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y 이현옥의 중등필독신문 Dec 25. 2021
“오늘 학교에 안가고 가정학습 했으니까 교과서 가져와 봐. 오늘 공부한 거 설명해보자.”
아이의 눈동자가 살짝 흔들립니다.
“처음 하는 거라서 얼만큼 하는지 몰라서 한 장씩만 했어.”
“아니. 왜 처음이야. 어제도 했잖아. 엄마가 어제 하는 방법도 알려줬는데. 가져와 봐.”
아이가 들고 온 교과서는 딱 한 장에만 읽은 표시가 되어 있습니다.
“다각형은 직선으로 이루어진 거야. 이것처럼 곡선으로 이뤄진 것은 다각형이 아니야. 오늘의 설명 끝!”
시작한 지 5분도 안되서 설명이 끝났습니다.
“이게 다야?”
“응. 학교에서도 진도 딱 한 장씩 밖에 안 나가는데. 다음은 사회 할게. 사회는 교과서가 여기 없네. 찾아와야겠다. ”
아직 설명할 준비가 안되었다길래 화장실 다녀오겠다고 하고 자리를 비웠습니다.
아이가 사회 설명을 시작했습니다. 이번에도 사회 설명은 2-3분이 채 넘지 않았습니다. 어제 알려준 대로 문단마다 중요한 단어에 밑줄은 그었는지, 문장의 주요 내용에 밑줄은 그었는지 보려고 했지만 못 봤습니다. 교과서를 가리고 보여주지 않았습니다. 자기 얼굴만 보고 설명을 들으라고 교과서를 손으로 가리더군요. 하지만 교과서에 표시가 제대로 되어 있는지 확인해야 했습니다. 교과서 읽기를 제대로 시키기 위해서 시작한 프로젝트니까요. 아이 손을 치워 교과서를 봤을 때 급하게 쳐진 빨간색 밑줄이 눈에 확 띄었습니다. 그리고 바로 내 눈 앞에 빨간색 볼펜이 놓여져 있었습니다.
“너 방금 나 화장실 갔을 때 밑줄 쳤니?”
아이는 대답이 없습니다.
“너 교과서 제대로 읽었어? 아까 수학도 그렇고 지금 사회도 그렇고. 엄마가 딱 보니까 5분 정도밖에 안 걸렸을 거 같은데 말야. 진짜 제대로 교과서 읽었어?”
목소리가 점점 커지고 높아집니다. 교과서 옆에 꽂아 두었던 포스트잇이 파르르 떨립니다.
“너 엄마가 지난번에도 거짓말 해서 화냈지. 성실하게 하라고 했어 안 했어? 왜 사람 눈 앞에서 사람을 속여. 사회책 빨간 줄도 지금 방금 밑줄 쳤지. 엄마가 바본줄 알아? 너 눈치 빠르다고 하지만 아직 엄마 눈치 못 이겨. 나는 눈치에 구력까지 붙었거든. 지금 장난해? 성실하게 공부를 하는 거라고 했지. 어디서 사람을 속여 먹어. 사기꾼이야 니가?”
아이는 점점 많아지고 덧붙여 눈덩이처럼 커지는 엄마의 목소리에 눈물이 글썽거립니다.
“학교에서 하는 만큼 한거야. 엄마가 열심히 안했다고 뭐라고 할꺼 같았어. 난 엄마한테 칭찬받고 싶은데 엄마가 얼굴 표정이 안 좋아보였어. 그래서 엄마 화장실 같을 때 밑줄 친 거야. 나는 잘 했다는 말이 듣고 싶었는데 왜 칭찬은 안 해줘.”
아이 말대꾸가 시작되자 꼬투리 잡을게 생긴 아이의 단어 하나하나를 고스란히 다시 꼭꼭 밟아주기 시작합니다.
“칭찬 받고 싶어? 잘해야 칭찬을 하지. 하는 척만 하고 진짜 열심히 한 것도 아닌데 왜 내가 칭찬을 해야 해. 진짜 칭찬 받고 싶으면 잘하면 되잖아. 잘해놓지도 않고 칭찬만 받으려고 하면 돼? 진짜 잘해봐. 누가 뭐라고 하나.”
