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중에 하면 되지.

현우는 우리반의 모범생입니다.

너무 모범적이어서 재미가 없을 정도입니다.

언제나 바른 말만 합니다. 규칙을 어기지 않으면서 다른 친구들에게도 잔소리를 합니다.

엄마는 현우를 우리반의 연세대학생이라고 부릅니다.

다른 과목 선생님들도 특수학급 학생인 줄 모르고 수업하는 경우가 정말 많습니다.

수업시간에 절대 졸지 않고 수업에 집중하며 듣는 태도가 정말 좋으니까요.

그런데 그런 모범생 현우에게도 딱 한가지 어려운게 있습니다.

"엄마 나는 친구가 없어. 다른 애들은 다 친구랑 노는데 나는 반에서 친구가 하나도 없어서 속상해."

현우가 엄마에게 한 말입니다. 친구들이 현우를 굳이 멀리하는 것도 아닌데 현우는 왜 친구가 없는 걸까요. 현우말로 친구들 앞에서 너무 긴장하기 때문입니다. 자기도 공부를 잘해서 친구들과 자연스럽게 어울리고 싶은데 자신이 생각할때 자기는 잘하지 못한답니다. 자신감이 없으니 친구들에게 말거는 걸 너무나 어려워합니다. 그러니 친구들 앞에서는 평소와 다르게 엄청나게 긴장하게 되는 거지요.

그래서 나는 올해 목표를 현우에게 반 친구에게 먼저 다가가는 법을 알려주는 것으로 정했습니다. 아니 친구에게 다가갈 수 있는 용기를 주는 것이라고 해야 옳겠지요. 2학기가 시작되고 이제 완전히 우리 학급에 적응한 현우는 실실 웃으며 장난을 걸기 시작합니다. 그러면 학교에 대한 적응은 마친 것이니 이 프로젝트를 시작해도 좋겠다 싶었지요.

"현우야. 너 반에서 친구 만들고 싶다고 했지? 선생님이랑 함께 친구 만들어 볼래?"

현우는 약간 눈빛이 흔들렸습니다.

"자신이 없는데요. 관심도 없어요."

자신이 없는 현우는 관심 없어 안 사귀는 걸로 방법을 바꾼 모양입니다. 하지만 엄마에게 현우의 속내를 들은 내가 가만히 있을 수는 없지요.

"아니잖아. 솔직히 말해봐. 너 반에서 친구 있었으면 좋겠다고 엄마에게 말했다며. 사실 용기가 없어서 다가가지 못한 거였잖아. 그럼 용기를 내보면 어때. 처음에 인사부터 시작하는 거야. 너네반 회장 있잖아. 그 친구가 너 도우미래. 지난번에 선생님이 교실 갔더니 자기가 말하더라. 그러면서 현우는 너무 말이 없다고 하던 걸. 너네반 회장 정우진이 너랑 친구할 준비가 되어 있어. 그러니까 가서 인사부터 해봐 .안녕 하고 말이야. 아니면 밥 먹었어? 혹은 안 졸려 라고 말해도 돼. 어떻게 말해볼래?"

현우는 한참을 생각했습니다.

"안녕이라고 할께요."

"좋아.내일 아침에 현우에게 인사한 이야기 꼭 해줘. 선생님이랑 인사하기로 약속 하는 거다. "

현우와 새끼손가락 꼭꼭 걸어 약속을 하고 교실로 올려보냈습니다.

"현우야. 어제 우진이에게 안녕했어?"

다음날 만나자마자 현우를 붙잡고 물었습니다.

"긴장되서 못했어요."

"그랬어. 그래도 다시 한번 해 보자. 긴장되는건 알겠는데 한번은 용기를 내야해. 할 수있겠어?"

현우는 다시 해보겠다고 했습니다. 오후 수업이 있는 6교시까지 해보겠다고 약속하고 다짐을 했지요.

하지만 6교시 교실로 들어서는 현우의 얼굴이 그리 밝지 못했습니다. 그것만으로도 결과를 짐작할 수 있었지요.

"현우야. 우진이한테 인사했어?"

"우진이가 친구들이랑 놀아서 못했어요."

몇번이나 약속을 했는데 약속을 지키지 않은 현우가 답답했습니다. 그걸 넘어서야 하는데 자꾸 핑계만 대는 현우가 과연 할 수 있을까 싶었지요. 하지만 윽박지른다고 말을 들을 현우가 아니었습니다.

"현우야. 많이 긴장됐어? 괜찮아. 그럴수 있어. 오늘 못해도 괜찮아. 다음 주에 하면 되지."

내 욕심대로 밀어붙이다가 아이만 스트레스 받고 좋은 결과가 나올 것 같지도 않았지요. 이 쯤에서 한발 물러설 필요가 있다고 느껴졌습니다.

"다음에 하면 된다."는 나의 말이 현우에게 편안함을 만들어 주었지요.

수업이 시작하여 도형의 반복적인 패턴 찾기를 하고 있었습니다. 왠일인지 도형에서 규칙을 찾는것에 집중을 못하더군요. 계속 엉뚱한 답을 쓰는 현우를 보고 대뜸 물었습니다.

"현우야 이런 규칙을 쓰면 어떻게 해. 너 어떻게 할거야."

나무람이 가득 담긴 나의 말에 현우는 대답했습니다.

"다시 하면 되지."

헛 웃음이 나왔습니다. 현우 말이 맞았습니다. 그까짓거 틀리면 좀 어떻습니까 다시 하면 되지요. 다시 정답을 찾아 고쳐쓰는 현우를 보며 한방 얻어 맞은 것 같은 생각이 들더군요.

아이는 자신이 용기내지 못했을때 내가 했던 "다음에 하지 뭐."라는 말을 기억하고 있었던 겁니다. 소심하고 용기없는 아이지만 그 말이 꽤 위안이 되었던 모양입니다. 자신이 실수나 실패를 할때 괴로워하지만 않고 '다시 하면 되지 뭐.'의 정신력을 갖게 된 것이지요.

스승의 말투와 문제해결법을 그대로 배우고 자신의 삶에 적용한 것입니다.

남들이 보기에는 미묘한 차이이고 이것도 변화이며 성장이냐고 비웃을지도 모릅니다. 아주 작고 작아서 티조차 나지 않는 변화니까요. 하지만 나는 그 작고 작은 변화가 너무나 대견합니다. 자신이 가진 고유의 틀을 하나 더 깨고 성장한 현우의 뒷모습이 오늘 따라 더더욱 든든하고 믿음직 스러워 보입니다.

내가 더 나은 선생님이 되어야 할 이유를 하나더 찾은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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