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격적인 수사 대신 상담

사건 충격으로 기억을 못 해내는 피해자의 삶에 한 발짝 들어가 보았습니다

by 박중현

사건 관련자들 중 특히 피해자들과의 면담이나 조사 후 이상 증세를 보이면 저는 마음이 많이 조급 해지는 경향이 있습니다.

사이버범죄 수사팀에 근무하기 전 잠시 근무했던 부서에서 저와 상담했던 분이 며칠 뒤 생을 마감한 적이 있어서 저에게는 아직도 가슴 한 곳에 상처로 남아있습니다.

2017년 - 2019년 동료들 대상으로 사이버범죄 예방 교육의 필요성을 강의할 때 항상 사용하던 슬라이드. 출처:박중현


간혹 피해자와의 상담이 불안하다고 생각되면 신경이 날카로워지고 집에서 가족들에게 화를 냈던 적도 있었습니다.

지금은 근무 경험이 오래돼서 그런지 감정이 완전히 무뎌져서 그런지 몰라도 많이 나아졌지만 그때의 상처는 평생 갈 것 같습니다.


사건 접수 첫날 제대로 된 고소인의 진술은 받을 수가 없었습니다.

직접적인 피해를 당한 당사자와는 정상적인 의사소통이 불가능했고 동생분은 참고인 자격으로만 조사를 할 수밖에 없어 며칠 뒤에 다시 조사를 하기로 약속을 잡았습니다.

몇 장 안 되는 고소장과 해외 송금 거래내역서 그리고 앞 뒤 내용이 전혀 이해가 안 되는 이메일 출력물을 접수한 채 두 분은 사무실을 나갔습니다.

‘울 아버지….. 오늘은 아버지가 생각이 많이 난다. 내가 열 살 때인 것 같다. 아버지 이게 모야?…'

처음 보면 연애편지인 것 같기도 한 피해자가 출력해 온 이메일 내용은 추가로 별도의 파일로도 가져왔지만 보고 싶지 않았고 접수한 서류 그대로 제 서류함에 집어넣어 버렸습니다.

‘접수 당일날 어느 부서에서 처리할지 확실히 교통정리를 하지 않으면 더 이상 인계하기도 어려운데, 사이버 사건인 것 같기도 하고 아닌 것 같기도 하고 보이스 피싱 범죄인 것 같기도 하고…'

머릿속이 복잡해졌습니다.

그런데 피해 금액이 너무 크다 보니 혹시 두 분이 경찰서를 나간 날 잘못되기라도 한다면 모든 책임은 담당자에게 돌아오게 되는데 혹시 몰라 명함을 건네주고 조그만 단서라도 떠오르면 전화를 달라고 했습니다.

자매분이 경찰서를 나간 뒤 몇 시간 있다 제 휴대전화를 확인해 보니 카카오톡 친구 목록에 피해자분의 카카오톡이 추가되어 있었습니다.

담당자의 휴대전화를 카카오톡 친구로 등록했다는 말은 앞으로 의문점이 생기면 사무실 전화를 거치지 않고 곧바로 담당자와 연락을 취하겠다는 의사이기 때문에 조금은 안심했습니다.

본격적으로 조사를 시작하기로 약속한 날 자매분은 오전 일찍 경찰서를 방문하였습니다.

“사건에 대해 조금 기억해 낼 수 있겠어요?”

피해자분은 2014. 04. 04.부터 2014.10.15. 까지 7개월 동안 피해를 당한 상황이라 그 누구보다 생생히 기억해 낼 수 있을 거라 생각했는데 기억이 돌아오지 않았습니다.

인터넷 구인구직 사이트에서 해외 취업 구인 정보를 보고 이메일로 지원했다가 오랫동안 사기를 당한 사건을 시작하면서 구인 구직 사이트 플랫폼의 문제점도 눈에 들어오기 시작했습니다.


