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의 디지털 문해력(Digital Literacy)을 키워야 할 시간
│이 모든 이야기는 피해자들의 희생으로 만들어졌다.
몸캠피싱 범죄에서 피해 남성들의 영상과 사진을 유포하는 자.
소셜 데이팅 앱에서 만난 불특정 다수의 여성들을 촬영한 영상을 유포하는 자.
청소년 중심으로 트위터와 디스코드(discord)에서 지인능욕 키워드로 딥 페이크 영상을 만들어 유포하는 자.
성착취물, 불법 촬영물의 피해자와 그 영상을 유통하는 피의자들의 스마트폰에는 ‘데이팅앱'이 설치되어 있었지만 그 누구도 주목하지 않았다. 가해자의 처벌과 피해자의 잘못에만 집중되었고 정작 이 싸움의 시작이 되었던 플랫폼 회사는 조용히 비켜나갔다. 가해자들의 처벌 수위는 국민들의 법 감정을 만족시키지 못했고 그나마 피해자들은 기억 속에서 사라져 버렸다. 디지털 성범죄와 인터넷 불법 도박 범죄는 수요자의 지분이 생태계를 유지하는데 큰 역할을 한다. 하지만 제작자와 배포자 그리고 수요자 사이에는 플랫폼의 방관이 숨어있다.
이들이 디지털 성범죄 생태계에서 서식할 수 있었던 이유는 플랫폼의 방관 때문이다.
그리고 이를 확인할 수 있는 2건의 피해 신고가 접수되었다.
익명 게시판
사무실 문을 열고 여학생과 어머니가 함께 들어왔다. 모자와 마스크로 얼굴을 가린 채 고개를 숙인 학생과 두려움 가득한 얼굴로 들어오는 모습에 사무실은 어두워진다. 그래도 어머니는 딸이 보낸 긴급한 신호를 알아채고 원본 자료를 확보한 상태로 가져왔다. 청소년들은 사이버범죄 피해를 당하게 되면 원인을 스스로에게 돌리는 경향이 강해 증거를 지워버리거나 혼자서 해결하려고 한다. 우리가 그렇게 해왔고 사회가 그렇게 해 왔으니 청소년들도 그런 줄 알고 있다. 그들이 위험에 처했을 때 신호를 가장 먼저 인지해야 할 사람은 가족이다. 위험 신호를 학교 선생님이나 친구가 먼저 알게 되었을 경우 간혹 상황을 객관적으로 바라보기 어려울 정도로 변질될 수도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자녀가 위험 신호를 보냈을 경우 이를 해석할 줄 아는 디지털 문해력(Digital Literacy)이 필요한 시기이다.
여학생으로부터 스마트폰을 건네받아 담겨있는 자료를 확인했다. 요즘 청소년들 사이에서 유행처럼 번져가고 있는 익명 게시판 애스크(ask.fm)에서 사이버 폭력 피해를 당하고 있었다. 특히 코로나 이후 전체 사이버범죄 중 전 연령대에서 사이버명예훼손. 모욕 범죄가 가장 높은 비중으로 증가하고 있다. 더 놀라운 건 카카오톡에서 페이스북(facebook)·트위터(twitter)·디스코드(discord)와 같은 해외 SNS로 청소년들의 대이동이 뚜렷하게 목격되었다.
2014년 –2021년 사이버명예훼손. 모욕사건 발생 및 검거건수(경찰청 제공), 그래프 제작 : 박중현
자료출처: https://www.police.go.kr/www/open/publice/publice0204.jsp
피해자의 어머니는 처음 마주하게 된 현실에 세부적인 사건 개요까지는 파악하지 못하고 원본 자료만을 확보해 사무실로 들어왔다. 누군가로부터 피해자를 혐오하는 가짜 뉴스(Fake News)가 퍼질 대로 퍼져 나가고 있었다. 팩트 체크는 논쟁의 시작부터 빠져 있는 듯했고 피해자를 자살로 몰고 가는 위험한 내용의 글들이 많이 발견되었다.
피해자로부터 확보한 익명 게시판 애스크(ask.fm) 대화 내역 중. 수많은 대화 내역 중 유독 피해자에게 자살을 유도하는 게시자의 글이 가장 많았다. 자료출처: 박중현(현재는 계정 삭제)
보관 중인 대화내역 원본을 파일 형태로 임의 제출받았다. 대화 내역을 확인하면서 알게 된 사실을 어머니와 공유하고 동시에 익명 채팅 게시판의 위험성도 알려 줬다. 전체적인 대화 내용으로 추정하건대 피해자를 잘 알고 있는 같은 학교 학생이 작성한 내용으로 보였다. 증거를 지우지 않고 원본으로 확보했기 때문에 사건 내용을 객관적으로 바라볼 수 있었지 만약 가족이 아닌 다른 사람이 먼저 알게 된 경우 증거가 훼손될 가능성도 높아진다.
자료를 확보하고 애스크 본사에 수사협조를 위한 메일을 보냈다. 익명 게시판 애스크는 해외 ask.fm과 국내에서 서비스를 하고 있는 애스크드 익명질문(aske.kr)으로 구분되어 있는데 피해자 사용한 건 라트비아 공화국(Latvijas Republika)에서 개발한 해외 애스크 서비스였다.
