쥐구멍에 숨고 싶어 당장
선명하게 기억한다. 시작은 사고였다. 글 좀 써보겠다고 이것저것 끄적이다 운 좋게 따낸 출판의 기회. 그것은 나에게 사고 같았다. 아무튼 기쁘고 감사한 일 아닌가!? 그때는 마냥 기쁜 사고인 줄 알았다. 작가의 길을 이제 막 한 걸음 뗀 것뿐인데, 나는 이미 교보문고 베스트셀러 작가가 되어 팬사인회하는 상상을 하곤 잠을 설쳤다.
"거봐, 내가 된다 그랬지~!" 허리에 손을 올리고 다리를 벌린 채 와이프에게 떵떵거렸다. 하하하! 오만한 기쁨의 목소리로 방 안을 채워본다. 그런데 반응이 영? 와이프는 별대답 없이 휴대폰만 만진다. 공감 없는 사태는 들뜬 공기를 가라앉혔다. 무안해진 나는 멋진 결과물로 제대로 다시 보여주겠노라 다짐한다.
원고를 퇴고하며 진실을 느꼈다. 나의 글쓰기 실력은 형편없다는 것을. 와이프는 이미 알고 있었다. 내가 작가뽕에 취해 냉정함을 잃었다는 것을. 발바닥에 젖은 낙엽이 들러붙어 떨어지지 않는 것처럼 짜증이 났다. 이 빌어먹을 왕초보 작가 꼬리표 좀 떼고 싶다고 생각했다. 글 좀 잘 쓰면 소원이 없겠네! 한 문단은커녕 한 문장, 한 단어를 쓰는데도 뭐가 그렇게 망설여지는 건지, 화장실 앞에서 똥 마렵다고 떼쓰는 꼴이었다. 배테랑 작가가 보면 한심하다 생각하겠지? 그런데 말입니다. 이 한심해 보이는 삶도 나름 노력하고 있습니다만...? 쓰고 또 써도 채워지지 않는 이 공백은 참 괴로웠다. 어디 글쓰기 학원 같은데 없나? 열정만 믿고 시작한 나의 출판 프로젝트는 실력이란 벽을 마주하며 현타를 느끼고 있었다.
포기할 수 없다. 반드시 마무리를 져야 한다며 나는 아등바등 몸부림을 쳤다. 상상력을 영끌하고 챗지피티에 물어보며 여기저기서 긁어모으는 단어를 짜깁기 해본다. 어느새 완성된 내 글은 꽤 그럴듯해 보였다. 속이 든든하고 개운한 이 느낌은 자신감으로 바뀌었다. 그리고 이 자신감은 뻔뻔함과 게으름으로 바뀌었다. 출판 기획은 따놓은 셈이고 나름대로 원고도 완성했으니 된 것 아닌가? 이것 말고도 할 일이 많다며 글 쓰는 것을 잠시 멈추었다.
얼마 후 출판사와 원고 피드백 시간을 가졌다. 출판사 대표는 나에게 쓴웃음을 지으며 유감을 표했다. 글의 주제와 아이템이 흥미로웠는데, 그것이 희미해졌다는 의견이다. 그때부터였을까 시간이 천천히 흐르며 중간중간 얹어주는 칭찬은 들려오지 않았다. 한샘 작가님은~하며 말씀해 주시는데 작가 호칭이 과분함과 부당함과 불편함이 느껴졌다. 귀가 뜨거워지고 뒤통수까지 창피함이 올라왔다. 얼른 돌아가 내 원고를 뜯어고치고 싶었다.
미팅이 끝나고 한동안 묵혀놨던 글을 다시 들추었다. 익은 김치가 된 줄 알았더니 곰팡이가 슬었다. 피드백은 사실이었고 경악스러웠다. 내가 이렇게 썼다고? 최종본이라고 생각했던 내가 어찌나 어리석던지. 그래도 늦지 않았어. 이제라도 알아 다행이라며 다시 한번 열정을 태우며 퇴고를 했다. 며칠 후 더 이상 완벽한 것은 없다며 뿌듯함이 밀려오는 순간, 어라? 잠시만요. 어디서 본 데자뷔인데? 서늘함이 함께 느껴졌다.
미친 객관성이 필요했다. 출판사도 못 믿겠다. 나에게 분명 더 해줄 말이 있었지만 하지 않았을 것이다. 나에게 진정으로 칼날을 휘두를 수 있는 자는 와이프뿐이었다. 지금껏 와이프에게 내 글을 보여준 적이 단 한 번도 없었다. 엄마아빠에게 사랑한다는 말 한마디 못하던 나였기에, 가까운 사이일수록 낯 뜨거운 행동을 하지 못했다. 와이프 앞에선 언제나 멋지고 든든하고 강한 모습으로 남고 싶었으니까.
자질구레한 자존심 따위 내던져 버리자. 와이프에게 구구절절 설명하며 솔직한 피드백을 부탁했다. 글을 보여주는 순간 발가벗은 느낌이었다. 내 글은 분명 완벽했는데 왜 손에서 식은땀이 나는 거지? 와이프는 조용한 시선으로 내 글을 읽기 시작했다. 고요해진 분위기는 나를 안절부절못하게 만들었다. 어떤 말이 나올까.
공감이 안돼.
재미가 없어.
쿵 소리가 나며 심장이 내려앉았다. 그 정도라고? 나는 허탈한 표정을 지으며 믿기 힘들었다. 던져버렸다 생각했던 자존심은 꿈틀거렸고 왠지 모를 서운함은 용솟음쳤다. 저리 들어가 있으라고. 지금은 나올 때가 아니라며 차분하게 피드백을 받아들였다. 그렇구나 알겠어. 대답하는 나의 등 뒤에 땀으로 흠뻑 젖어있었다.
시간이 지나고 피드백 사실임을 또 깨달았다. 새로운 필터를 낀 것 같은 나는 내 글이 다르게 보였다. 내 글은 나만 읽기 좋은 글로 보였고 설명문 같았고 논문 같아 재미없었다.
창피함과 당혹감은 발전을 위한 필수코스다. 누군가에게 조언을 얻거든 가장 가까운 사이에게 듣는 것이 최고라는 결론을 내었다. 우리 와이프 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