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 큰일 낸 사람들의 이야기 EP.02
여러분은 코딩과 얼마나 닿아있나요? 코딩의 ‘코’ 자에도 꿰어 있지 않은 삶부터 코딩 없이 설명되지 않는 삶까지 모두 제각각의 삶을 이어가고 있을 테죠.
오늘의 큰일러는 코딩과 무관한 삶을 살다 ‘나만의 발견’을 꿈꾸며 코딩의 세계에 입문한 분입니다. 전국에 있는 동물원을 조사하는 프로젝트를 진행했다고 하는데요. 코딩이란 도구가 어떻게 프로젝트에 쓰였는지 한번 들어보시겠어요?
자기소개를 부탁한다.
콘텐츠를 만드는 사람이다. 직업 관점에서 걸어온 길을 말하자면, 동아사이언스라는 과학 콘텐츠를 만드는 회사에서 오랫동안 기자를 하다 지금은 영상 PD로 일하고 있다. 인스타그램과 유튜브에서 ‘SEIZE’라는 채널을 운영하고 있다.
직업을 선택하기 이전의 궤적도 궁금하다.
이런 질문에 나는 보통 두 가지로 대답한다. 21세기 아리스토텔레스와 문화교실 수강생.
대학에서 물리학과 철학을 전공했다는 단순한 이유도 있지만 근본적으로 깨닫고 배우는 것을 좋아하는 사람이기 때문이다. 때로는 아리스토텔레스처럼 진지하게 파헤치고, 때로는 문화교실 수강생처럼 즐겁게 배운다.
세상의 이치 깨닫기를 좇던 사람이 어떻게 콘텐츠를 만드는 사람이 되었나.
‘콘텐츠를 만드는 것’은 더 내 본체에 가깝다. 중학생 때부터 영상을 만드는 것을 좋아했다. 중학생 소녀의 자전적 이야기를 담은 영상으로 지역 대회에서 우승도 했다.(이 상을 안 받았다면 PD를 꿈꾸지도 않았을 텐데···.)
아무튼 이때부터 취직 전까지 부지런히 영상을 만들었다. 단편 영화, 뮤직비디오, 애니메이션을 지나 다큐멘터리에 도착했다. 내가 가장 즐거워하면서도 잘하는 분야였다. 동시에 세상에 대해 배우면서 콘텐츠를 만드는 일이기도 했다. 그렇게 저널리즘의 세계에 입문하게 됐다.
큰일났다. 다솔 님은 코딩과는 전혀 상관없는 사람처럼 보인다.*
안심하시라. 사실 내 인생에 코딩이 있었다는 게 나조차도 신기하긴 하다.
코딩에 입문한 계기는 데이터 저널리즘 때문이었다. 과학 기자의 일 중 대부분은 남이 만들어 놓은 논문이나 사실들을 소화해서 이해하기 쉽게 쓰는 것인데 이것 말고 ‘나만의 발견’을 하고 싶더라. 회사 선배들이 노벨상 수상자들의 논문 전수를 가지고 ‘크롤링’이라는 것을 해 새로운 분석을 한 기사도 큰 영감을 줬다. 나도 엇비슷한 것을 할 수 있겠다고 생각했다.
*큰일레터는 코딩으로 큰일 낸 사람들의 이야기를 소개하는 뉴스레터다.
코딩을 어떻게 배웠나.
코딩과 무관한 일을 하고 있으니 본격적으로 배우기가 부담스럽더라. 처음엔 스파르타코딩클럽의 강의도 몇 개 들었다. 이미지 크롤링, 말뭉치 분석 등을 했던 기억이 난다. 단톡방에서 제일 많이 쓰는 단어를 분석해 친구들에게 자랑도 했었다.
그렇게 여기저기서 코딩 맛보기를 꽤 하다가 이대로는 안 되겠다 싶어 학원을 등록했다. 데이터 저널리즘 경험이 많은 기자가 가르치는 강의로 파이썬과 엑셀 위주의 코딩을 배웠다.
그래서 코딩을 통해 ‘나만의 발견’을 이뤄냈나.
그렇다. 더 정확하게는 ‘우리의 발견’을 해냈다. 데이터 분석을 직접 하긴 했지만, 이 프로젝트는 본질적으로 분석보다 데이터 수집에 더 의의가 있었다고 생각한다.
프로젝트 이름은 우동수비대. 우리 동네 동물원 수비대의 준말이다. <어린이과학동아>라는 잡지의 구독자들이 전문가의 도움을 받아 전국에 있는 동물원을 조사하는 프로젝트로, 무려 800여 가족이 참여했다.
