춤추는 대수사선

한 경찰서 두 명의 수사과장

by 박중현

현실로 돌아온 피해자 분과 동생분은 적극적으로 수사에 참여하기 시작했습니다.

수사에 참여했다기보다는 본격적으로 수사지휘를 하기 시작하였습니다.

피해 당사자인 언니분은 경찰서 방문 전 저와 조사 일정 약속을 잡고 정해진 시간에 방문하셨지만 동생분은 약속 없이 심지어 다른 볼일 보러 지나갈 때마다 사무실을 방문하셨습니다.

한 번은 늦은 오후 4시경 두 분이서 예고 없이 사무실로 동시에 들어오셨습니다.

언니분은 예고 없는 방문에 미안해하는 눈치였지만 동생분은 급하게 생각난 단서들을 정리해 꼭 저에게 전달해야겠다는 태도였습니다.


“7개월 동안 돈을 입금하고 나서 2014.10.14 날 인천공항 7번 게이트 앞에서 만나기로 했었거든요!”

동생분이 처음 고소장을 들고 저와 만나기 전날의 행적에 대해서 말을 시작하였습니다.

“예, 그렇죠. 10.15일 날 고소장을 들고 오셨으니깐 10.14일 날 인천공항으로 나갔다는 말씀이신 거죠?”

“10.14일 날 모든 서류 준비가 다 되었고 미국에서 데리러 온다고 해서 그날 저하고 같이 인천공항으로 나갔습니다. 그런데 그날 인천공항에 나타나지 않아서 처음에는 얼마나 걱정을 했었는데요!”

처음부터 사기라는 시나리오라는 걸 알았다면 돈을 송금하지도 않았겠지만 7개월이란 시간 동안 범죄자가 허구로 만들어낸 인물을 철저히 믿고 있었으니 당연히 짧은 시간 아메리칸드림을 꿈꾸었을 것입니다.

“이제 사기라는 걸 받아들이니깐 본인의 행동이 굉장히 부끄럽죠?”

저는 동생분을 참고인 조사를 해달라는 말인지 의도를 잘 몰라서 계속해서 대화를 이어 갔습니다.

“그런데, 그 범죄자가 한국에 오면 체류 기간 동안 항상 같은 호텔에 머무른다고 했었어요!”

동생분이 피해 당사자보다 너무 잘 알고 있어서 어떻게 잘 아는지 궁금했습니다.

“그걸 어떻게 아세요?”

“집에 가면 하루 종일 그 새끼가 보낸 메일 하고 문자내역 들여다보면서 시간 순서대로 정리하고 있는 중이거든요.”

사실 저는 피해자분이 출력한 메일 내용을 제대로 읽어보지도 않았는데 자매분은 하나하나 매일 내용과 보낸 날짜 그리고 문자내역을 조합해서 어떤 단서들이 있는지 정리를 해 저에게 알려주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그 새끼가 원래 저희하고 만나기로 한날 그 뒤로 한국으로 몰래 왔을 수도 있고 아니면 한국에 오면 오랫동안 머물렀던 호텔을 찾아가서 이 사람에 대한 정보를 알려주면 투숙객 정보 같은 걸 알 수 있지 않을까요?”

호텔에 함께 가 보자는 말이었습니다.

“어느 호텔이라고 하던가요?”

“파주 프로방스 부근에 있던 M000 호텔이라고 했습니다.”

바로 인터넷 검색을 해보니깐 호텔은 나오지 않았습니다.

혹시 몰라 알파벳 철자를 이리저리 조합해서 바꿔보니 같은 단어가 하나 더 들어간 M0000호텔이 검색되었습니다.

“여기 하나 있기는 있는데 그 사람에 대한 정보가 정확한 게 없는데 물어봐도 알기는 어려울 것 같습니다.”

“그래도 같이 한번 가봐요!!!”

3명이서 모여서 수사회의만 벌써 2 시간 넘게 하다가 팀장과 수사과장에게 보고하고 자매분을 데리고 파주로 출발하였습니다.

“팀장님! 피해자분들이 알고 있는 단서가 있다고 하니깐 탐문 좀 다녀오겠습니다!”

“그래, 알아서 하고 너무 무리하지 마, 잡기도 힘들건데

그냥 친절하게나 해줘!”

팀장님은 이 사건을 전적으로 저보고 책임지고 알아서 마무리하라고 했기 때문에 사건의 책임자이자 지휘권자는 저 혼자였습니다.


파주에 도착해 호텔로 무작정 들어갔습니다.

두 자매분은 호텔 로비에 앉아 있도록 하고 경찰 신분증을 프런트 데스크 직원에게 제시하면서 상황을 설명하였습니다.

