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심전심

“선생님 학기초마다 개별화교육 협의회가 열리잖아요. 그때 어머님들도 오셔서 간담회 형식으로 회의를 진행하면 어떨까요? 전에 있던 학교에서는 매번 간담회를 열었거든요. 얼굴은 한번씩 봐야지 않나 싶은데요.”

교감선생님에게 결재를 받으러 갔다가 나에게 한마디 툭 던지는 말씀. 1학기에도 똑같은 말씀을 하셨었다. 지금의 대답도 그때의 대답과 크게 다르지 않다.

“어머니들께 여쭤봤는데 굳이 필요하지 않다고 하셔서요. 요구할 게 없다고 하시니 따로 열어야 할 이유가 없을 것 같은데요. 다시 한번 여쭤보겠습니다.”

학기초에 학부모와 담임교사, 관리자가 모여 여는 간담회. 모여서 특수학급 운영에 대해서 소개하고 서로 인사를 나눈다. 학교 담임 선생님이나 관리자에게 필요하거나 요구할만한 부분을 나누면서 대화를 마친다. 그러나 1학기에 물었을때도 어머니들이 그걸 굳이 원하지 않으셨다.

“굳이 필요 없을 것 같은데요.”

그 대답을 듣고 1학기때도 같은 말을 했었는데 다시 또 교감선생님이 말을 꺼낸 거다. 왜 도대체 엄마들 얼굴이 그렇게 보고 싶은지 모를 일이다. 학교 관리자들이 특수학급 학부모들에게 호의적이며 관심이 많다는 이야기는 누차 전한 상태였다. 굳이 얼굴을 보면서 인사를 나누고 싶은 이유를 알 수 없었다. 해오던 거니까 반드시 필요하지 않은데 해야할 필요를 나는 전혀 느끼지 못했다. 하루가 멀다하고 어머니들과 톡으로 대화하고 학교 생활을 전달한다. 학부모 민원으로 온 나라가 시끄러울 때조차 우리반 어머니들은 달랐다. 오히려 나에게 그동안 무례하게 대한 적은 없었는지 묻고 선사과부터 하시는 분들이었다. 내 특수교사 20여년 경력에 가장 통합교육을 하기 좋은 인품과 특징을 가진 친구들과 어머니들이었다. 어머니들도 나도 전혀 불평불만이 없었고 더 이상 나눌 이야기도 없었다. 굳이 관리자와 간담회를 열 필요를 서로 느끼지 못했는데 포기하지 못하는 쪽은 오히려 교감이다.

“우리 학교 교장교감선생님께서 어머니들 학교에 요구하시거나 필요하신 내용있으시면 만나 뵙고 말씀 들을시겠다고 하십니다. 필요하시면 연락 주세요.”

한명의 어머니에게서는 “필요없습니다.”라는 답장이 곧장 날아들었다. 우리 혜진이 어머니는 “좋아요.”라는 답변이 왔다. 나머지 어머니들은 알겠습니다라는 답변 이외엔 아무말도 없었다. 나는 혜진이 어머니에게 전화를 걸었다.

“어머니 혹시 교장교감선생님에게 특별히 하실 말씀 있으세요?”

“아니요. 그런건 아닌데 뵙고 인사라도 하면 좋을 것 같아서요. 다른 어머니들도 마찬가지 마음일 거 같은데 제가 연락 돌려보고 말씀드릴게요.”

혜진이 어머니는 그렇게 전화를 끊으셨다. 그런데 생각하고 또 생각해도 왜 간담회를 열어야 하는지 나 스스로 납득이 되지 않았다. 나는 어머니들이 모두 있는 단톡방에 장문의 메시지를 남겼다.