이 프로젝트를 진행한 2021년에는 일정 규모만 충족하면 등록만으로 야생동물을 소유해 동물원과 수족관을 운영할 수 있었고, 시설과 환경 기준이 거의 없어서 열악한 동물원이 많았다.* 등록 없이 영업하는 곳도 있었기에 당시 우리나라 동물원이 전체 몇 개인지 가늠만 할 뿐, 정확한 수치는 아무도 몰랐다.
우동수비대 대원들은 전국에서 활동하며 미등록 동물원 150여 개를 발견했고, 총 379개 동물사*의 복지 실태를 조사했다. 이 공로를 인정받아 2021년 한국데이터저널리즘어워드 특별상과 2022 미국과학진흥협회(AAAS)가 수여하는 ‘2022 AAAS 카블리 과학 저널리즘상’을 받았다.
*2023년 12월 14일부터 동물원 운영이 등록제에서 허가제로 전환된다. 동물원은 생태적 습성을 고려한 시설, 동물복지 사항을 준수해야 운영이 가능해진다.
*동물사 : 동물원에서 동물이 사는 공간 혹은 사육장.
프로젝트에서 가장 기억에 남는 발견이 있나.
그럼에도 괜찮은 동물원이 존재한다는 사실이었다. 한 예로 라쿤이 있는 49개 동물원 중에 2개 동물원은 라쿤이 제 수명을 살 수 있는 최소한의 환경이 갖춰진 곳이었다. 동물원을 떠올리면 늘 마음이 불편했는데 이런 상황에도 어떤 동물원은 굉장히 애를 쓰고 있다는 점이 인상적이었다.
혹시 프로젝트를 하면서 아쉬웠던 점은 없나.
물론 있다. 프로젝트를 진행하면서 조사 기록을 올리는 웹페이지에 ‘조사 현황판’을 꼭 만들고 싶었다. 지금까지 어떤 동물원이 조사됐는지 알려주면 대원들이 자연스레 조사 결과가 없는 동물원에 갈 테고 그럼 조사 결과가 더 풍부해질 거라 생각했다.
하지만 개발팀에서는 ‘시간이 없다’는 답이 왔다. 사내 곳곳에서 개발 업무가 필요하니 이해가 안 되는 바는 아니지만, 그것과 별개로 프로젝트 내내 ‘개발을 조금만 알았더라면···’하는 생각이 머릿속에 떠다녔다. 급한 대로 구글 시트에 조사 현황을 일일이 기록해 보여줬다. 다시 생각해도 구글 시트를 하나하나 보며 동물원을 찾아다닌 아이들이 대단하게 느껴진다.
우동수비대로 그토록 원하던 ‘나만의 발견’을 이루고 상까지 받았다. 그야말로 ‘큰일’을 냈는데. 소감이 어떤가.
훌륭한 프로젝트였다고 생각한다(웃음). 좀 더 진지하게 답하면 질문의 워딩처럼 ‘내가 정말 큰일을 냈구나’하는 생각이 스쳐간 때가 있었다. 프로젝트에 참여한 아이들의 변화를 알게 됐을 때다. ‘동물을 보면 즐거운데 동물원에 가는 게 좋은 건지, 안 좋은 건지 잘 모르겠다’는 철학적인 고민부터 동물원에서 동물의 움직임에 신기해하던 또래에게 ‘저건 정형행동*이야’라고 알려줬다는 일화까지. 나에겐 어떠한 결과보다 ‘큰일’처럼 느껴졌다.
*주로 사육동물에게서 나타나는 반복적이고 지속적이지만 목적이 없는 행동으로, 극도의 스트레스를 겪고 있다는 증거다.
아이들의 변화가 가장 ‘큰일’로 느껴졌다니. 다솔 님에게 ‘큰일’은 무엇인지 더 궁금해진다.
세상을 바꾸는 것. 정확히는 사람들의 생각, 더 나아가 제도를 바꾸고 싶다. 많은 사람의 노력으로 동물원수족관법이 등록제에서 허가제로 바뀌었지 않나. 사람들의 생각이 하나둘씩 바뀌면 서로가 서로에게 피드백을 주면서 세상이 바뀔 거라고 믿는다.
우동수비대는 데이터로 그 변화를 이끌어냈다면 현재는 영상을 도구로 변화를 위한 메시지를 전달하고 있다. 한 예로 ‘반지하와 기후 적응’을 주제로 한 콘텐츠를 준비 중이다. 새로운 기후에 적응하기 위해서는 도시가 총체적으로 변해야 한다는 것이 주요 메시지다. 뉴욕의 사례를 취재해 왔는데 ‘우리나라에도 이러한 변화가 필요하겠다’는 관심이 생겼으면 좋겠다.
또 한 번의 큰일을 내기 위한 계획이 있나.
마감을 잘 끝내는 것? 하나씩 하나씩 마감을 끝내다 보면 또 새로운 큰일이 이뤄지지 않겠나.
CREDIT | 박영경 팀스파르타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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