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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봄꽃 Jul 12. 2023

오지라퍼 복숭아 배달부  

봄꽃 복숭아입니다

같은 아파트에서 오래 알고 지내는 언니와 모처럼 벤치에 앉아 담소를 나눴다. 이런저런 이야기 중 갑자기 발아래로 강아지 한 마리가 지나갔다. 같은 아파트 주민 아주머니가 키우는 애완견인 듯싶었는데 몸집이 작아서인지(몸집이 작아도 나는 강아지가 무섭다) 목줄 없이(목줄이 없어서인지 자유로워 보였다) 토실한 엉덩이를 흔들며 주인 뒤를 따라가고 있었다.

평소 강아지를 무서워하는 나지만 그 모습이 참 귀여워 “산책 나와서 신나는구나?”라고 귀여운 마음을 표현해 버렸다. 내 말을 듣기라도 했다는 듯 강아지는 먼저 말 걸어준 내가 반가운지 가던 길을 멈추고 우리 쪽으로 방향을 틀었다. 나보다 더 강아지를 무서워하는 언니는 그 모습을 보고는 이제 하다 하다 강아지한테까지 인사를 하냐며 싫지 않은 핀잔을 줬다.




그렇다. 나는 언니의 핀잔을 들어도 싼 오지라퍼다. 요구르트를 사면서도 처음 보는 요구르트 판매원분과 이런저런 이야기를 한다. 처방전을 받아 들고 약국으로 가는 길에 입구에서 문이 무거워 누가 먼저 열어주기만 기다리는 할머니를 보고는 뛰어가서 문을 열어 드리며 먼저 들어가시라고 한다. 물론 이분도 처음 보는 어르신이다.  1학년 아들을 등교시키고 돌아오는 길에는 아는 아이들에게 잘 다녀오라는 인사하기 바쁘다. 누가 누군지 거짓말 조금 보태서 거의 다 알겠다. 한번 보고도 얼굴과 이름을 잘 기억하는 능력에 감사할 따름이다. 남편은 나보고 참 피곤하겠다고 하지만 나는 몇 번을 봐도 사람 기억 못 하는 남편의 삶이 더 피곤할 듯하다.




지난 브런치 글에서 소개했듯 나는 청년농부의 아내다.

청년농부는 10년째 1만 평이 넘는 땅에서 하루에 400박스씩 복숭아를 따낸다. 농사가 좋아 농부를 제2의 직업으로 선택한 남편이다. 복숭아를 ‘파는 것’ 보다 ‘키우는 것’에 무게를 둔 사람이기에 또 다행스럽게도 감사하게도 수량과 품질에서 합격점을 받은 터라 수확량 모두 농협과 탄탄한 거래가 되는 안정적인 시스템 안에서 농사에만 집중하며 일해 왔고 지금도 그렇다. 그동안 지인들의 개별 주문은 바쁜 일정 안에서도 소화해 왔는데 올해 처음 얼굴도 모르는 분들에게 복숭아 주문을 받는 조그만 기적이 내게 일어났다.

‘내 남편은 청년농부’라는 지난 브런치 글을 보고 동기 작가님이 혹시 복숭아 주문할 수 없냐고 정말 진지하게 물어보셨다. 처음에는 괜한 부담을 드리는 것 같고 이건 아닌 것 같아 답을 드리는데 얼마나 고민을 했는지 모른다. 다시 물었을 때 작가님의 진심 어린 답변이 내 안의 용기를 끌어내버렸다. 작가님의 주문을 시작으로 다른 분들의 감사한 주문이 이어졌고 정말 달콤한 후기들을 내게 마구 보내주시는 게 아닌가. 그러다 그 응원들이 모여 결국 나는 ‘봄꽃복숭아’라는 이름을 걸고 네이버 스토어를 열었다.




지금까지 살면서 기쁨보단 슬픔이, 희망보다는 걱정이 편한 내게 이 모든 상황이 아직도 꿈만 같다.

청년농부남편 덕분에 사람한테 관심 많은 오지라퍼 아내는 올해도 여기저기 행복한 복숭아 배달을 한다. 언제나 힘이 되어주는 수이언니네, 큰아이 네 살 때부터 알고 지내온 지영이네, (언니는 우리 규모를 잘 모르고 늘 자기 주지 말고 한 상자라도 더 팔라고 한다) 그저 감사한 위아래 집, 딸하고 매일 사이좋게 등교하는 고마운 친구 현주네, 아들친구 엄마한테서 친정엄마가 아프시다는 말을 듣고 복숭아라도 한입 잡수시면 나을까 해서 그 집에도 오지랖 한 상자를 전했다.

모든 품종 수확이 마무리되는 8월까지 오지라퍼 복숭아 배달부는 올해도 바쁠 것 같다. 얼마 전 오픈한 봄꽃복숭아 스토어 덕분에 이제는 온라인으로도 오지랖을 부릴 수 있어 순간순간 마음이 몽글몽글해진다. 스토어 오픈 전에는 일대일로 카톡 주문을 받으며 한 분 한분 알아가는 일이 얼마나 행복했는지 모른다.




사실 내 삶은 왜 이리 고달플까 하며 힘겨운 시간들을 눈물로 씻어내곤 했었다. 내가 비를 몰고 다니는 먹구름 같았다. 그래서 이렇게도 세찬비가 내리고 또 내리나 싶었었다.  그 가운데 사람이 무서웠고 오지라퍼답지 않게 사람을 피하고 싶었다.

견디다 보니 내게도 우산 같은 존재들이 나타나기 시작했다. 미약한 글 솜씨로나마 이 공간을 빌어 뜨거운 감사를 전한다.

존경하는 이은경 선생님, 동행하는 얘들아 동기들, 그리고 청년농부 부부라는 이유만으로 오히려 내 허락도 안 받고 인스타에 소개했다고 양해를 구하신 홍현주 박사님.

진심으로 감사합니다.

오지라퍼 봄꽃복숭아 배달부 힘차게 달리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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