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처럼 살지 마

녀석이 씹던 밥을 씽크대에 고스란히 뱉어놨다

아무리 자식이 씹던 밥이라도 비위가 상한다

손대고싶지도 않다

몇번을 얘기해도 고쳐지지 않는다

수박씨에서 나오는 거품까지 맛보고 찾아내는 녀석이다

미각을 비롯해 모든 감각이 살아있어서....라고 인정한다치자

그래도 나도 더러운 건 더럽다

뚜껑이 열릴락 말락 잔소리 폭격이 시작되자

녀석은 슬그머니 어지럽힌 거실을 치우더니

책상에 앉아 눈치보기용 작가노트를 쓰기 시작한다


세네갈 전 서로의 글쓰기 연습을 위해 시작한 이른바

○○이의 작가노트

거창한 이름답게 마음에 드는 대학생용 노트를 한권씩 준비하고 표지에 크게 적었던 제목이다

강작가 이작가 서로 으스대며 주제를 의논해서 쓰자 했었다

처음부터 작심삼일이 예고된? 오래가지 못할 프로젝트였다

매일 한줄의 글이라도 적었으면 해서 시작된건데 실상은 나부터 그만뒀다 해야할일도 많은데 언제 따박따박 손글씨를 쓰고 앉았냐고

녀석들만 몇번 써라마라 닥달 하다 여느 프로젝트처럼 구석에 쳐박혔다

그러던 것이 부크크에서 무료로 내 이름으로 된 책을 내보자며 어렵사리 기사회생되었지만.....

어디 글쓰는게 아이스크림 뚝딱 먹는것모냥 쉽사리 손가는 일인가

지지부진 하면서도 질긴 생명력으로 버티고 있는 것은

요럴 때 뿐이다 눈치보기용 작가 노트


오늘의 주제는 내가 되고 싶은 것인 모양이다

뚝심있게 동화바꿔쓰기 진행중인 누나와 다르게 녀석은 그날그날 주제를 스스로 정해서 쓴다

중얼중얼 쫑알쫑알 두리번두리번


뚝딱


정말 뚝딱 써냈다

사본 -KakaoTalk_20200724_092124800.jpg

코웃음이 나오는 건 사업과가 되고 픈 이유다

힘들지 않아서라니

누가봐도 웃을 일이다

이 이유에 동의해줄 사람은 본인 뿐일 듯

아니 매일 회사에서 받는 스트레스 대신

회사이야기를 재미있게 풍자하는 아빠는

너털웃음으로 동의할지도.....

특히 일하는 척 모니터 보면서 몰래 스마트폰을 꺼내

유튜브를 소리없이 화면만 본다는 부분은......

회사원이라면 아니 책뒤에 만화책 한번 숨겨본적있는

아니 수업시간에 비밀쪽지 돌려본 누구라도

그 부분은 동의가 될지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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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에는 녀석의 온 세상이 담겨있다

아빠처럼 엄마처럼 살고싶은 녀석의 마음이

아니 실상은 누군가 녀석에게 한번쯤 권했던 직업이

다 담겨있다

말을 재치있게 하던 녀석에게 외할머니가 부르던 강변호사라는 이름도

"넌정말 재활용쓰레기와 종이쪽지,스카치테이프만 있으면 못만드는게 없구나"했던 엄마의 뷰도

뉴스라면 사족을 못쓰고 모두 섭렵하는 빨간아재빠

아빠의 평소 모습도

항상 모든 일에 기도하라던 친할머니의 가르침도

모두 담겨있다


녀석이 뱉어놓은밥알을 치우며

'넌 엄마처럼 살지마'


엄마같은 공무원이나 선생님은 되지말지

엄마보다 나은 녀석이 되어야지

보고 자란대로 될수밖에 없을

녀석의 뒤꼭지에

작은 소망하나를 슬며시 더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