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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봄봄 Aug 18. 2024

아들의 유튜브와 나의 인스타

[보기, 쓰기, 읽기, 생각하기, 말하기]의 밸런스 맞추기 

1. 아들 이야기


선호가 유튜브를 완전히 끊었다. 만 3세 아이에게 끊었다는 표현이 적절한지는 모르겠으나, 어쨌든 모바일로도 TV로도 더 이상 유튜브를 보지 않게 되었다. 이제 이 아이가 보는 집에서 보는 미디어라고는 EBS 정규 방송에서 하는 주말 아침 딩동댕유치원과 슈퍼윙스 정도다. 


선호를 어린 시절부터 봐온 이모삼촌들은 아이의 변화를 신기해한다. 아이는 두 돌 즈음부터 손가락으로 유튜브 조작을 능숙하게 하는 헤비 유튜브 시청자였다. 매장을 운영한다는 핑계로, 선호가 좋아한다는 구실로, 시대의 흐름이라는 이유로, 아이 손에는 늘 핸드폰이 쥐어져 있었다. 알파벳도 영어단어도 전부 유튜브로 배운 선호였다. 여전히 나는 지금도 아이들의 미디어 시청을 찬성하는 쪽이다. 


그러던 우리 가족의 기조가 달라진 건, 용인으로 이사 오고 나서부터였다. 이사로 극심한 스트레스를 받던 선호가 여러 가지 이상 징후를 보였었다. 생전 처음 의기소침해진 선호의 모습을 보니 생각이 많아졌다. '36개월 동안 내가 정말 엄마의 모습으로 선호 옆에 있었는가'의 질문을 스스로에게 던졌다. 아니었다. 선호 눈을 더 많이 마주치고 대화해야겠다는 생각을 처음으로 했다. 


올해 1월, 우리는 더 이상 아이에게 폰을 건네지 않았다. 엄마 아빠 핸드폰이 고장 나서 유튜브가 안 나온다는 거짓말을 선호는 바로 믿고 수긍했다. 신기했다. 이제 식당에서 밥 먹을 때도, 카페에 가서 커피를 마실 때도 아이는 더 이상 핸드폰을 찾지 않는다. 


모바일은 끊었어도 TV로 보는 유튜브는 허용했었다. 남편의 출장 부재에 내가 가장 쉽게 육아를 헤쳐나갈 수 있는 방법은 TV였으니까. 나도 살 구석은 있어야지 않겠냐며 합리화했다. 그러던 어느 날, 선호가 TV 볼 때 손을 물어뜯는다는 걸 알아차렸다. 선호의 손톱 무는 버릇은 용인으로 이사 온 후 시작된 행동이었는데 웬걸, 영상 볼 때만 무는 거였다. 


결국 또 나는 하얀 거짓말을 했다. "선호야, 급기야는 TV 유튜브도 고장이 났어. 아빠 오시면 고쳐달라고 하자." 선호는 슬퍼했지만 이 또한 바로 받아들인 눈치였다. 선호 덕분에 나 역시도 TV 유튜브와 작별했다. TV 말고 스피커로 음악을 들으며 사는 선호와 나의 라이프가 벌써 두 달째다. 


놀랍게도 아이는 이제 전혀 손톱을 물지 않는다. 아이는 미디어로 채워졌던 시간에 다른 여러     활동을 한다. 요즘 꽂혀 있는 건 가위질로 동물 만들기와 미로 탈출. 그리고 엄마 눈을 바라보며 대화하는 시간이 매우 많이 길어졌다.




2. 나의 이야기


일련의 이 과정을 겪으며 놀라웠던 건, 선호가 힘들지 않게 유튜브를 끊었다는 사실이다. 울고불고할 법도 하고, 고장이 아니지 않냐며 우길 법도 한데, 별 저항 없이 미디어를 끊었다. 나조차도 신기했다. 할머니 할아버지 핸드폰으로 유튜브 틀어달라고 한 일도 전혀 없었다. 심지어 비행기 안에서도 더 이상 유튜브를 찾지 않는다. 


부끄럽지만, 아이가 세상에 태어나 가장 많이 한 특정 행위가 유튜브 시청이었으니 아이 입장에서는 끊는 과정이 힘들었을 텐데 선호는 잘 따라와 줬다. 이 포인트에서 난 약간의 부끄러운 감정을 느꼈다. 이 작은 인간도 이렇게 하고 있는데, 나는 뭐 하는 건가. 




그래서 나도 내 아이에게 영감을 받아 내 삶의 밸런스를 다시 맞춰보기로 했다. 





'보기-읽기-쓰기-생각하기-말하기'의 밸런스. 


▶ 보기: 줄이자. 

유튜브 시청은 아이 덕에 많이 줄었다. 인스타랑 의미 없는 폰 서핑을 줄여보자.


▶ 읽기: 유지하자. 

요즘은 1권 완독이 아닌 여러 권 병렬 독서를 한다. 이에 알 수 없는 죄책감 같은 게 있었는데 이 또한 완벽주의의 잔재라 생각하고, 편한 대로 하자.


▶ 쓰기: 늘리자. 

주 1편은 쓰는 게 목표였는데, 터무니없이 안 하네. 좀 더 늘려보자.


▶ 생각하기: 줄이자. 

굳이 나누자면 건강한 생각은 늘리고, 비건전한 생각은 줄이자.


▶ 말하기: 늘리자.

I형 주부에 베프 출장으로 말할 일이 많이 없다. 난 말 잘하는 사람에 대한 로망이 있는데.. 긴 말을 할 수 있는 상황을 만들자.






나 스스로가 더 멋진 사람이 되고 싶다는 생각을 늘 품고 사는 나에게, 이번 아들의 유튜브 중단 사건은 자극이 되었다. 이제 곧 네 돌이 되는 아들이 서른일곱 살인 나에게 큰 가르침을 준다. 



늘 하던 잠자리 기도를 아이에게 하라 했더니 한참을 빼더니 속삭인다.

"하나님, 우리 가족 축복해요. 밥 잘 먹게 해 주시고 건강하게 해 주세요. 아멘"


내가 아는 것보다 아이에게 더 큰 잠재력이 있으니 그저 믿으라는 말을 다시 새긴다. 정말 고마운 존재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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