익명 게시판의 기능을 제공하고 있는 해외 애스크(ask.fm)와(좌측) 국내에서 서비스를 하고 있는 애스크드(asked.kr) 서비스(우측)
사건개요와 익명의 게시자가 작성한 글이 국내법에서는 위법이며 동시에 가해자를 찾아 처벌하기 위해서는 데이터가 필요하기에 필요한 정보의 종류 등을 자세하게 작성해 애스크 사법(Askfm Law Enforcement) 담당자에게 발송했다. 그리고 본사로부터 이메일이 도착했다.
애스크(ask.fm) 사법기관 담당 부서로부터 받은 이메일 내용 중 일부 발췌
출처:박중현
이메일 영문 번역
박중현 님께
이메일을 보내주신 것에 대해 감사드립니다. 우선 한국어로 보내준 내용만으로 당사의 사용 약관에 위배되는지 여부를 결정할 수 없습니다.
ask.fm은 사법기관(Law Enforcement)에게 사용자 비(非) 식별 자료(non-user content)를 자발적으로 제공하고 있습니다. 다만 1988년과 최초 제정되어 2003년 확정된 아일랜드의 개인정보보호법의 적용에 따른 의무에 비추어 볼 때, 당사가 (사건과) 관련된 사용자 비(非) 식별 자료를 찾고 만들어 제공하기 위해서는 (귀사가) 다음과 같은 정보를 제공해야 합니다.
ask.fm에서 회신해 준 이메일 내용을 이 사건 중심으로 정리하면 다음과 같다.
1. 가해자가 작성한 게시글 원본과 작성자의 계정 주소를 확보해 본사에 요청해야 한다.(그래서 원본 확보가 필요한 이유다.)
2. 본사는 가입자들로부터 ‘사용자 비(非) 식별 자료(non-user content)’형식으로 자료를 수집한다.(이 자료가 바로 원 데이터(raw data)이며 플랫폼별로 수집하는 정보의 종류가 일부 상이하나 대부분 방대한 자료를 수집하고 있다.)
3. 사법기관이 요청할 경우 플랫폼이 수집한 원 데이터를 자발적으로 사법기관에게 제공할 수 있다.(여기서 사법기관은 국내의 사법기관인지 해외 사법기관인지를 구분해야 하며 한국은 여기서 해외 사법기관이다.)
즉 라트비아 공화국(Latvijas Republika)에 플랫폼 본사가 있는 ask.fm은 한국과 같은 해외 수사기관에 수집한 원 데이터(raw-data)중 수사에 필요한 자료를 제공하기 위해서는 아일랜드 법을 따라야 한다. 여기서 자발적으로 제공할 수 있다는 해석에는 한국에서 불법인 행위가 라트비아 공화국에도 불법인 행위라는 전제하에 고려가 가능하다. 그만큼 고려해야 할 조건과 넘어야 할 관문이 상당히 많다. 그리고 최근에는 해외 플랫폼 기업들이 한국을 포함한 해외 수사기관에게 정보를 자발적으로 제공하기보다 형사사법공조(MLAT : Mutual LegaL Assistnce Treaty)를 통해 제공하겠다는 입장을 취하고 있다. 협사사법 공조는 국내의 경찰> 검찰> 법무부를 거쳐 다시 플랫폼기업이 있는 국가의 법무부> 검찰> 수사기관에 도달한 후 시작되는 절차로 시작과 끝을 예측하기 힘든 시스템이다. 문제는 이런 엄청난 절차적 어려움을 피해자와 가족들에게 설명하는 게 담당자에게 더 큰 고통이다.
고민 끝에 글 작성자가 같은 학교에 있을 거라는 확신이 들어 학교 측의 협조를 받아 사이버범죄 예방교육을 하기로 했다. 청소년 시기의 특성상 사실 확인 여부없이 퍼져가는 가짜 뉴스(Fake News)를 쫓아가면 본인도 피해자가 될 수 있으니 글을 작성한 사람이 여기 있다면 반드시 피해자에게 찾아가 용서를 구해야만 할 거라는 메시지도 함께 전달했다.
며칠 후 피해 학생으로부터 전화가 걸려왔다. 가해자가 찾아와 사과를 했다며 처벌을 원하지 않는다고 했다. 그리고 익명 게시판도 사라졌다. 언제 회신이 올지 모르는 형사사법공조로 가해자를 확인할 자료를 기다리기에는 피해자와 가족들의 디지털 문해력(Digital Lteracy)과 시스템 사이에 큰 괴리감이 생긴다. 지금의 청소년들에게 일어나고 있는 SNS 대이동 현상을 보면 이런 상황이 닥쳤을 때 어디까지 위험성을 알고 대처할 수 있을지 디지털 문해력이 필요한 시기인 것은 분명하다. 이번 사건은 빠른 결정으로 원만하게 해결되었지만 상당히 위험했던 순간들이 많았다. 하지만 무엇보다 사이버범죄 예방교육의 필요성에 확신을 가졌다. 문제는 함께 할 사람이 없어서 혼자서 해야만 했다. 최대한 많은 곳을 찾아다니고 싶었지만 사이버범죄는 여전히 그들만의 문제였고 현실은 차가웠다. 그리고 피해자는 계속해서 사무실 문을 열고 들어왔다. 피해자의 연령이 점점 내려갈수록 사무실 분위기는 더 어두워진다.