“아까 혜진이 어머님이랑 통화를 했는데요. 혜진이 어머니께서 교장교감선생님과 인사 하시고 싶다고 하십니다. 그런데 특별한 용건이 없이 인사만 하는 간담회라면 저는 열지 않았으면 싶습니다. 간담회라는 것이 인사만 나누는 자리는 아닙니다. 학교에 꼭 필요한 요구사항이 있을 때 간담회에서 논의하는 것이지요. 저는 우리 아이들이 이 학교의 1000명중 한명의 구성원이라고 생각합니다. 특별할 것도 없고 특별한 대우를 받지 않았으면 싶습니다. 한명의 구성원으로서 자연스럽게 스며들어 있는 것이 통합교육이라고 생각합니다. 특수학급이라는 이유로 특별대접 받지 않고 그 누구나와 똑같이 대하길 바라는 마음입니다. ”

어머니들은 내 마음을 이해한다는 답장을 해 왔다. 나는 혜진이 어머니랑은 다시 한번 통화를 해야겠다고 생각했다. 인사하는 간담회를 열고자 의중을 가지셨던 분이기에 한번 더 개인적인 설명이 필요하다고 여겨졌다.

“어머니. 제 톡 보셨어요? ”

“아직 못 봤어요. 선생님.”

“저 인사만 하는 간담회는 의미가 없다고 보여져요. 그리고 솔직히 제가 이 부분에선 건강하지 못한건지도 모르겠는데요. 지금 저희반 아이들 너무 훌륭하거든요. 일반 친구들과 큰 트러블 없이 지내요. 그래서 저는 그게 너무 자랑스러워요. 굳이 간담회 같은거 해서 아이들 튀게 만들고 싶지 않습니다. ”

“선생님 저는 반대로 생각하고 있었어요. 오히려 저희 엄마들이 시간을 내서 교장교감선생님을 만나는 것이 선생님에게 힘이 될거라고 생각했지요. 우리 선생님 뒤에 이렇게 든든한 부모들이 있으니 함부로 대하지 마시라는 메시지를 드리고 싶었던 거에요.”

옛날부터 내려오는 이야기 중에 사이좋은 가족 이야기가 떠올랐다. 아버지의 긴바지를 줄여달라는 부탁에 서로 다른 가족이 힘들까봐 너도 나도 바지를 줄인 이야기 말이다. 그래서 결국 아버지는 바지가 너무 짧아져 입지 못하는 지경에 이르렀다는 따뜻한 옛날 이야기. 나는 어머니가 오로지 나를 위해 간담회를 열고자 했던 마음이 너무나 묵직한 감동으로 밀려왔다.

“어머니 그 마음이셨어요. 몰랐네요. 너무 감사합니다. 제가 어려운 일 있거나 누가 구박하는 상황이 생기면 꼭 어머니들께 말씀드릴께요. 진짜 힘이 되네요. ”

“네 선생님. 선생님께 도움이 되고 싶어서 그랬어요. 선생님 마음이 그러신 거면 안해도 되요. ”

어머니는 끝까지 나를 살려주는 말씀을 하시고 전화를 끊으셨다. 명치에서부터 무언가가 울컥 나를 편안하게 만드는 기분이 들었다.

“혜진 어머님이랑 통화했는데요. 어머니께서 저에게 힘을 실어주시고자 간담회에서 인사 나누시려 했다는 말씀 너무 감동입니다. 하지만 저도 부당한 대접을 받거나 우리 아이들에게 좋지 않은 상황이 발생하면 그걸 가만히 좌시하지만은 않습니다. 학교에선 제가 어머니 역할을 하는 거니까요. 염려하지 마세요.”

어머니들에게 전체 메시지를 보냈다. 마음이 몽글몽글해졌다. 서로가 서로를 위해 조금이라도 도움이 되고자 노력하고 더 나은 발전을 위해 노력하는 사이. 부모와 교사의 관계가 이렇게만 지속된다면 아이들이 정말 더 쑥쑥 자랄텐데 싶은 생각이 들었다. 그런 생각을 할수 있도록 도와준 이상황과 이 자리가 너무나 감사하게 느껴졌다.

‘올 한해는 나에게 더없이 안식년 같은 한 해구나. 너무나 예쁘고 가능성 많은 아이들과 함께 응원해주시는 어머니들. 매년 올해같기만 하면 얼마나 좋을까.’

나 혼자 어깨를 들썩들썩이며 신이나서 퇴근준비를 했다.콧노래가 절로 흘러 나오고 행복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언제까지나 내가 아이들의 편인 것처럼 그렇게 내 편이 되어줄 누군가가 있어 오늘도 힘이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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