 담당자로부터 연락이 왔고 조리사 시험 일정이 잡혔다는 것이었다. 엥? 무슨일이지? 경력 확인이 한 분 밖에 안되었는데 나머지는 그냥 넘어간 것일까? 아무튼 결론은 무사히 넘어갔으니 내가 굳이 전화하여 어떻게 된 영문인지 물어볼 이유가 없었다.


이렇게 확정된 시험 일정은 10월 23일이었고, 나는 시험 일정이 정해진 순간 다시 긴장과 함께 시험 준비를 더더욱 열심히 해야 겠다는 생각 뿐이었다. 이 조리사 시험은 딱 2번의 기회만 주어지며 2번 모두 불합격 시, 다시 도전할 수 없는 시험이었다. 나에게 도움을 주시는 튜터 선생님은 수업시간마다 핀잔과 구박을 많이 주셨다. 이렇게 해서는 절대 합격 못한다는 것 이었다. 시험 날짜가 1주일 앞으로 다가왔을 시점에 튜터 선생님과 진지하게 얘기를 하였고, 결국엔 해 봐야 떨어지니 시험을 연기하자는 것이었다. 어차피 영주권 선발도 9월 말에 해 버렸기 때문에 급하게 시험을 치룬다 하더라도 합격하면 다행이지만 못 할경우 기회만 한번 잃어버릴 것이고 나에게는 더한 압박이 주어질 것이라는 것이었다. 나도 그 의견에 동의를 하였고, 시험주관 부서에 전화를 하여 12월 5일로 연기 신청을 하였고 이 요청은 받아들여졌다. 연기 신청은 한번 밖에 안된다고 하였다. 그리하여, 나의 열공 모드는 계속 진행하게 되었고, 지루한 공부와의 싸움은 계속 되었다.


우리 식당은 일년에 딱 한 주일만 문을 닫고 쉬는 데 그것이 11월 초순이었다. 매주 화요일 휴무인데 월요일부터 휴가가 주어지고 한 주 후 화요일 오후에 출근하여 수요일 오픈을 위한 준비를 하면 되는 일정이다. 튜터 선생님은 공부하기 좋은 시간이니 어디 가지 말고 캔모어에 남아서 공부 열심히 하라고 한다. 6월에 캐나다에 도착하여 11월까지 줄기차게 일과 공부의 연속의 삶은 이미 나를 지칠데로 지치게 만들었다. 아내와 세 아이들의 얼굴도 보고 싶고 그 동안 힘들었던 일들도 나누고 위로 받고 힐링의 시간이 나에게는 필요했다.


튜터 선생님의 강력한 경고에도 불구하고 나는 한국행 비행기 티켓을 끊었고 월요일 출발이 아닌 수요일 출발 비행기 편으로 한국으로 향하게 되었다. 사실 가족들도 영주권도 따지 못하고 중요한 시험이 한달 뒤에 있는데 뭐하러 한국에 오냐고 아우성이었지만 난 그렇게 하지 않으면 미철 것 같아 다들 반대를 뿌리치고 한국으로 향했다. 캐나다에서 수요일 출발이면 한국에 도착 시 목요일 저녁이고, 금, 토, 일, 사흘 지내고 월요일 다시 캐나다 비행기를 타야했던 짧은 한국 방문 일정이었다. 그래도 나는 그렇게라도 다녀와야 내 마음을 다시 추스릴 수 있을 것 같았기에 무작정 한국으로 향했다. 12시간이 넘는 비행 시간 동안 남들 같이 영화보고 잠만 자고 갈 수가 있었겠는가? 나는 그 동안 정리했던 노트와 책을 가지고 한국으로 향하는 시간 내내 읽고 또 읽고 하였다.


그립던 한국에 도착하여 가족들과 짧은 시간을 보내고 다시 캐나다로 항하게 되었고 나의 어깨에 주어진 부담은 말 할 수 없이 무거웠다. 이제 남은 시간은 한 달 남짓이다. 이 기간 동안 죽었다고 생각하고 공부를 해야한다고 다짐했다.

작가의 이전글 캐나다에서의 첫 애마를 마련하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