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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아키 Jun 15. 2022

제31회 신춘문예 단막극전 <가로 묘지 주식회사> 감상

희곡의 짙은 점성은 옅어지고 피 냄새 도는 여운은 희미해졌다

‘애착’과 ‘집착’에 ‘붙을 착’이라는 한자가 동시에 들어있는 것을 보면 애정의 규모에 상관없이, 끌리는 대상에게 딱 달라붙고 싶은 마음은 인간의 당연한 욕구일지도 모른다. 연극 <가로 묘지 주식회사>는 애착과 집착이 진득하게 묻어 나오는 연극이다. 동시대의 부조리와 모순을 강한 악력으로 붙들어 바라보는 작가 황수아의 시선에서는 애석하리만큼 절대적인 애착이, 그런 작가가 창조한 인물들에게서는 각자가 욕망하는 이상향에 대한 집착이 느껴진다. 그러나 그 인물들이 아무리 끈적이는 점성으로 각자의 욕구에 매달려보아도 소용없다. 작가도, 등장인물도 심지어 관객도 어느 한 편에 편히 맘 붙이지 못한 채 극이 막을 내리기 때문이다. 이 연극이 해소되지 않는 찝찝한 여운을 남길 수밖에 없었던 이유는 무엇일까.


우선 인물 간, 장면 간의 대비가 약했기 때문이다. 신춘문예에 당선된 원작의 희곡과 달리 단막극전에서는 동생 ‘세로’의 성별이 바뀌기까지 했지만 가로 묘지의 기존 거주민을 내쫓는 과정에서 남매 ‘가로’와 ‘세로’의 상충하는 성향 및 가치관은 훨씬 부각되지 않았다. 각자의 신념이 충돌하는 양상이 약해진 만큼 각 인물의 개성 역시 그 형태가 흐려진 것이다.


또 마지막 장면에서 ‘피’를 시각적으로 보여주지 않은 채 대사로만 피의 발견을 언급하는 것이 아쉬웠다. 해당 연극이 상당히 역동적이기는 하지만 연출가 장용휘의 설명에서 알 수 있듯, 결국 이 극은 극단적인 상징물에 비유되었을 뿐 우리가 사는 세상의 이야기이다. 하지만 피가 나오는 돌발적인 결말은 연극의 장르를 드라마에서 호러, 혹은 스릴러로 빠르게 전환시킨다. 큰 변곡점을 그리며 끝나는 결말이 이 희곡을 읽는 묘미였는데 반전을 가져오는 소재에 대한 시각적인 연출이 생략된 점은 극의 대비감을 크게 축소시켰다.


강조할 수 있었던 소재 간의 유사성을 강조하지 않은 점도 아쉬웠다. 극 중 에스 그룹과 가로 묘지 주식회사는 누군가의 이익을 빼앗는 방법에 있어서는 대조되지만 결국 당사자(소수자)가 마땅히 받아야 할, 누려야 할 권리를 박탈한다는 점에서 비슷한 결과를 초래했다. 에스 그룹은 연구 과정에 지불할 페이를 축소시켜 연구원을 '내몰았고' 주식회사는 관 값을 지나치게 높여 기존 거주민들을 '내쫓았으니' 말이다. 아주 쉽게 대기업으로 인지되는 에스 그룹과 사회적 약자를 대상으로 장사하는 가로 묘지 주식회사가 사회적, 경제적 입지에 있어서는 서로 대비되는 와중에 자본주의 앞에서는 둘 다 유사하게 폭력적인 태도를 보였다는 것 역시 흥미로운데 이러한 대비와 유사성의 공존이 연극에서는 잘 드러나지 않았다.




막이 끝날 때 희곡에는 없는 내레이션이 나왔다. 기어코 가로 묘지 주식회사까지 독점할 것이라고 말하는 목소리의 주체는 연극에는 한 번도 나타나지 않은, 등장인물들을 자꾸만 북쪽으로 몰았던 기득권 세력일 것이다. 형체 없이 음성으로만 존재하는 기득권은 어쩌면 특정 이익집단, 정부, 혹은 사회 그 자체일 수도 있겠다는 여운이 짙게 남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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