의료인들 전문 커뮤니티 메0000, 요식업계 종사자들 전문 구인구직 사이트 요0000. 푸000 등 특정 직업군을 타겟으로 한 커뮤니티 사이트 등이 인기를 얻고 있으며 특정 직업군의 커뮤니티 내에서 범죄가 발생하고 있었습니다. 직거래 사기 사건이 가장 많이 발생하는 네이버 ‘중고나라’ 같은 경우도 네이버 측은 직거래 활성화를 위한 공간만을 마련할 뿐 사기를 방지해야 할 최소한의 조치만 취한다면 사회적 책임이나 사용자들의 비난을 피할 수 있기 때문에 특정 직업군의 커뮤니티 내에서도 마찬가지로 등록된 정보들의 진위 여부를 일일이 확인해야 될 의무는 없습니다.

2019년 알바몬과 알바천국 사이트에서 도박사이트 운영자들이 대포통장과 대포폰을 확보하기 위해 ‘아이템 매니아.아이템 베이’로부터 하청을 받은 회사임을 주장하는 허위의 법인으로 구인 구직 정보를 등록 후 알바 자리를 알아보기 위해 연락 온 대학생들 대상으로 정식 사원으로 등록하기 위해 필요한 사원증 발급과 급여 통장 등록이라는 이유로 신분증과 통장을 넘겨받는 대포통장 모집이 계속 증가하였습니다.

마찬가지로 알바몬과 알바천국도 ‘대포통장 사기를 조심하세요’라는 공지사항을 띄우는 최소한의 조치만 이루어지면 되고 사실상 매일 등록되는 많은 데이터를 일일이 검증하기란 사실상 불가능에 가깝습니다.

하지만 사용자들의 입장에선 브랜드 평판을 전적으로 신뢰하는 상태에서 등록된 구인 구직 정보도 마찬가지로 신뢰하게 되어 있습니다.

구인 구직 사이트에 취업을 빙자한 대포통장 모집 사기가 꾸준히 증가하고 있습니다. 출처:구글 이미지 검색


해외취업 전문 사이트에 등록된 구인. 구직정보를 관리하는 취업 담당 매니저에게 이메일을 보내자 같이 일해보지 않겠냐는 회신을 받은 뒤부터 7개월이란 시간 동안 범죄자가 전달해주는 정보를 그대로 믿고 범죄자가 만들어낸 허구의 인물을 철저하게 신뢰하고 있었던 것입니다.

“보이스 피싱당한 겁니다. 현실로 어서 돌아오세요!”

피해자분에게 알아듣기 쉽게 설명을 해야 할 것 같아서 단도직입적으로 잘라 말했습니다.

“그리고 이메일 내용에 나와 있는 이름과 정보들은 가짜입니다. 여기에 사실인 건 단 하나도 없습니다. 7개월 동안 범죄자가 만들어낸 사람하고 서로 주고받은 겁니다!”

확실히 현실을 받아 들일수 있도록 짧은 형사 경력이지만 그동안 만났던 범죄자들 얘기를 풀어내며 정상적인 의사소통이 되어야 사건에 집중할 수 있다고 강조하였습니다.

“저도 사기인지 의심했지만 중간에 들어간 돈이 너무 크다 보니 뒤로 돌아갈 수도 없고 해서 계속해서 돈을 송금했던 것 같습니다.”

조금씩 말문을 여는 것 같았습니다.

“이제 조금씩 현실로 돌아오시는 것 같네요!”

“7개월 동안 믿고 있던 그 사람의 이름과 가족관계 그리고 보내온 사진 등은 모두 가짜입니다. 여기에 사로 잡히시면 안 됩니다.”

현실을 조금씩 받아들이기는 했지만 7개월 동안 당한 피해의 기억을 처음부터 회상하며 사건을 시작해야 할지 필요한 서류를 중심으로 기억을 거슬러 올라가야 할지 수사 방향을 잡지 못했습니다.

피해자 분도 사고의 충격으로 기억들이 단편적으로 돌아왔다 범죄자가 만들어낸 인물이 해외로 떠나기 전 한국에 머물렀을 때의 과거 행적이 뒤섞여 버렸습니다.


심리학을 전공하지는 않았지만 피해자로부터 기억을 꺼내기 위해서는 당신의 얘기를 들어야 할 것 같아 피해자의 삶에 한 발짝 들어가기로 했습니다.

“그동안 어떤 삶을 살아왔는지 말해 줄 수 있나요?”

