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는 찌찌 허리띠도 하지만,

어떤 ‘여자’인지 보다 어떤 ‘사람’에 더 방점을 찍고 살았으면

by 김윤

"엄마! 여자는 참 할 게 많은 것 같아. 찌찌 허리띠도 차야 하고."


딸아이가 다섯 살일 때, 속옷을 착용하는 나를 보며 말했다. 브래지어를 보고 <찌찌 허리띠>라고 표현하는 엉뚱한 귀여움에 한참을 웃었다. 정말 눈물 나게 웃었다. 그러다가 곧, 아이의 말을 곱씹게 되었다. '여자는 참 할 게 많은 것 같다'는 말이 묵직하게 다가왔기 때문이다.'엄마'는 참 할 게 많다고 할 수도 있는데 '여자'라는 주어를 썼다는 건 확실하게 뭔가 관찰했다는 뜻이다.


딸에게 최초의 남자인 아빠는 샤워도 뚝딱, 옷 입기도 뚝딱, 모자하나 쓰면 외출이 끝이다. 집에 돌아와서는 역으로 옷을 벗고 씻고 다시 침대로 돌아가면 된다. 웬만하면 심플하고 군더더기가 없다. 반면에 최초의 여자인 엄마의 일상은 많이 복잡하다. 샤워도 오래 하고, 찌찌 허리띠도 해야 하고, 선크림을 시작으로 화장도 해야 하고 가방에 뭘 챙길 것도 참 많다. 외출 후 집에서는 아빠처럼 씻지도 눕지도 못하고 집안을 정리하고 부엌을 점령해서 먹거리를 챙기고 아이를 씻기고 말리고 입힌 후 놀아주고 책을 읽어주며 대화를 나누고 잠자리에 들게 한다.




누군가는 어린아이를 두고 ‘아직 어려서 모른다’고 말하지만, 모르기 때문에 더 많이 관찰하고 알고자 애쓰는 존재가 바로 어린이인 것 같다. 비로소 알게 된 것은 소중히 간직하기도 한다. 그래서 나는 아이를 키우는 일이 종종 두렵다. 나의 말과 행동이 더 나은 것에 도달하지 못하고 아이에게 전달될까 봐서이다. 되도록 멋지고 근사한 언어를 가진 어른이 되고 싶다.



아이는 몇 번이고 <찌찌 허리띠>에 대해 물었다. "엄마 이건 뭐야, 뭐 할 때 쓰는 거야, 왜 하는 거야, 나도 해야 되는 거야, 그럼 나는 언제 하는 거야?" 호기심이 곧 질문이 되는 아이는 반복해 물었다. 아마도 엄마의 답변이 썩 시원치 않았기 때문에 계속 궁금했을 것이다. 어린아이도 이해하기 쉬우면서도 지혜로운 답을 주고 싶은데 나에게는 적당한 언어가 없다. 내가 배웠던 90년대에는 미처 없었던 말을 해주고 싶고, 너무 앞서간 21세기의 말은 조심스럽다.



나는 성장이 빠른 편이어서 초등학교 고학년 일 때부터 브래지어를 착용했는데, 집에서는 브래지어를 벗어도 된다는 사실을 몰랐다. 당연히 잘 때도 착용했던 것 같다. (엄마는 왜 그 사실을 빨리 알려주지 않았을까?) 생리도 일찍 했는데 그것은 참 난감할 때가 많았다. 집에 아빠와 남동생이 있을 땐 팬티에서 생리대를 뜯어낼 때 나는 소리가 바깥으로 새어나갈까 봐 축축한 생리대를 오래 하고 있었던 적도 많다. 한 번은 외출을 해야 하는데 생리대를 떼어 내지 못해서 내 방에 숨은 모양새로 조심스럽게 생리대를 뜯어내어 돌돌 말아 이불 안에 숨겨 둔 적이 있다. 혹시라도 내가 두고 나온 생리대에서 벌레가 생기진 않을지, 냄새가 삐져나와 집안에 풍기면 어쩌지 종일 그 고민을 하느라 곤욕스러웠던 그날이 여전히 선명하다.




61년생인 나의 엄마는 내가 첫 월경을 하자 시내에서 주황색 멜빵바지를 한 벌 사주었다. 하지만 월경이 무엇인지 그것으로 내 몸은 어떻게 변하는 건지 생리대는 언제든지 뜯어버릴 수 있다는 사실 같은 것을 가르쳐주지 않았다. 아마도 그에 대한 교육을 받은 기억이 전무했을 엄마는 나에게 어떤 말을 해줘야 할지 몰랐을 것이 분명하다. 87년생인 내가 받은 성교육은 거의 無교육에 가까웠다. 여자는 조신하고 조용해야 하며 늘 브래지어와 그 위를 덮어주는 속옷을 착용하고 다리를 오므리고 앉아야 한다는 걸 강조받은 세대이다. 나는 정직하게 그 교육대로 컸지만 그래서 종종 슬프기도 하다. 껴입어지고 가려야 하는 몸은 언제나 답답하다. 그럴 때마다 나는 딸아이의 미래를 떠올린다. 아이만큼은 자유로운 몸을 가졌으면 좋겠다고.



엄마와 아빠는 이렇게 다르지만, 그것을 여자와 남자의 일로 구분해서는 안된다는 걸 알려주고 싶다. 너의 최초의 사회인 우리 가정의 모습은 이러하지만 세상 모든 여자와 남자의 모습은 이렇지 않다고. 어떤 ‘여자’인지 보다 어떤 ‘사람’에 더 방점을 찍고 살았으면 한다는 걸 슬쩍 알려주고 싶다. 너의 성별 앞에 벽이 있을 수도 있다는 사실을 깨닫는 날이 올지도 모르지만, 어떤 사람인지 되고 싶은지 스스로 고민했다면 분명 벽을 부술 수 있는 날도 올 것이다. 나의 딸에게 찌찌 허리띠의 무게는 최대한 가벼웠으면 하는 것이 엄마의 바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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