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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말하는양 Jan 04. 2024

지방의료, 필수의료는 왜 맨날 모자라기만 할까?

어쩔 수 없는 인간의 기본심리 

이런 주제는 내부 사정을 잘 알고, 개원가에도 몸담고 심지어 개원도 했었으며, 봉직의로 근무중이고, 그러나 언제든 의료 근로시장이 열악해지면 떠날 준비 중인 나같은 사람이 말하는 것이 가장 적합할 거라는 생각이 들어서 논란이 될 것을 뻔히 알면서 글을 쓰기로 했다. 


일단, 이때껏 당했던 수많은 공격들을 참조하여 [쉐도우복싱-방어편]부터 시작해야겠다. 


1. 나는 문재인케어에 전면반대하지 않았다. 

2. 나는 미용의학도 하기는 했지만, 최대 6시간씩 오버타임을 해 가며 코로나 재택치료 전담의 + 생활치료소 의사로서도 근무했다. 

3. 나는 AI가 1차진료의사를 대체하는 것에 절대찬성하는 쪽이며, 법제개선도 요구하는 쪽이다. 

4. 나는 의협 입장에 찬성한 적이 거의 한 번도 없다. 의대증원 결사반대를 한 적도 없다.  

5. 나는 현재 정치적으로 철새이며, 오직 발의하는 법안 등을 보고 '내가 아는 분야'로만 평가한다. 내 타 사이트 글에 안보 어쩌고 하면서 달려드는 분들이 있었는데, 그건 여자이면서 자원입대한 적도 없고 밀덕은 커녕 일반적 관심도도 높지 않은 나같은 면제자가 진지하게 평가하는 것보다 그냥 전문가가 의견을 밝히는 쪽이 나을 것 같다. 나는 정의당 당원이었던 적도, 민주당 지지자였던 적도 있으며 국힘(새누리, 한나라 뭐든 간에)을 지지한 적도 있다. 



우선 양쪽 다 합의해야 하는 사항들을 적어 보고자 한다. 

당연히 각 항목당 여러 사족들이 있을 거고 그 사족들도 다 중요할 수 있다. 

하지만 그 얘기까지 다 하면 2025년이 될 것 같으니 간단하게 적어 보자. 


1. 의료기관의 규모와 종을 따지지 않는다면, 대한민국에서 의료기관을 못 찾을 정도의 산간오지는 별로 없다. (울릉도에도 의원이 1개, 한의원이 2개, 치과가 1개 있다) 또한, 의료접근성 자체는 상당히 좋은 편이고, 전면 무상의료를 실시하는 나라나 사회주의적 복지국가(영국 등)에서보다 경미한 증상으로 진료받는 환자수가 상당히 많다. 

2. 의료기관에는 최소유지비가 있으며, 기계(간단한 x-ray 장치나 위내시경 장비라도)와 필요 인력(방사선사, 어시 간호사 등)이 있는 경우 손익분기를 넘어서면 벌어들이는 비용도 많지만, 대신 손익분기를 못 넘기면 적자규모도 크다.  

3. 봉직의로서 취직에 성공한 의사(+잘 잘리지 않고 안정적인 매출을 내며 근태가 좋고 임신, 출산 등이 문제가 되지 않는 경우)와 개원의로서 망하지 않은 의사(대출 때문에 하는 수 없이 무임금 노동 중인 경우가 아니라, 손익분기를 넘겨서 봉직보다 낫다고 생각하여 폐업하지 않은 경우)는 돈을 많이 번다. 또한, 봉직의로서 성공적이지 못하여 자주 잘리고 간신히 취업하는 의사 대한민국 회사원 평균 월급보다 많이 번다

4. 의료 수가는 흑자인 경우도 있지만 드물게 적자인 경우가 존재하며, 전반적으로 OECD 평균 진료수를 맞추기 위해서 낮은 것은 사실이다. 



서론이 길었지만 사실 여기까지 정리하면 답이 상당히 명확한 문제다. 

여러 이데올로기와 프로파간다와 수많은 어렵고 복잡한 근거들이 있지만 답은 하나다. 


지방의료와 필수의료가 유지가 안된다는 거다. 

돈이 덜된다거나, 원래는 돈을 많이 버는 직업인데 살짝 덜 번다는 뜻이 아니다. 

