답정녀

"이건 어때? 너한테 잘 어울릴 거 같은데 한 번 써봐.”
아이는 대꾸가 없다. 내가 골라 준 안경테는 거들떠보지도 않는다.
이리 저리 살펴보더니 검정색 안경테를 집어든다.
눈코입 모두 선명한 아이다. 검정테는 한번도 써 본적이 없다.
금테나 핑크테처럼 튀지 않는 테를 써야 그나마 인상이 순해진다.
그런데 갑자기 무슨 변덕인지 검정테를 쓰고 싶은가 보다.
‘그래. 이것 저것 다 해 보고 싶은게 사춘기니까. 안 해본거 해 볼 수 있지.’

나는 다시 검정테 중에서 아이에게 어울릴 만한 테를 고르기 시작했다.
“이건 너무 큰데?”
“이건 별로.”
“이건 안 어울려.”
건네주는 안경마다 툴툴 거린다. 살살 짜증이 올라오기 시작한다.
한번 결정하는데 무진장 시간이 걸리는 아이였다.
이러다가는 안경점 문 닫을 때까지 골라도 못 고를 것 같았다.
골라주다가 참을성에서 한 번 삐끗해 버린 나는 약간 격양된 목소리로 물었다.
“ 골라주는게 다 별로면 뭔데? 너는 어떤게 마음에 드는데?”
아이는 묵묵부답 말이 없었다.
이쯤 되면 나도 모르겠다 포기할 수 밖에 없다.
시간이 가니 눈치도 보이고 슬쩍 다시 용기를 내본다

“이건 어때?”
아이가 안경테 하나를 집어들고 얼굴에 갖다 댄 뒤 나에게 물었다.
“어? 네 얼굴에 좀 큰데? 사이즈가 맞아야지.”
나는 점원에게 구원의 눈길을 보내며 물었다.
“어때요? 이 아이한테 이 사이즈가 맞나요?”
한눈에 보기에도 안경테 모양에 크게 관심이 없는 직원이었다.
서류를 정리하다가 슬쩍 눈을 들어 아이를 힐끗 바라본다.
“ 좀 크긴 한데......”
그때부터였을까? 아이는 한 손에 안경테를 쥐고 다른 안경 몇 개를 써보는 둥 마는 둥 하더니
금새 다 내려놓았다.
“나는 이게 마음에 들어.”
검정색에 얼굴 보다 한참이나 큰 안경테를 들고 아이가 나에게 왔다.
“그럼 잘 어울리는지 한번 사진찍어서 보자.”
몇 장의 사진을 찍어 아이에게 내밀었다.
“엄마가 사진을 이상하게 찍었잖아. 멀리서 찍어야지. 이렇게 가까이서 찍으면 어떻게 해.”
‘그래서 너는 이 모양이 마음에 든다는 거야? 전혀 너에게 어울리지 않는데?’
요즘 아이들 말로 정말 할말하않 이었다.
내가 ‘크다’라고 말하는 순간 아이는 그 말에 꽂히는 모양이었다.
큰 것이 마치 진리인 양 큰 사이즈만 찾아다녔다.
‘검은색은 좀 아닌데.’라고 말하는 순간 색은 무조건 검은색으로 정해졌다.
그리하여 아이의 검은색 큰 안경을 맞추었다

“안경 뭐로 했어?”
퇴근 후 남편이 물었다. 나는 아무말도 하지 않고 아까 찍은 사진을 들이밀었다.
“이게 뭐야. 애한테 너무 크잖아. 검은 색 이라서 색도 어울리지 않고. 이런 걸 골라주면 어떻게 해.”
남편은 원망섞인 눈으로 나를 바라봤다.
13만원에 가까운 안경을 맞추면서 결과물이 이게 뭐냐는 마음 속 불만이 그대로 느껴졌다.
“본인이 좋대. 한 번 정하면 맘 안 바꾸는 거 알잖아. 나도 어찌 못해.”
남편도 몇 번 부딪혀 본지라 더 이상 어쩔 도리가 없었음을 눈치 챘는지 씩씩 거렸다.
“이상하다고 안쓰고 다니기만 해 봐라.”
직접 아이에게 한마디도 못하고 툴툴 대는 남편을 보고 쓴 웃음이 스며나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