#지인능욕
이번에는 딥 페이크(Deep Fake) 피해를 당한 피해자였다. 트위터에 해쉬태그(#)와 함께 무차별적으로 퍼져 나가고 있었다. 그리고 옆 자리에 앉아 있는 피해자의 어머니들은 모두가 자신의 잘못으로 돌리고 있었다.
#지인능욕
이 키워드로 지인능욕 영상물 제작자와 수요자가 모이는 시장을 탐색해 봤다. 제일 먼저 특정 키워드로 게시물을 필터링해 낼 수 있는 자동화 도구 OSINT(Open Source Intelligence)로 ‘지인능욕’이라는 키워드를 대입해 봤다. 그리고 실시간으로 게시물과 사용자들이 나타나기 시작했다.
필터링되어서 나타나는 사용자들 중 의심스러운 계정을 확보해 들어가 보았다. 문화상품권과 사진을 보내주면 즉석에서 고화질의 딥 페이크 영상과 사진을 만들어 주겠다는 광고를 하고 있었다. 이렇게 해서 제작된 딥 페이크 영상물은 다시 트위터에 업로드되어 다음과 같은 해쉬태그로 포스팅되고 있었다.
#지인박제 #얼싸
과연 이 게시물을 포스팅한 행위자만을 잡는 것으로 시장이 사라 질 수 있을지도 의문이었다.
1.99달러(한화 약 2천5백 원)와 9.99달러(한화 약 만 2천 원)이면 한 사람의 인생을 무너뜨릴 수 있는 딥 페이크 영상물 제작이 가능하다.
특히 얼굴 사진과 음란물을 합성하는 딥 페이크(Deep Fake) 범죄는 누구든지 피해자가 될 수 있어서 플랫폼의 모니터링이 더욱 절실했다. 아무리 많은 단체들이 뛰어들어 모니터링하고 있지만 삭제되고 차단되는 게시물보다 번져 나가는 양이 비교할 수 없을 정도였다.
몸캠피싱 범죄에서 피해 남성들의 영상과 사진을 유포하는 자.
소셜 데이팅 앱에서 만난 불특정 다수의 여성들을 촬영한 영상을 유포하는 자.
청소년 중심으로 트위터와 디스코드(discord)에서 지인능욕 키워드로 딥 페이크 영상을 만들어 유포하는 자.
이들이 디지털 성범죄 생태계에서 서식할 수 있었던 이유는 플랫폼의 방관 때문이다.
하지만 플랫폼 기업들 사이 엄청난 속도로 오고 가는 데이터를 제어하고 모니터링하기 위해 필요한 시스템이 만들어지기까지는 많은 시간이 필요하다. 그래서 우리에게는 사이버범죄 예방 전문가가 필요한 시기이다.
1 가구 1 사이버범죄 예방 전문가가 필요한 시대가 되었다.
방대하게 수집되는 데이터를 제한하고 불법과 유해한 정보를 차단하기 위해서 정비되는 시스템만을 기다리기에는 주고받는 데이터의 속도가 너무 빠르다. 데이팅 앱과 랜덤 채팅 개발사들은 가입자 확보에만 눈이 멀어 자극적인 마케팅에만 열을 올리고 있다. 사이버범죄 피해를 당한 피해자들에게 가해자를 검거해 사법정의를 실현하고 평범한 일상을 돌려주기 위해서는 한 기관만의 노력만으로는 부족한 시기이다. 가족의 온전한 일상은 사이버 스페이스로 옮겨졌다. 안전한 사이버 스페이스를 만들기 위해서는 이제 우리 스스로 디지털 문해력을 키워야 한다. 더 이상 피해자들만의 이야기로 외면해서는 안된다. 가족 중 누구 하나라도 사이버 스페이스가 위협을 당하면 전체가 위험해지는 시대에 살고 있다.
이 글에 언급된 사건들은 직접 취급한 건 맞지만 발견한 문제점과 예방법은 그 누구로부터 배운 지식들이 아니다. 문제의식을 가지고 직접 찾아다니면서 확인한 내용이다. 그리고 확인하면 할수록 더 깊은 문제점을 발견해 계속해서 국내외 플랫폼 관계자들에게 질문을 던졌고 돌아온 대답을 다시 확인해 온 것이다.
이제 이런 관심을 우리 스스로 발굴해야 한다. 관심을 가지는 일이야말로 전문가가 될 수 있는 첫 번째 단계이다. 자녀들의 스마트폰에는 어떤 일이 일어나고 있는지 적어도 내가 사용하는 온라인 생태계는 어떤 구조를 가지고 있는지 관심부터 가지고 출발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