그냥 유지가 되는 규모가 안나온다. 


손익분기점을 넘길 수 없는 구조라는 것이다.


 사람들은 흔히 월 몇 천을 줘도 지방엔 안 간다더라, 그냥 의사들이 지방에 있기 싫은가 보다 얘기하는 경우가 있지만, 의사라고 엄청난 재벌들도 아니고 어떻게 지방이라고 무조건 안 갈 수가 있겠는가? 의사야말로 40대에 결혼하는 경우가 비일비재하고 독신이거나 아이가 없을 때라면 반짝 돈을 벌고 싶은 생각이 없을 리가 없는데 말이다. 졸업직후에는 학자금 대출만 수천씩 쌓여있는 경우도 많고 심지어 우리때 대학병원 인턴 월급은 백만원대(대신 비오프 일평균 근로시간 20~22시간이었으니 돈 쓸 시간이 없을 것 같긴 하다)였다. 더더군다나 지금은 서울에서 스킬없이 봉직의로 지원하면 10개쯤 쌓여있는 지원서 위에 올려놓고 가라고 하는 실정이다. 언론에서 보도하는 것만큼 아무 단점없이 그저 지방이기만 한 직장에 안 갈 리가 없다. 왜냐면 일단 나부터 갔을 테니까. 성남에 사는데도 나주, 전주, 보성 가리지 않고 몇 달씩 채용공고를 찾는 나같은 이들이 이미 선점해서 자리도 없었을 거다. 


  365일 당직같은 이상한 규정, 독박으로 뒤집어쓰고 환자 한 명만 (과실여부와 관계도 없이) 문제가 있어도 면허 반납하고 침몰해야 하는 괴이한 규칙, 수개월씩 연체되는 월급에 대해서는 말하는 이도 적고, 들어주는 이는 더욱 적다. 그래서 이 이외의 부분, 특히 '지방이라 안간다'는 이야기에만 사람들이 집중한다. 


 그런데 이런 것보다 훨씬 간단하고 중요한 문제가 있다. 지방에 필수의료를 보급하려면 최소한 망하지는 않아야 하고, 수요가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필수의료라고 흔히 말하는 과들은, 잘 보면 그냥 개원이 힘들고 소송이 잦은 과들이다. 많이 알려진 것처럼 무조건 수가가 낮고 페이가 낮은 과가 아니다. 수술과들은 적어도 내가 이제껏 받은 페이 중 가장 높은 것보다 더 높게 받는 것이 일반적이다(난 가정의학과니까..). 그런데도 배치표에서 가정의학과는 꽤 중요한 과들보다 위에 있다(그렇다. 지원과에 '배치표'가 있다. 안 그러면 다들 편하게 돈 많이 버는 과를 지원하겠지. ㅇㅇ과 전문의는 되고 싶으면 다 되는 건줄 아는 사람들이 많던데, TO가 있는데 당연히 성적이 중요하다). 왜냐면 리스크가 다르기 때문이다. 


 내가 최소개원을 한다면 나는 간호사 1명과 멸균기 한 대 정도, 그리고 건물에 유치할 보증금만 있으면 된다. 물론 그렇게 개원하면 망하겠지만, 어찌됐든 개원이 가능하기는 하다. 나가는 돈은 한 달에 간호(조무)사 월급과 월세, 차트사용료 2대(접수에도 깔아야 하니까), 주사기 세트와 약품료만 있으면 되겠다. 나와 간호사가 똑같이 최저임금을 받는다고 상정할 때 월 800만원만 매출을 내도 세금 내고 어떻게든 돌아갈 수도 있겠다. (물론 이런 말도 안되는 병원에 광고도 없이 매일 30명 이상씩이 와야 하는데 현실적으로 말이 안되기는 하다) 