본격적으로 조사를 시작하기로 예정된 두 번째 만남부터 거의 한 달간은 피해자분의 인생에 들어가 살아온 날들을 함께 공유했습니다.

왜 국내에서는 취업을 할 수 없고 해외에서만 근무를 해야 하는지 그리고 오랜 기간 동안 동생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왜 돈을 송금할 수밖에 없었는지 피해자의 시각에서 사건을 바라보면서 제출한 서류들을 보니 이해가 되기 시작하였습니다.

한 달 동안 상담 아닌 상담을 하면서 기초 조사도 마무리했지만 사건을 시작할 포인트를 잡지를 못했습니다.

‘어디서부터 시작해야 범죄자를 특정할 수 있을까?’

그렇게 2 달이라는 시간이 흘러 버렸고 겨우 기초조사만 마친 상태였습니다.

중요한 건 자매분이 경찰서를 방문할 때 고소장으로 작성해 경찰서를 방문했고 제가 그 고소장을 넘겨받아 시스템에 입력하는 바람에 고소사건이 돼 버렸습니다.

고소사건은 3개월 안에 마무리해야 하고 연장하려면 수사과장 지휘와 검사 지휘를 받아야만 합니다.

그런데 언제부터인가 이 사건은 다른 사무실로 인계되지 않았고 제 사건 시스템에 등록되면서 하나씩 하나씩 수사보고서가 작성되어 있었습니다.

오로지 제가 마무리해야 될 사건이 되어 버렸습니다.


“제가 수사 방향을 잡게 되면 다시 만나도록 하고 혹시라도 조그만 단서라도 생각나면 언제든지 저한테 연락 주세요!”

사실 이 말에는 퇴근 시간 이후에는 어지간하면 연락하지 말자라는 의미도 포함되어 있지만 그래도 혹시 피해자분이 잘못된 생각을 하면 안 되기 때문에 퇴근 시간 이후에도 연락을 해도 된다고 알려주었습니다.


현실로 돌아온 피해자분은 항상 겸손했고 늘 밝은 얼굴로 사무실에 들어왔습니다.

그리고 퇴근 시간 이후에도 조금씩 생각나는 게 있으면 저에게 카톡으로 문자를 보내기 시작했고 그 횟수가 조금씩 늘어났습니다.

‘형사님 지금 생각난 건데, 그 사람이 한국에 오게 되면 00호텔에 자주 머무른다고 했어요!’

단편적으로 깨어진 기억들을 필사적으로 꺼내면서 7개월이란 시간과 함께 조합해내고 있었습니다.

‘네 이렇게 하시면 됩니다. 잘하고 있어요!’

나중에는 피해자분이 일기를 쓰듯이 거의 매일 문자를 보내왔고 조금 부담스러워지기 시작했습니다.

한 번은 다른 사건 때문에 외근을 나가 있는데 사무실에서 전화가 왔습니다.

“박형사 님 그 피해자분 오신 것 같은데요?”

저에게 하고 싶은 말이 있으면 지나가다가도 사무실에 들리고 아니면 일부러라도 사무실을 찾아오기 시작했습니다.

그러던 중 다른 사건 관계자분을 조사하고 있는데 사무실 문을 열고 피해자분이 들어오셨습니다.

워낙 익숙한 상황이라 조금만 기다려달라고 양해를 구하고 조사를 마친뒤에 들어오도록 하였습니다.

“네 뭐가 떠오르는 게 있던가요?”

“예”

그러면서 주머니에서 포스트잇 메모지를 여러 장 꺼내서 저에게 건네주었습니다.

“그동안 생각난걸 제가 정리해 보았습니다.”

“그래요 이제 완전히 기억이 돌아온 것 같습니다!”

그리고 그 메모지를 사무실 벽에 붙여 보았습니다.

이 상황이 무슨 영화 속 장면과 순간 오버랩되었습니다.

영화 메멘토.

하지만 저 피해자가 오랫동안 끄집어낸 저 기억의 단서들 중 과연 내가 신뢰할만한 단서는 몇 개일까?

현실로 돌아온 건 좋은데 저는 가슴이 답답하기만 했습니다.

(좌측)메멘토 영화 포스터. (우측)피해자분이 저에게 건네준 기억의 조각들을 기록한 메모지. 출처:박중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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