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y 이현옥의 중등필독신문 Dec 26. 2021
코로나가 시작되던 2020년 3월부터 엄마의 삶이 달라졌습니다. 그것도 완전히 말입니다. 매일 삼시세끼 밥하고 아이랑 24시간 붙어 있어야 했습니다. 매일 핸드폰으로 실시간 코로나 현황을 살펴보느라 마음이 분주했습니다. 하지만 코로나 걱정만 할때가 아닙니다. 코로나가 길어지면서 실시간 수업이 시작되었습니다. 문제는 그때부터 심각해지기 시작했습니다. 여전히 해야 하는 엄마의 수많은 일들 사이 한가지가 더 늘어났거든요.
“엄마 오늘 영어 선생님이 화냈어. 진짜 억울해”
아이랑 이야기를 하다가 어쩌다보니 아이가 혼난 일을 말하더군요. 그래 그럴 수도 있지. 그런데 몇 일 있다 담임 선생님한테 언짢은 이야기를 들었다며 아이는 억울하다고 하소연을 합니다. ‘아니, 하는 일도 없는 인간들이 멀쩡한 우리 애는 또 왜 잡는 거야?’ 화가 나기 시작합니다. 누가 건드리기만 해봐 싶은 날들이었으니까요. 건드리기만 하면 그간 스트레스 받은 거 죄다 풀어버릴 텐데 잘 걸렸다. 담임. 일단은 진정하고 진상 파악을 해야 겠습니다. 저는 출근해서 아이가 원격 수업 하는 걸 볼 수가 없었어요. 그래서 아이에게 휴대폰으로 수업 듣는 모습을 찍으라고 했습니다. 네 시간 내내 찍어서 엄마가 좀 봐야겠다고 말이죠. 어떤 상황인지 알아야 선생님에게 따질 수 있으니까요. 그날 퇴근하고 돌아와 아이가 찍은 영상을 봤습니다. 1교시 영어 시간. 아이를 혼냈다던 그 선생님이네요. 얼마나 수업 잘하나 지켜보자 했습니다. 뭐 수업은 학교 다닐 때와 비슷했습니다. 아이는 엄마에게 보여줄 수업이라 생각하니 신경이 쓰였나 봅니다. 자꾸만 휴대폰 화면을 바라보며 신경을 쓰더라구요. 수업 분위기 나쁘지 않았어요.
그런데 2교시부터 아이가 달라지기 시작했습니다. 동영상 촬영이 길어지자 아이도 엄마의 감시를 잊기 시작했습니다. 아이의 집중력이 그리 길지 않으니까요. 아이는 점점 목소리가 커졌습니다. 선생님이 말하는 중간 중간에 큰 소리로 말을 잘랐습니다. 선생님이 질문하면 기회도 안 주어졌는데 답을 크게 말해버려요. 왜 혼났는지 알 것 같았습니다. 그런데 문제는 우리 아이만 그러는 게 아니었다는 거에요. 이 쪽 저 쪽에서 중얼거리는 소리가 들렸습니다. 중간에 떠들거나 노래를 하거나 선생님 말을 끊는 건 예사였습니다. 한 아이가 그러니 가만히 있으면 안될 것 같았나 봅니다. 아이들이 서로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떠들어 대기 시작합니다. 한마디로 개판입니다. 줌 수업에서 고학년이나 중학교 아이들은 아예 입을 닫습니다. 얼굴을 화면에 보이지 않는 경우가 태반이고 보여준다 해도 핸드폰 게임 하느라 바빠서 조용하기 그지없습니다. 이것도 문제가 심각하긴 합니다만. 암튼 우리아이 반은 전혀 분위기가 다르더군요. 하지만 선생님은 옆에 엄마들이 수업을 볼 수도 있으니 화를 내지도 않더군요. 이를 갈며 아이들을 진정시키는 선생님의 말투가 화면으로 다 전해졌습니다. 그걸 보고 있는데 얼굴이 점점 뜨거워졌습니다. 4교시까지 수업을 다 보지도 못하고 영상을 닫았습니다. “너 이리 와 봐. 언제부터 이랬니 너. 선생님이 정말 좋은 분이셨네. 이걸 다 참아주시고.” 그 날 아이를 엄청 혼냈습니다. 아이는 울면서 줌 수업 하면서 말이 많아진 것 같다고 하더군요. 어디서부터 어떻게 다잡아야 할까 싶었습니다. 선생님께 전화해서 사과드리고 언제든 아이 태도가 나빠지면 말씀해 달라고 했습니다. 재택 근무 하는 남편에게 아이 태도를 잡아주라고 부탁도 했습니다. 아이에겐 엄마가 수시로 동영상을 찍게 할 것이니 제대로 수업하라고 엄포를 놓았습니다.
‘네 아이 수업 태도 안 좋은 거? 엄마인 너만 몰랐던 거야.’
‘집에서 공부 안 한다고? 학교에선 더 안 했어.’
‘엄마만 몰랐던 내 아이에 대한 착각. 꿈 깨시죠.’
‘사교육 돌리기 전에 태도부터 잡지 그러냐. 한심한 엄마야’
공부 안 하고 태도 안 좋은 아이들에 대한 기사와 수많은 댓글들을 보면서 억장이 무너지더군요. 정말 내 아이의 모습이 이랬던 건가. 내가 아이를 어떻게 키운 건가. 머릿속이 복잡했습니다. 너무 속상해서 하염없이 눈물이 흘렀습니다.
얼마 전 아이들 전면등교가 시작되었습니다. 아이들은 펄쩍 펄쩍 뛰며 좋아합니다. 아무리 거리두기 하라고 해도 친구와 꼭 붙어 다닙니다. 아이들도 힘들었을 테니까요. 아이들도 답답했을 테니까요. 아이들을 학교에 보내고 이제야 한숨 돌립니다. 몸은 편하지만 마음은 여전히 불편합니다. 확진자 수가 이렇게나 많은데 학교는 계속 보내도 되는 건가 불안합니다. 또 엄마 노릇을 제대로 하지 못하는 것 같아 마음이 쓰입니다. 2년 다 되는 시간동안 그렇게 애를 쓰고 엄마 학교, 식당, 병원을 지켜 냈습니다. 어떻게든 학습 결손 안 일어나게 하려고 태도 안 좋은 아이 안 만들려고 무단히도 애를 썼습니다. 하지만 이제 또 저는 여전히 이 시국에 아이 학교 보내놓고 맘 편히 놀고 있는 신세 좋은 여자가 되어 버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