 그런데 외과가 최소개원을 한다면, 아무리 최소여도 잘 돌아가는 멸균기, 많은 소독포, 소독약품, 주사제, 모니터링장비(수면마취 걸었는데 죽으면....), 수술실, 수술 어시스턴트, 자리 비울 동안 봐줄 간호사, 수술 중에 봐 줄 외래 봉직의, 프리랜서 마취과의사(보통 주 2일 이런식으로 오게 해서 몰아서 잡는다), 입원실, 병동간호사, 스테이션 총괄(차지/수)간호사, 여사님, 당직의 등등이 필요하다. 지금 의사만 넷 나왔다. 그리고 입원실 운영 규정을 지켜야 하고, 수술 전후 평가를 위한 영상장비가 있어야 한다. x-ray, 초음파, 외래 봉직의는 가급적 내과나 가정의학과로 뽑아서 심초음파도 시켜야겠고...(그런데 봉직의는 기본급+스킬값으로 매겨지니까, 심초음파를 할 줄 아는 의사는 더 비싸다)


 그런데 또 외과수가가 넉넉하진 않고 어시스턴트에 의사 하나만 들어가도 빡빡한 정도의 수가이기 때문에, 비급여를 좀 뽑아야 인당 의료비가 나올 거고, 거기다가 병원급을 개원했다면 금수저가 아닌 바에야 천문학적인 빚(지금은 검진내과 개원도 10억이 넘어가서 공동개원을 하니까)에 대한 이자를 내고 있을 것이다. 그리고 예전만큼 대출이 잘 나오지 않기 때문에, 공동개원에 금수저가 포함이 안 되어 있다면 3금융을 끼는 경우도 심심찮게 있다. 그렇다면 그 이자는........ 


 물론 그래도! 이 모든 악조건을 뚫고서라도 그냥 환자가 잘 오면 된다. 


 근데 여기에 인간의 기본심리는 하나도 계산이 안되어 있다. 


 보통 필수의료라고 하면 산과, 외과, 흉부외과 등이 아닌가? 그럼 이 환자들이 지역에서 모두 올 것인가? 

당장 필수의료, 지방의료에 대해 누구보다도 공감하고 있었을 정치인조차 피습당하자마자 권역응급센터를 버리고 헬기를 타고 서울로 가는 실정이다. 그것 자체는 탓하지 않는다. 누구나 그럴 거고 나도 그럴 테니까. 기왕이면 연고지에서, 기왕이면 서울에서, 기왕이면 내가 평소에 신뢰하던 병원에서 중요한 수술을 받고 싶은 것이 사람 마음이고 기본 심리이다. 간단한 유방암 1기 수술조차도 사람들은 지방에서 하려고를 하지 않는다. 그래도 암이라는데 기왕이면 아산에 가서 하는게, 서울대에서 하는게 좋지 않을까, 하는 게 사람 심리다. 그런데 누가 땅끝마을에서 심장수술을 받고 싶어하고 누가 소아선천기형수술을 경북에서 받고 싶어할까? 결국 환자가 오질 않는다. 수요가 없는 일에 공급을 하려고 하니 답이 강제 밖에 없다. 숫자를 늘려서 흉부외과를 10만명을 만들어도 적자가 나면 그 일을 누가 하려고 할까?  국가에서 지원해서 적자를 내서 병원을 세우고, 신규 배출된 의사는 무조건 흉부외과를 선택하게 해서 그 병원에 배치한다고 한들 해결되는 문제가 있을까? 이제까지 해왔던 행태를 보자면 분명 365일 24시간 배치인력으로 두고, 권역에서 30분 이상 떨어져서 환자까지 도달 시간이 한 번이라도 늦으면 해당 의사에게 병원 자체에서 소송을 걸 테고, 임금은 수 개월씩 체불될 것이다. 왜냐면 이제까지도 별반 다르지 않았으니까. 



 '적성'이라는 것을 폴리클리닉 전에 알기가 참 힘들다........ 


 어차피 다 같은 의사인데, 공부도 잘했겠다 아무데나 국가에서 강제로 배치하면 안되냐는 의견을 참 많이 들었다. 마치 군복무하듯이 보직을 나라에서 정해 주자는 것이다. 일견 참 그럴싸한데 문제는 이 세부직군에도 적성이 있다는 점을 간과했다는 거다. 


 내가 인턴을 하면서 느꼈던 건, 나는 수술을 하면 안되는 인간이라는 것이었다. 

 피가 무서워서? 그럴 리가. 그런 게 무서우면 애초에 본과 1학년도 넘길 수가 없다. 

 봉합을 못해서? 못하긴 했었지. 근데 그런 건 노력으로 얼마든지 극복이 가능하다. 

