난 두 번을 호되게 물에 빠져봤다.
첫 번째 기억은 갓 초등학생 저학년을 벗어났을 무렵, 난 사촌 누나를 따라 풀장을 따라가는 것을 무척이나 좋아했다. 갓 물에 뜨는 법을 배웠던 나는 수경과 스노클을 물고 풀장을 한없이 누비며 의기양양했었다. 하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누군가의 발길에 차여 수경과 스노클이 벗겨지는 순간 멀어지는 의식 속에서 난 수영을 못한다는 것을 깨달았다.
인공호흡을 하는 구조요원과 나를 둘러싼 수많은 사람들, 그리고 안도하며 펑펑 우는 사촌 누나의 모습은 수십 년이 지난 지금도 뇌리에 박혀있다. 하지만 물에 대한 공포심을 느낄 새도 없이 마침 물에도 빠졌겠다 수영 하나는 가르쳐 놔야겠다는 어머니 탓에 꽤나 오래 수영 교습을 받아 수영하는 법은 배워두었다.
두 번째 기억은 20대 초반, 친구들과 7번 국도를 따라 동해로 놀러 갔을 때다. 난 한적한 해변에서 발이나 담그고 친구 둘이 수영 내기를 하는 것을 바라보고 있었다. 하지만 그렇게 물속을 들어간 두 친구 가운데 한 명이 너울이 있는 파도에 몇 번 얼굴을 파묻더니 물을 뱉으며 허우적거리기 시작했다.
황급히 뛰어들어 그 친구를 잡는 순간 허우적거리며 나를 올라타는 친구의 몸짓에 나도 휘말리고 말았다. 간신히 끌고 왔지만, 해변에 도착하기 직전 난 기운이 모두 빠져버렸다.
바로 머리 위에서 얄궂게도 맑게 부서지는 햇살을 보며 떠오르지 못하고 물속으로 점점 가라앉는 그 순간, 발이 땅에 닿았다. 고작 2미터 남짓한 수심이었고, 다리와 팔을 허우적거리며 단 몇 발자국을 앞으로 내딛는 것만으로 물 속에서 탈출할 수 있었다
밖에 나와 물을 토해내며 괴로워하는 나와 친구의 모습을 보곤 다른 친구들은 대수롭지 않게 놀려댔고, 특히 그 친구는 그 이후 아직까지도 나에게 '생명의 은인한테 그러는 것 아니야.'란 식의 넌더리가 날만큼 놀림을 받으며 그 날의 일은 술자리 에피소드가 되었다.
하지만 사실 그 날의 기억은 나와 친구에겐 트라우마로 남았고, 실제로도 친구는 그 이후에는 목욕할 때를 제외하면 단 한 번도 물에 들어가지 않았음을 고백했다.
어느새 물속에 들어갔다.
나도 마찬가지였다. 물이 무섭다는 생각을 해본 적은 없지만, 그 이후로 무의식 중에 난 키를 넘어가는 물속을 들어가 본 기억이 없다. 모두와 같이 물가를 가도 짐을 지키겠단 이유로 발만 담그고 사람 좋은 미소를 짓고 있었지만, 사실은 물이 두려웠던 것 같다.
하지만 우연한 기회에 스쿠버 다이빙을 배우게 되었다. 해양 다큐멘터리는 무척 좋아하지만, 나에게 수중은 TV 화면 속의 존재로 충분했다. 그 속에 직접 들어가 보고 싶다는 생각도 그 속에 내가 있을 거란 생각도 애초에 일절 해본 적이 없다.
하지만 술자리에서 얼큰하게 취해서 했던 약속은 다음날 정신을 차려보니 어느샌가 붙들려 물속에 들어가고 있었다.
잊었던 기억이 떠오르다.
무거운 장비를 메고 호흡기에 의지해 호흡하는 스쿠버 다이빙이 처음부터 매력적이었던 것은 아니다. 보글거리며 올라오는 소리 외에는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는 물속에서 난 기억 저편으로 사라졌다고 생각했던 물에 관한 두 기억이 떠올랐다. 그리고 물에 들어가는 매 순간마다 쓸데없는 걱정들은 날 따라다녔다
'혹시라도 이번에도 물에 빠지면 누가 날 구해주지?'
'만약에 물을 마시면 뭐부터 벗어야지 난 물 밖으로 나갈 수 있는 거지?'
하지만 물속에 들어가는 횟수를 거듭하면 할수록 무의식 중에 남겨져있던 물에 대한 기억은 점점 희미해져 갔고, 새로운 기억들로 채워지고 있었다. 몸을 가누는 것이 아직 수월하진 않지만, 집에 놀고 있던 카메라에 방수 하우징을 씌워 조금씩 물속의 풍경도 담아가기 시작했다.
몸의 새로운 움직임
물속의 풍경은 기존에 보지 못하던 풍경이었고, 바늘에 낚여 파닥거리는 존재가 아닌 물고기들은 사람을 겁내지 않는 유유자적한 존재였다. 하지만 눈으로 보는 그 무엇보다 좋았던 것은 물속에서 새롭게 느껴지는 감각들이었다.
중력을 벗어난 근육의 자유로운 움직임, 소중하게 느껴지는 호흡의 중요성, 폐에 담아낸 공기에 따른 부력 등은 지상에서 느껴보지 못한 새로운 감각들이었다.
그렇다고 물이 무섭지 않은 것은 아니다. 연습은 하고 있지만 여전히 장비의 도움을 받지 않고 물속에 들어가는 것은 걱정부터 앞선다. 하지만 이제야 바다와 친해지는 연습을 하고 있고, 바다와 친해지는 것은 꽤 해볼 만한 일이다.
굳이 스쿠버를 열심히 배우고, 체계적인 연습으로 물속에 들어가는 것까지 권하진 않는다. 그건 취향에 맞으면 후에 생각해볼 문제지만, 숙련자와 함께 물속에 들어가 바다를 경험해볼 수 있는 체험 다이빙은 한 번쯤 해보길 권유한다. 바닷속에서 떠오르는 생각들과 몸의 움직임을 느껴보는 것은 그래도 살면서 한 번쯤은 해볼 만한 경험이라 생각한다.
그렇게 난 바다와 친해지고 있는 중이다.
(영상은 체험 다이빙 영상 제작을 의뢰받아 촬영한 것입니다. 영상을 찍은 곳은 제주 서귀포시의 섶섬으로 연산호와 열대 물고기를 국내에서도 볼 수 있는 곳이며, 초보자도 방문해 쉽게 다이빙을 체험할 수 있는 곳입니다. https://www.discover-jeju.com/scubadiving)