길어지고 가빠진 호흡에 일단 안방으로 자리를 옯겼습니다. 물이라도 확 끼얹어 불씨를 꺼버리고 싶지만 한번 붙은 불은 잘 꺼지지 않습니다.
“사기꾼 새끼. 어디서 거짓말을 하고 있어. 성실하게 하지도 않고 좋은 말 하기를 원해? 몇일 전에도 숙제 다 안 해놓고 했다고 해서 핸드폰까지 뺏긴 새끼가 정신을 못 차리고. 아이씨 열받아.”
어디서부터 쌓여있던 건지 모르겠습니다. 오늘 불씨는 활활 잘도 타오릅니다. 한 번 붙은 불은 온 마음을 태워버리기 전에는 꺼지지 않습니다. 슬그머니 피해 있던 남편이 방으로 들어오자 남편을 붙잡고 2차 폭탄 투하를 시작합니다. 남편 눈빛이 흔들리기 시작합니다.
“아니 저 새끼가 몇일 전에 당신한테 화냈던 거 기억하지? 지 인생에 간섭하지 말라나 뭐래나. 지가 알아서 한 대나. 거짓말로 알아서 할 건가봐. 좀 커서 이제 지 인생에 참견하지 말라더니 지 멋대로 클 건가봐. 커서 뭐가 될려고 저러는지.”
남편이 들으라는 건지, 아이가 들으라는 건지 방안이 쩌렁쩌렁 하도록 큰 소리를 지릅니다. 아이는 거실에서 아무 말이 없었고 나의 씩씩거리는 소리는 온 집안을 활활 태워버렸습니다.
불씨가 남아 있을 때는 왜 불이 났엇는지 기억이 안납니다. 온 가슴에 있던 말들을 다 토해내야하니까요. 그렇게 온갖 불씨들을 태워버리고 나면 여열 때문에 다시 다른 곳이 뜨거워집니다.
잘려고 들어와 돌아누운 아이 등을 두드립니다.
“너 아까 왜 혼난 거 같애?”
“숙제 열심히 안해서.”
“그래 아네. 근데 왜 열심히 안하고 열심히 한 척했어 다 티나는데.”
“엄마한테 칭찬받고 싶어서. 잘하는 거 보여주고 싶었는데 엄마가 칭찬을 안해줘서.”
아이 눈에서 눈물이 주르륵 흘러내립니다.
“너 잘해야지 엄마가 칭찬해? 그래야 엄마가 사랑해? 이상하다 엄마는 너가 뭘 잘해야지만 사랑한다고 한적이 없는데.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데 왜그래. 너가 뭘 잘하지 않아도 엄마는 너가 소중해. 너 존재 자체만으로도 너는 너무 귀해. 그런데 왜 잘할려고 거짓말을 하고 너를 부풀려. 그러지 않아도 돼.”
이번엔 다른 이유로 또 다른 곳의 불씨가 당겨집니다
“진짜야?”
아이가 눈물 가득한 눈망울로 나를 바라보며 묻습니다.
“진짜지. 너는 뭘 잘해서가 아니라 존재 자체만으로도 너무 소중해.”
뭔지 모를 것이 마음을 짓누르며 깊숙한 무게로 파고들어 깊은 수면아래로 나를 끌고 내려갑니다.
“진짜야?”
아이는 몇 번이나 되묻습니다. 맞다고 그말이 맞다고 아이에겐지, 나에겐지 모를 메시지를 반복해서 말했습니다.
“엄마가 화 내서 미안해. 그리고 너는 너 자체로 진짜 귀해.”
끝내 마음 속에 간직한 말은 꺼내지 못했습니다.
“고마워.”
오늘도 아이는 제 말을 믿어 주는 것으로 마무리를 짓네요. 고맙다는 아이의 목소리가 쿵하고 울려서 남은 여열이 더 오래오래 갈 것 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