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y 이현옥의 중등필독신문 Dec 31. 2021
“아. 나도 내일 상 받고 싶다.”
아이가 잠결에 중얼중얼거립니다. 내일은 겨울 방학식이 있는 날입니다. 겨울 방학식 하는 날이면 학교에서 상장을 줍니다. 독서록을 열심히 기록한 아이들에게 상을 줍니다. 반에서 모범이 될 만한 아이들에게도 상을 줍니다. 1학년 때는 제가 열심히 독서록을 쓰게 했습니다. 아이는 왜 써야 하는지 모르지만 읽은 책을 모두 독서록에 썼습니다. 느릿느릿한 글씨로 꾸불꾸불 독서록을 손밑이 까매지도록 썼습니다. 독서기록상을 받았습니다. ‘이제 내 할 도리는 다 했다.’ 저는 그때 생각했습니다. 워킹맘이 아이 입학을 맞이해 휴직을 했고 그 해 상하 나를 받게 했다. 아이가 상 맛은 봤다. 그럼 된 거 아닌가요. 두 아이를 1학년 1학기 독서상을 받게 한 이후로 저는 더 이상 상에 신경 쓰지 않았습니다. 아니 신경 쓰고 싶지 않았습니다. 능력이 되어 받아오면 좋지만 그러지 못하면 어쩔 수 없는 거였죠. 아이들이 둘 다 활발하지 않았고 많은 친구와 더불어 사귀는 유형도 아니었습니다. 고학년이 될수록 인기상 성격으로 바뀌는 모범상이나 학급회장은 기대하지 않기로 했습니다. 나는 어릴 때 나대고 다니고 사람 사귀는 거에 목숨 걸었던 사람인지라 답답하기도 했지만 제 마음대로 안됩디다. 상장받을 수 있는 상 거저 주는 대회에 나가자고 해도 아이는 고개를 가로저었습니다. 한 학년 한 학년 올라갈수록 저도 포기하게 되더군요. 실상 진짜 포기는 아니고요. ‘알아서 잘해서 받아오길’ 바랬다는 게 맞는 표현이었겠죠.
“아니 도대체 너희들이 모범상을 안 받으면 누가 상을 받는 거야?”
작년 겨울 코 빠져서 온 두 아이를 보고 제가 냅다 소리를 질렀습니다.
“여자 아이들만 모범상을 받았어. 작년에도 재작년에도. 남녀차별이야. 남자들은 못 받아. 모범상은.”
3학년 아들은 눈물이 글썽글썽 금세 또르르 흘러내릴 것만 같았습니다.
“내가 볼 때는 너희가 젤로 모범생 이구만. 아놔. 선생이 보는 눈이 있어 없어.”
괜히 열폭하는 엄마의 모습을 아이들이 뻔히 쳐다봅니다. 저는 그 눈빛을 받으며 마치 더 기운이라도 내야겠다 다짐하듯이 아이들을 바라보며 열변을 토합니다.
“진짜. 학교는 그러면 안 돼. 그림같이 앉아서 샘이 시키는 것만 하는 애들이 모범생이 아니에요. 궁금한 것은 물어보고 아닌 건 아니라고 같이 토론할 수 있는 아이, 너희 같은 아이들이 진짜 모범생이라고 생각해. 나는.”
엄마가 왜 저렇게 흥분했나 아이들은 가만히 지켜보고 있었습니다. 저 혼자 열폭한 것 같아 얼른 다른 곳으로 화제를 돌리며 생각했죠. ‘진짜 이상해. 이 애들 아니고 누가 모범생이란 거야.’
아이들이 없는 틈을 타서 중학교 선생님인 언니에게 전화 걸어 버럭 소리를 질렀습니다.
“왜 그러는 건데. 도대체. 왜 우리 애들이 상을 못 받는 건데.”
언니는 제 마음을 알아챘는지 조곤 조곤 설명하기 시작했습니다.
“야. 받아들여. 애들 평범해. 아이를 키운다 함은 내 아이의 평범함을 받아들이는 거야. 너한테는 특별한 아이겠지만. 그냥 보통이야 보통. 상 받고 싶고 잘하는 애 만들고 싶으면 지방으로 내려와. 애들 몇 안 되는 시골 학교에서는 인정받을 수 있을지도 몰라.”
조카들 다 키워놓고 하는 언니 말소리가 아프지만 가슴을 후려쳤습니다.
‘내 아이가 평범하다는 것을 받아들이는 것.’
전화를 끊고 저는 두꺼운 a4용지를 두장 꺼내 그림을 그리기 시작했습니다. 가운데 멋진 용하나를 그려 넣어서 말입니다. 그리고 맨 위에 두꺼운 펜으로 글씨를 썼습니다. “대상” 위 학생은 평소 행동이 모범적이고 성실하고 열심히 가족을 사랑하는 멋진 어린이로 대상을 수여합니다. 한 아이에게는 ‘특상’을 써넣었습니다. 아빠 이름으로 한 개 엄마 이름으로 한 개 두 개의 상장을 만들었습니다. 저녁에 모두 모여 상장을 수여하고 박수를 쳐 주었습니다.
“한 해 동안 너무 고생했어. 넌 진짜 진짜 대상이야. 그리고 우리 딸은 특상.”
열심히 열심히 학교 다녀주고 공부 해준 아이에게 저와 남편은 진심으로 박수를 쳐 주었습니다. 이렇게 별 탈 없이 커주고 이렇게 문제없이 학교를 다녀 준 것만으로 너희들은 충분히 대상이고 특상이라고 몇 번을 말해줬는지 모릅니다. 아이들은 각자 상장을 자랑스럽게 자기 책상에 올려두고 화알짝 웃더군요. 아이들의 웃음을 보며 긴 한숨을 내 쉬었습니다.
오늘 아침 아이가 종업식이라고 겨울 방학이라고 신이 나서 학교에 갔습니다. 아이의 바람대로 올해는 상장을 받을 수 있을까요? 아이 올 시간이 가까워지고 저도 뭔가에 홀린 듯 저만치 나아가 아이를 기다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