2012년에 여기서 1달 동안 머물렀었고 가족관계는 어떻게 되고 사진도 보여주면서 혹시 2014.10.15자 투숙하고 있는 고객이 있는지를 확인해 줄 수 있는지 부탁하였습니다.

사실 이 모든 정보는 범죄자가 피해자에게 거짓으로 알려준 정보들로 당연히 있을 리 없지만 그래도 두 자매분이 오랫동안 고민한 수사의 단서를 그냥 무시할 수는 없었습니다.

“확인이 안 되는데요!”

“비슷한 명단의 투숙객은 없는가요?”

“죄송합니다. 고객 정보는 더 알려드리기가 어렵습니다.”

당연히 압수수색 검증영장도 없이 무작정 들어왔으니 정보 확보가 안되고 더군다나 형사 한 명이 두 명의 중년 여성분과 밀고 들어와서 투숙객을 확인해 달라고 하니 많이 당황한 것 같았습니다.

아무런 단서도 없이 늦은 저녁시간 무인텔 거리를 두 자매 분과 비집고 다녔습니다. 출처:구글 이미지 검색

“형사님 그리고 호텔에 머무르면서 가족들과 프로방스에 자주 가는 단골집이 있다고 했어요!”

“어딘데요?”

“000 빵집이요!”

집사람하고 연애할 때 자주 들렀던 유명한 빵집이어서 잘 알고 있었습니다.

“여기서 얼마 안 떨어져 있으니깐 들렀다 가시죠!”

차로 곧바로 이동해 들렀지만 역시 아무것도 확인할 수 없었습니다.

두분도 저에게 미안했는지 죄송하다는 말만 하고 다시 돌아가자고 하셨습니다.

“시간도 저녁 9시인데 밥이나 먹고 들어갑시다!”

파주 프로방스 입구에 있던 한옥 건물 해물탕집에 들어가서 저녁을 먹고 사무실로 돌아오니 한참 늦은 저녁이었습니다.

돌아오는 차 안에서 수사 진행 상황을 알려 주었습니다.

“일단 제가 제일 먼저 범죄자가 취업 사이트에 등록한 이메일 주소를 압수수색영장을 받아서 어떤 단서들이 나오는지 확인해 보도록 할게요! 3주 정도 걸릴 건데 그동안 생각나는 거 있으면 말해 주는 건 좋지만 오늘처럼 모든 정보를 맹신하면 수사 속도가 늘어지니깐 이제부터 조금씩 제가 걸러 내도록 하겠습니다.”


다음날 출근해서 본격적으로 범죄자가 사용한 이메일 주소에 대해 파 해쳐 보기로 수사 방향을 정했습니다.

“박 형사님 오늘도 수사 지휘하는 분 두 분 사무실로 안 와요?”

옆에 경제팀 사무실 직원들이 저에게 웃으면서 물어보았습니다.

당분간 수사에 집중한다고 해서 오지 말라고 당부해 뒀다고 하니깐 경제팀 직원들이 전부 저를 걱정하면서 한마디 했습니다.

“그분들이 올 때마다 박형사 님은 업무수첩에 뭘 열심히 받아 적으시던데 수사과장이 한 명 더 있는 것 같던데요!”

그분들만 오면 저는 업무 수첩을 꺼내서 뭘 그렇게 받아 적었는지 모르겠습니다.

솔직히 전체 업무 회의할 때 수첩에 과장의 지시사항은 단 한 번도 받아 적은 적이 없습니다.

‘음주 운전하지 말자!’

‘사건 빨리 빼자!’

다 고만고만한 말 밖에 없어 업무 수첩은 전부 낚서밖에 없었는데 이분들하고는 진짜 회의다운 회의를 했던 것 같습니다.

처음에는 뭔가 생각날 때마다 사무실로 방문해 확인해 달라는 요구를 하나하나 들어주고 있으니 옆에 경제팀 사무실 직원분들은 그런 제가 안쓰러워 보였다고 했습니다.

"이거 확인해 봤어요? 00 고등학교 출신일 것 같은데 여기 학교에다가 확인해 봐야 하는 것 아닌가요?”

이분들이 올 때마다 수사지휘를 많이 가져다주면 저는 그때그때마다 확인해 줘야 하는 상황이었지만 어느 순간 저도 지시를 따르고 있었습니다.

“춤추는 대수사선”

제가 좋아했던 영화 속 인물과 정말 같아 보였습니다.


자매분들은 나름대로 열심히 수사를 하는 걸로 하고 저는 수사 방향을 다시 정하기로 했습니다.

지금 유일하게 제대로 된 단서는 이메일 주소밖에 없기 때문에 범죄자가 사용한 이메일 주소에 대해서 3년 치 내용을 들여다보기로 했습니다.

본격적으로 압수수색 검증영장을 신청하기 위해 서류 작업에 돌입하기 시작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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