 죽음이 무섭고 심약해서? 내가 사망선고를 한 환자분들이 몇 명인지 처음에는 셌는데 너무 많아서 이제는 셀 수가 없다. 오죽하면 전공의논문도 안락사... 


 내 방향치가 무슨 수를 써도 고쳐지질 않아서였다. 길이 하나인 곳에서도 길을 잃는 길치인 거야 평생을 통해 알았지만, 설마 사람 몸 속에서도 길을 잃을 줄은 몰랐다. 해부 도면에는 정맥은 파랗고 동맥은 빨갛겠지만 사실 사람 열면 다 그냥 빨갛다. 여기도 빨갛고 저기도 빨갛고 분명 간은 분엽 구획이 딱딱 되어 있을 줄 알았는데 열면 그냥 순대 위에 있는 덩어리고. 아랫년차는 성격은 딱 일반외과였는데 왜 못했는고 하니 손떨림이 긴장을 풀면 잦아들 줄 알았는데, 그냥 본태성 떨림이고 봉합조차 거의 불가할 정도여서였다. 이상하게 특정과와 사람이 정말 안 맞는 경우가 있는데 머릿속으로 상상했던 것과 하도 달라서 수련까지 깨닫기도 힘들고 심지어 레지던트 2년차쯤에 중포하는 경우도 왕왕 있다. 그런데 경험해 보고 경쟁하고 재수, 삼수까지 하면서 맞는 과를 찾는 과정을 다 없애 버리면 수능점수 1등부터 죽 잘라서 무조건 이과계열로 보내자! 같은 결정이 될 수가 있는 것이다. 


+ 아무 잡설. 


다소 극단적인 의견이지만 

나는 의료 복지가 없는 수요를 창출하는 기형적인 방식으로 운영되고 있다고 생각한다. 

의료 수가가 높지도 않고 접근성이 낮지도 않고 망해가는 의원들도 있는데 잘되는 데마다 대기시간이 1~2시간씩 된다는 건, 사실상 많은 사람들이 의료쇼핑 중라는 이야기다. 

그렇다고 어떤 정치인이 나서서 보험료를 높이겠다고 할 수 있겠으며, 누가 나서서 수가 정상화를 위해서 이제부터 행위별수가를 1.5배씩 올리겠다고 말할 수 있으랴. 못하는 게 당연하고 내기 싫은 마음도 당연한 것이다. 


이번주에 콧물, 원래 있던 비염, 어제 아팠다 현재는 괜찮은 두통, 약은 먹기 싫지만 서류는 필요한 정도의 생리통으로 온 학생들이 몇 명인지를 모르겠다. 물론 그렇다고 꾀병이 틀림없다면서 몰아세울 수도 없다. 환자말은 일단은 믿는 게 원칙이니까. 그런데 한 학급당 2~3명이 이런 식으로 확인서를 떼어가면, 나라에서 지급하는 초진/재진진찰료는 만원이 넘는다. 수천억원의 세금이 이런 데에 쓰인다. 


병원 문턱이 나는 지나치게 낮다고 생각한다. 양쪽에서 모두 공격받을 것을 잘 안다. 하지만 까놓고 말해 보자. 의료진 수를 늘려서 다른 국가들처럼 천천히 진료를 봐도 되게 하려면 수가가 지금보다는 높아야 하는데, 수가가 높은데 n수가 같으면 보험료를 더 걷어야 한다. 


그렇다면 사실은 병원에 안 와도 되는 수많은 사람들을 오지 못하게 해야 하는 게 맞지 않을까. 


꼴랑 하루 약 먹고 어차피 일주일은 있어야 나을 감기, '명약'이 아니라고 오는 사람들, 원하는 항생제 '색깔'이 아니기 때문에 다시 타러 왔다는 사람들, '여행에 갈 상비약'이 필요하다는 사람들, '상사가 연차를 인정 안해 줘서' 진료확인서 하나 끊어주면 안되냐는 사람들, 이 사람들이 오지 못할 문턱이 있어야 하지 않을까. 의료보험이 커버해야 마땅한 건 커버가 잘 안되는데, 커버하지 않아도 될 곳은 너무 많이 커버하고 있다는 얘기다. 


이 말은 수많은 논란을 일으키겠지. 아무도 안 좋아할 말....

하지만 결국은 언젠가는 직시해야 할 사실이라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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